느낌표를 만들라

‘AI와 달리 앞으로도 우리가 여전히 우위에 있을 영역은 무엇일까?’
‘실험과 실패 경험을 통해 배우고 지속 성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을 훈련해야 하나?’

이들은 다른 표현, 같은 질문이다.
모두 인간 고유의 본질적 능력을 묻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에 대해 공통으로 달아 볼 만한 답이 무엇일지 나눠 본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세상과 만난다. 경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세상과 관계를 형성해나간다. 경험한다는 것은 내외부의 자극을 감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감지하는 것이다. 나는 경험을 섬세하게 받아들이는 촉을 ‘감수성(sensing)’, 이로부터 의미를 만들고 연결하는 것을 ‘감지성(sense making)’이라고 명명한다. 경험이 감수성을 지나 감지성에 이르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존 의미 체계를 통해 내재화되며 자기 것이 된다. 그리고 해석되고 평가된 의미들은 다시 새로운 것을 경험할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감지성은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알고리즘식 사고와는 정반대다. 알고리즘식 사고는 특수성이 배제된 불모지에 존재하지만, 감지성은 전적으로 개인의 개별화되고 구체화된 맥락 속에 자리 잡는다. 알고리즘식 사고는  1초당 수조 테라바이트의 정보를 처리하면서 넓게 나아가지만 감지성은 깊게 파고들어 간다. 경험 자체는 철저히 중립적이다. 따라서 데이터화할 수 있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의미 부여는 주관이 부여된 것으로 데이터화할 수 없다. 우리는 경험한 것을 특정 상황에서 끄집어내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활용한다. 이때 의미 부여 기능이 작동하는데 이 의미 부여는 해석이 관여한 것이어서 중립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데이터화하기 어렵다. 개개인의 독특함(unique)은 바로 경험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목에서 비로소 도드라진다. 데이터화되지 않기에 AI가 원천적으로 범접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청정 지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이 진행되는 바로 그 지점, ‘감지’가 시작되는 바로 그곳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날것의 경험이 아니라 그 경험의 해석과 동일시한다. 감수를 넘어 감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나’라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순간순간 맞이한 경험들의 물리적 모음이 아니라 결국 우리가 경험에 부여한 의미들이다. 우리는 변화무쌍하고 무질서한 삶의 경험들로부터 우리가 발라낸 의미 체계와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면, 관련된 실험과 실패, 즉 실행 경험들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감수성과 감지성을 갈고 닦아야 한다. 경험은 원자, 전자기파, 단백질, 숫자로 이뤄져 있지 않다. 경험은 세 가지 주요 성분, 즉 감각, 감정, 욕구로 이뤄진 주관적 현상이다. 특정 순간의 내 경험은 내가 감각하는 모든 것,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 내 마음속에 원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의 감수성과 감지성에 공고히 연결돼 있다. 여기서 감수성은 경험이 주는 감각, 감정, 욕구에 주목하는 것이며 감지성은 경험이 주는 감각, 감정, 욕구가 내게 미치는 영향, 의미,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확인하는 것이다. 지나가는 모든 것에 일희일비해선 안 되겠으나 경험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그 경험들로 인해 내 견해와 행동은 물론 성격에 일어나는 변화까지 섬세하게 주목하고 그것들이 주는 의미들을 잡아내야 한다. 경험, 감수성, 감지성은 끝없는 고리로 이어져 서로를 강화한다. 감수성 없이는 어떤 것을 주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말 할 수 없고 주체적 수용 없이 의미를 득했다 말할 수 없다. 감수성과 감지성은 머리로 알면 키워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실제 실험과 실패, 실수라는 경험을 통해 사용되어야만 무르익고 성숙하는 인간 고유의 실질적 능력이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당신이 달콤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포털 기사를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은 문득 설탕과 기사 내용 때문에 커피 맛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설탕의 양을 줄이고 스마트폰을 옆으로 치우고, 눈을 감고 커피 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커피의 향과 맛을 음미하는 데 집중했다. 이러기를 몇 날, 당신은 이윽고 다양한 커피를 실험하면서 커피들의 톡 쏘는 신맛과 향을 느끼기 시작했고 비교할 수도 있게 됐다. 급기야 몇 달 뒤 당신은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들을 끊고 커피전문점에 가서 본격적으로 커피를 구매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루왁 커피’가 마음에 들었다. 루왁은 인도네시아어로 ‘사향고양이’라는 말이다. 사향고양이는 시각과 후각이 예민하여 잘 익은 커피 열매만 골라 따 먹는다. 겉껍질과 내용물은 소화하는 반면 딱딱한 씨는 그냥 배설하는데, 해가 뜨기 전 이 변을 수거해 원두만 추출해서 커피를 만든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루왁 커피다. 사향고양이 체내의 효소분해 과정에서 많은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루왁 커피만의 독특한 향과 맛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당신은 커피를 한잔 마실 때마다 커피에 대한 감수성을 연마해 ‘커피 감식가’가 된다. 만일 내가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했을 때, 당신이 루왁 커피를 내게 권했다면 나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 커피의 맛과 향이 내게는 별 의미 없었을 것이다. 필요한 감수성을 갖추지 않으면 표피적인 경험을 할 수밖에 없고 감수성 수준이 낮으면 의미를 감지할 수 없다.

비즈니스 예로는 스타벅스의 성공을 살펴보자. 2017년 3월 스타벅스는 국내에서 매출 1조 원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2위가 2,000억 원 정도였으니 독보적인 1위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스타벅스의 성공이 기술과 정량적 분석 덕분이었다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최신 커피머신과 로스터, 정돈된 공급망, 잘 설계된 모바일 앱, 회사의 성장을 이끌 최신 금융기술 등이 성공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은 스타벅스가 성공한 원인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더 비중 있게 봐야 할 요인으로 스타벅스의 정신과 존재 이유가 부각된 브랜딩, 단순하면서도 심대한 문화적 통찰을 꼽고 싶다. 스타벅스의 CEO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남유럽의 커피 문화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삶의 틀에 미세 보정(fine tuning)하는 법을 알아냈다. 지금은 너무나 명백해 보이지만 불과 35년 전만 해도 유럽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커피라고 하면 인스턴트 캔 커피를 뜻했다. 그러나 슐츠는 사람들이 커피 말고도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공간에 대한 갈증이 있음을 감지해냈다. 그는 커피 제조 기술과 경영을 위한 정량적 분석에 의존하지 않고, 이탈리아로 가서 유명한 카페 수십 곳을 견학했고 커피를 매개로 한 이탈리아인들의 분위기와 문화에 대한 질감 있는 감수성을 높였다. 이렇게 감수와 감지는 자신만의 느낌표를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느낌표는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지난 세기 동안 기술은 우리를 우리의 감수성과 감지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우리도 모르게 직접 냄새 맡고 맛을 보며 음미하는 것에 집중하는 능력을 잃었다. 대신 스마트폰과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요즘 우리는 길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모르는 이들과 이야기하기는 어느 때보다 쉬워졌지만, 아침 식사를 할 때 아내와 대화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우리의 눈은 우리를 둘러싼 주변이 아닌 스마트폰에 가 있다. 식사를 할 때도 스마트폰 화면을 보며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서둘러 먹을 뿐, 정작 음식 맛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원작을 직접 읽지도 보지도 않은 채 남이 올린 리뷰나 댓글을 보고 그 원작을 읽고 보았다 착각한다. 감수성과 감지성이 키워질 리 없다.

철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는 경험을 통해 삶과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것들을 해석해나가는 인간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우리의 인생에는 오직 하나의 최고 정점이 있는데 그것은 느낌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경지다.”

이런 최고의 능력을 사장시킨 채 미래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AI에게 내어줄 작정인가?
나만의 느낌표를 만들어 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느낌표가 곧 모든 조직의 로망인 ‘창의’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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