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션 사람에서 답을 찾다 #2 혁신의 무한루프

새로 이사한 동네에는 학교가 많다. 초등학교가 둘, 중학교가 하나, 고등학교가 하나. 산책 중 마주한 학교 앞 풍경이 어찌된 일인지 어색하다. 아, 정문 앞 가장 목 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 학교 앞 문방구 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네? “왜 학교 앞에 문방구들이 없지?” 신랑에게 물었다. “글쎄. 요즘 문방구에서 뭐 안 살 것 같은데, 너도 잘 안 사자나.”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벌써부터 아이패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7살 딸아이와, 1500원 볼펜 한 자루도 새벽에 가져다주는 쿠팡이 동시에 스쳐 지났다. “그러게..” 문구점에서 공들여 색깔을 고르던 사쿠라펜과 하이테크의 향수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VUCA의 시대로 부른다. 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불확실성), Complexity(복잡성), Ambiguity(모호성) 의 첫 글자를 조합한 용어이다. 이 말을 가만히 보면 참 재미있다. 변화라는 말로조차 표현하기 어려운, 불확실하고, 변덕스러운,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모호한 미래. 사람들이 오죽 불안하고 답답했으면, 이러한 변화를 묘사하고 설명하는 말까지 만들었을까.

 

더이상 좋은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우리,

안타깝게도, 기업은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이런 불확실성을 잘 다루지 못하는 체질로 변화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시간이 흐르고 규모가 커질수록, 구성원 간 업무 효율이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노하우를 쌓는다.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고 전문성이 쌓일수록 기업이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역량”은 급속도로 커지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제품, 혹은 서비스의 “사용자를 이해하는 역량”은 급속도로 떨어지게 된다. 만드는 역량과, 필요를 알아차리는 역량 사이의 갭을 잘 관리하는 과정에서 이노베이션 기회가 시작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이 아니라 조직 차원으로 해당 역량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한 개인이 침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혁신의 무한루프, 피곤하고 기운빠지는 변화의 경험을 제공한 회사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

구성원들이 고객과 멀어지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조직이 함께 풀어나갈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을 바꾼 수많은 기회들은 고객의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만드는 역량만 있고, 문제를 발견하는 역량이 부족한 조직은, 그 누구의 마음도 특별히 사지 못하는 예쁜 쓰레기들을 만들기 시작하며 조금씩 도태된다. 만들 수 있어서,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예쁜 쓰레기들은 보고서 안에서는 빛나지만, 시장에서는 선택 받지 못한다. 구성원들이 사용자를 쉽게 만나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역량, 제도, 시스템을 조직 안에 지속적으로 키워주는 것이 이노베이션 관점에서 중요한 이유이다. 

많은 회사들이 VUCA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의 변화, 혁신, 이노베이션을 고민하고 있다. 혁신, 가죽 혁革 에 새로울 신新 가죽을 벗기고 새롭게 쓴다니, 그런 무시 무시한 변화가 구성원들에게 반가울 리 없다. 최근에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는 트랜스포메이션이 있다. 조직의 체질과 구조를 완전히 변화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시장의 판을 바꾸는 스타트업들이 쏟아지는 시대, 생존을 위해 고군 분투한 그들의 스토리는 사후합리화를 통해, 그럴듯한 조직과 시스템의 예시로 포장되어 수많은 컨퍼런스에서 쏟아진다. 부럽기는 하지만 일면 답답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혁신의 무한루프

사람을 마음에 맞게 변화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연애 14년차 내 남편은 아직도 내 마음에 드는 선물을 사오지 못하고, 나는 신랑 마음에 들게 이불을 개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이에 작은 부분을 맞춰가는 것도 이렇게도 어려운데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쉬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조직 안에 변화를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생각해왔다. 똑똑한 회사가 정했으니, 당신은 그 자리에서 실행하라.

직접 실행하지 않는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의지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경쟁이 치열해질 수록 우리는 불안해진다. 미리 공부하여 잘 준비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기업은 지금까지 효율과 체계라는 명목 하에, 일부 “똑똑”하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을 “전략” “기획” 이라는 타이틀로 분리해왔다. 소수의 똑똑한 사람들에게 정보를 모아주고, 정교한 프레임워크로 미래를 예측했다. 더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한 벤치마킹이 빠질 수 없다. 돌다리가 무너질 때까지 돌다리를 두드리며 전략을 세운다. 시장에 한번 나아가보지 않은 채, 보고서의 워딩은 자꾸 바뀌어 간다. 이 문제는 생각해봤어? 이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할거지? 계획을 세우는데 시간과 돈과 노력이 투입되면 투입될 수록, 논리가 공고해지고 다른 관점과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 진짜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조직의 전략은 대학의 레포트와 다르다. 보고서에 쓰여진 단어 하나하나는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며 지난한 실행의 과정을 거친다. 실행 하지 않고 결정만 하는 사람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 내린 결정의 결과를 실행하며 직접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결과를 직접 검증하지 못하니, 해보면서 검증하고 바로잡아도 되는 부분까지 끊임없이 논리를 공고하게 세우게 된다. 말 한마디로 많은 것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권력에 취하기 쉽지만, 돌아보면 결국 스스로 매듭지을 줄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안타까운 나 자신을 마주한다.

반면에 현장에서 실행하는 실무진들은 조금 다르다. 논리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지만 매일 작은 것을 결정하고, 실행하고, 그 과정에서 매일 매일 배우며 더 똑똑해진다. 어딘가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느낀다. 하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기 보다 너무나도 귀찮은 일이다. 암만봐도 고생을 사서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 말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을 뿐더러, 용기내어 이야기하면 니가 뭘 아냐는 핀잔을 듣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말한 것이 전부 내 일로 떨어지는 것은 기본이다. 작은 것을 하나 변화시키기 위해서, 앞서 똑똑한 소수의 인원이 세운 공고한 논리의 성에 도전해야야 한다. 할말하않.. 내가 직장다니면서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내 눈앞에 문제가 펼쳐져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그 상황에 익숙해진다. 거창한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보다, 이들의 침묵을 깨는 것, 두려움과 귀찮음을 거두어 주는 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아무 이슈가 없어 ‘보이는’ 조직은 평온하지만 정말이지 위험하다. 이쯤 되면….. 관리자는 이 회사는 이런식으로 변화에 대응할 수 없구나. 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겠어. 애자일에 대한 컨설팅을 받고 전문조직을 꾸리고, 조직을 애자일하게 변화시키는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다시금 애자일에 대한 보고서의 거버닝 메세지를 한땀한땀 고쳐가기 시작하면, 바로 우리를 너무나 지치게 하는 혁신의 무한루프 시작이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혁신팀이 변화에 대한 임직원의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창업을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의 가치에 공감하는 고객의 수를 늘려가는 지난한 여정이다. 만약 우리가 전 재산을 건 사업을 하고있다고 상상해보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서비스를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시장에 직접 나가보지 않고 컨설턴트의 이야기만 듣고 투자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의 목소리를 하나도 듣지 않고 내 맘대로 서비스를 만든 뒤 시장을 찾아다니는 일 따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의 변화 역시 그래야 한다. 우리가 제안하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정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우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맞는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성장시켜야 한다. 우리 조직이 바뀌길 기대하는 모습대로 우리는 일하고 있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공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세가지 요소 – 고객의 문제, 좋은 제품, 성장을 갈구하는 팀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시장이 없으면 서비스가 성공할 수 없듯이, 모든 일은 변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일터에 젖어 들어가,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살피고 친구가 되어 공감대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동료들을 변화시킬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진정한 친구가 되자. 현장 곳곳에 숨어있는 Painpoint는 변화의 필요성과 힘을 깨닫게 해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 영역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정말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성장을 위하여 냉정하게 회고해볼 준비가 되어야 한다.

KPI에 반영하여 혁신을 의무화하고, 과제를 할당하고, 상을 주며 실행력을 높이는 일은, 마치 쇼핑몰에서 UV를 높이기 위한 1+1 쿠폰을 발행하는 것과 같이 쉬우면서도 공허한 일이다. 시간이 걸리고 두렵더라도, 스스로 우리 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사람의 수를 늘려나가야 한다. 나아가 변화를 스스로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작은 성공의 경험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오가닉한 성장을 이루는 것, 지속가능한 성장의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결국 구성원에게 얼마나 몰입되고 일관된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느냐로 이어진다. 조직을 침묵에 빠지게 만드는 혁신의 무한루프를 제공할 것인가, 아니면 잠들어있는 열정을 다시 깨우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어려워보이지만 우리는 늘 선택할 수 있다.

by. Ally 김진아 (GS, Innovation Facilit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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