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거? 그냥 재밌잖아요?

‘내가, 우리가, 그들이 일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연재를 하고 있는 현재, 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본격적으로 뒤바꾸어 놓기 시작하던 바로 그 시기에 출산/육아휴직을 하고 6개월 째 초딩1학년, 신생아 두 아들과 눈물나게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아, 서재방에서 화상회의한다고 잘 안나오는 장성한 아들 한명이 더 있다. 삼식이라고.. (할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그렇기에 일에 대해서는 현재 어떤 스트레스도 없는 청정 상태, 오히려 간절하게 일이 고픈 상태에서 ‘일의 의미’에 대해 쓰는 글이므로 약간의 편향된 관점과 과장된 모습이 그려질 수 있음을 미리 고백하고 시작해야할 것 같다. 즉, 일의 힘듦과 괴로움은 1도 없는듯 일에 대한 관점이 미화되어 굉장히 이상적인 프로챔피언직장러인듯 보일 수 있다. 이 글을 가장 먼저 읽은 끝방의 삼식이가 마치 웹툰을 보는듯 피식피식 비웃는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게 분명하다.

어쨌든 일을 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첫 번째로 어떤 걸 다룰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떠오른 것이 ‘일의 재미’ 인것은 현재 나의 무의식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육아가 재미 없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바란다..)

 

사회 초년생 시절 한 선배가 말했다. 일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돈을 주는거라고. 그러니 회사에서 재미를 찾으려 하지 말라고..

속으로 ‘나름 열정과 포부로 가득차있는 신입에게 지금 뭐라는 거지?’ 라는 생각을 했던거 보면 열정과 포부에 오기도 있던 신입이었나 보다. 괜한 반발심에 악착같이 재미있는 척 신나게 일을 했고 파고들다 보니 어느 순간 진짜 재미있게 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회사에서도 재미있고 회사 밖에서도 재미있는 (당신보다) 꽉찬 삶을 살고 있다’고..

그렇게 일을 하다 재미가 없어지면 슬슬 한눈을 팔고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만 그런것은 아닐 것이다. HR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서 커리어나 이직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나 친구들이 고민상담을 해올 때가 있는데, 듣다 보면 많은 경우에 결국 ‘지금 하는 일이 재미가 없어서’ 다른 일을, 다른 회사를 찾아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회사가 재미를 찾을 곳은 아니지만 또 실제로 일하는 재미가 없으면 다니기 힘든 것도 회사다. (회사에서 일이 아닌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는 배제하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을 하면서 기대하는재미 어떤 재미일까?

 

첫 번째로는 심플하게 자체에 대한 흥미,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직장인으로서 ‘덕업일치’의 경지에 이르기는 어렵겠지만, 지적노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 자체로 재미있기도 한 것 같다. 자신의 분야에서 관련지식을 쌓아가며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는 것, 몰랐던 사실을 발견하고 배우면서(=인풋) ‘아, 이게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수수께끼를 풀어내고(=문제해결의 기쁨), 퍼즐의 마지막 조각까지 완성해가는 과정(=아웃풋을 만드는 즐거움)에서의 재미를 한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대학교 때 한 전략컨설팅펌에서 RA(Research Assistant)로 일하면서 한 컨설턴트 분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 가는 과정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막막했는데, 한 땀 한 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해서 필요한 정보의 지도를 완성하고 항로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마치 1000피스 입체퍼즐을 맞추는 듯 재미있어 보였다. 컨설팅은 실제로 일이 많기도 하지만 이분은 정말 일이 재미있어서, 집요하게 찾아보고 분석하고 따져보고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어서 그냥 그렇게 하다보면 주당 100시간을 일하게 되는거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또 소소한 예로는 엑셀을 들 수 있겠다. 인사담당자들의 MBTI는 몇 가지 유형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중 나와 같은 MBTI유형이거나 숫자를 많이 다루는 HRer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가지 수식으로 모델링을 하고 로직을 검증하기 위한 또 하나의 셋트를 만들어 양쪽의 숫자가 딱 맞아떨어질 때, 모든 셀에 TRUE가 촤르르 떴을 때의 희열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또 누군가 잘못 짠 모델의 오류를 찾기 위해 엑셀을 이리저리 뜯어보다가 문제를 찾고 해결했을 때의 뿌듯함. 이런 기분을 생각하며 수식을 짜고 로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큐브를 맞추는 듯 게임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가끔 스트레스를 받거나 복잡한 일을 해야할 때면 그냥 집중해서 엑셀이나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전 회사에서도 현 회사에서도 여기에 핵공감하는 동료들은 전부 나와 같은 MBTI 유형이었다. (수식이 있어야할 곳에 값붙여넣기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이 사람 뭐야 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 생각보다 많다.

 

두 번째 재미는 몰입의 즐거움을 들 수 있겠다.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도 있기는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문학적, 철학적인 관점 보다는 좀더 단순한 관점에서의 몰입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싶다. 해야하는 일이 있을 때 지지부진하게 붙잡고 있으면 스트레스만 더 커진다. 하기 싫을 때는 차라리 잠시 접어 두고 집중해서 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에너지가 있을 때 몰입해서 끝내고 나면 굉장히 후련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음악을 들으면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다보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오는데 그 때가 몰입한 순간이다.

한번은 일의 생산성이나 조직문화적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몰입의 중요성을 아이를 통해서도 문득 발견할 수 있었다. 예비초등 준비를 하면서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 우리 아들도, 두 장을 푸는데 딱 집중해서 끝까지 풀었을 때와 딴 짓 하다 멍 때리다 하기 싫은걸 꾸역꾸역 풀어냈을 때 남아있는 에너지가 크게 다르다. 같은 양을 했음에도 꾸역꾸역 장장 한 시간에 걸쳐 풀고 나면 더 이상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소파에 늘어져 만화를 켜지만, 집중해서 십분만에 끝내고 나면 오히려 신이 나서 그림을 그리거나 다른 숙제를 하는 등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계속 이어간다.

몰입을 해서 쏟아내는 것은 에너지가 소진되는게 아니라 몰입을 통해 얻은 성취와 만족감으로 오히려 에너지가 충전되기도 하는 것 같다. 조직에서 구성원의 몰입 수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나에게 충분한 권한이나 자율성이 보장되었을 때’ 같은 일도 더 신나게 하게 된다. 역으로 말하면 나의 자율성이 침해되거나 나의 판단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될 때 재미있던 일도 재미가 없어지고 하기가 싫어진다. 물론 이건 개인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작은 부분부터 주도적으로 일하는 경험을 해가다 보면  한층 업그레이드 된 일의 재미를 또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권한이라고 해서 반드시 직책자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작은 프로젝트라도 직접 리드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험을 해 보는 것,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주도권을 쥐고 일을 하는 경험은 이후의 업무를 대하는 태도와 깊이에 큰 변화를 주게 된다.

우리가 스무살 성인이 되어 기쁜 이유는 그 동안의 많은 제약이 없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점점 더 많은 결정권이 생기면서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이기도 한 것 같다. 매 결정의 순간마다 나와 다른 부모님의 뜻을 마지못해 따라야 한다면, 설사 그게 날 위한 일이고 더 나은 것임을 알더라도, 날 어린애 취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혹여나 그 결정이 실패로 이어진다면 그건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엄마 때문이고 아빠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현명한 의사결정력과 책임감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스스로 결정하는 연습, 부모님들은 그 결정을 지지해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야 더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는 법을 배우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책임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내 일을 통제할 수 있을 때, 하다못해 주간 일정관리를 하더라도 내 의지대로, 주도적으로 해본다면 같은 일일지라도 일을 할 때의 기분은 정말 다르다.  그래서 자기주도학습이 그리도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평가와 보상업무를 하는 엄마가 처음으로 24/7 밀착육아를 하다보니 의도치않게 아이의 모습을 통해 어떻게 동기부여를 하고 성과를 내게 하고 어떻게 보상하면 좋을지 배우게 된다.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왕 해야할 거라면 즐겁게 잘 하면 좋지 않겠니.) 일이 우리 삶의 전부는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가 일을 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즐겁게 하면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 좋지 않을까.

 

다음 편에는 조금이라도 즐겁게 일하는 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솔직히 항상 일이 재미있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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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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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ca2000
앰버서더
yongca2000
1 개월 전

지아님 아티클을 보고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일하는 부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좋은 아티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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