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보다 대학처럼

얼마전 모 공중파 방송국 HR팀 차장님을 만났다. 기존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도무지 젊은 직원들의 관심과 갈증을 해결할 수 없어, 색다른 프로그램을 찾다가 느슨한 연대 ‘낯선대학(이하 낯대)’ 사례를 보고 연락을 주셨다. 2시간 동안 ‘낯대’ 배경부터 운영 전반에 대해 얘길 나눴다. 감사하게도 그는 경청해 줬고, 많은 질문을 주셨다. 경험 했던 것과 생각했던 것들을 최대한 말씀드렸는데,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다.

이번 세번째 글에서는 ‘낯대’ 운영시스템에 대해 얘길 하겠다고 했으니, 그때 그와 나눈 얘기에 더해 나누지 못한 이야기까지 여기에 옮긴다.

낯대는 직장인들 모임이니, 최대한 심플 해야했다.

1) 운영은 2명의 조교에게 맡긴다. 스텝은 거들 뿐.

2) 1년 등록금은 40만원. 스텝도 낸다.

3) 장소는 최대한 1~2 곳에 집중. 이왕이면 형광등보다, 백열등 있는 곳이 좋다.

4) 톡에서 만나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활용

5) 수업은 매주 월요일 8시부터 10시까지 2교시. 3교시는 자율.

6) 처음처럼 보다 대학처럼

 

풀어보면 이렇다.

1) 낯대 조교는 2명이다. 낯대를 움직이는 이들이다. 한 명은 행정 조교다. 수업을 챙긴다. 스케줄에 따라 발표자에게 자료를 받고, 수업을 세팅한다(발표자에게 발표 일정 리마인드 포함). 수업 때는 일용할 김밥(혹은 저녁 대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을 준비하고, 출석 체크를 한다. 낯대의 졸업 요건은 1번 발표, 7번 이상 출석이다(매달 1번은 나오란 얘기다). 출석이 미달되면 12월 졸업식 때 졸업장 대신 수료증을 받게 된다. 수업 후, 뒤풀이 장소도 조교가 예약한다. 이 일을 1년간 한다.

한 명의 조교는 사진 기록 담당이다. 사진 잘 찍는 분에게 현장 기록을 맡긴다. 다들 자기 사진이 드문 삶을 산다. 누군가(대개 아이들이다)를 찍어 주는게 익숙한데, 무겁고 두텁고 새까만 카메라(한마디로 DSLR)로 활짝 웃는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아 단톡방과 페북 그룹 방에 공유한다. 다들 사진을 보고, 감탄한다. 누군가 나를 정성스럽게 찍어준 사진을 본다는 것. 그 얼마만의 일인가. 덕분에 카톡 플필이 자주 바뀌는 걸 본다. 매주 사진을 남기지만, 시간이 지나고 계절이 바뀌면서 표정과 분위기는 계속 바뀐다. 그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진의 힘이 점점 커진다. 그러니 어떤 행사든, 이왕이면 좋은 카메라로 멋진 사진 많이 찍길 권한다. 그때가 우리의 최신의 시간 아니던가.

 

낯선대학Y(25세~32세) 입학식 장면. 낯선대학1기 조교 ‘조휘영(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님과 함께 Young 버전 시작

2) 1년 등록금은 40만원이다. 이 돈으로 1년을 운영한다. 주로 쓰이는 데는 조교 인건비다. 그리고 장소 대관과 각종 행사(MT, 졸업식 등) 진행비로 쓰인다. 보통 4개월 주기로 진행되는 트**리, 문* 등의 ‘소셜살롱’ 참가비와 비슷하다. 졸업식까지 진행 한 후, 돈이 남으면. 1/N 로 나눈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은 스텝들도 하나같이 학비를 낸다는 것이다. 스텝들은 1년간 낯대를 운영하며 시간을 적잖이 쓴다. 마음도 상당히 쏟는다. 그런 고생을 하며, 학비까지 낸다. 이 부분은 스텝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준다. 스텝이라고 특별할 것 없이, 함께 한다는 느낌을 만들기 위함이다.

 

3) 오프 모임은 장소가 중요하다. 첫번째는 위치다. 직장인들이라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다. 그들이 8시까지 모이고,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선. 최대한 중심에 자릴 잡아야 한다. 그런데 서울의 중심일수록 대관료가 높다. 평균 출석이 60%대라 보통 20~30명이 참여한다. 그러니 장소의 크기도 넉넉해야 한다. 다행히 낯대는 1기 때부터 한남동에 거점을 마련했다(2019년 4기부터는 그 장소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패스트파이브 도움을 받았다). 저녁 시간에 비어있는 참가자 분의 회사 교육장을 (운 좋게)빌렸다.

두번째로 중요한 건 장소의 분위기다. 낯대 거점은 교육장으로 쓰이는 곳이라 이쁘진 않았다. 그냥 형광등이 빼곡한 곳이라 담백했다. 더해 위치와 장소의 넉넉함 만으로도 고마웠다. 수업 장소는 종종 바꼈다. 발표자가 원할 경우, 장소를 옮겼다. 그럴 때 참여자들은 새롭고 낯선 공간에 초대가 된다. 이곳은 위치는 조금 까다롭지만, 풍경은 어느 각도로 찍어도 훈훈하게 나왔다. 주로 백열등이 있는 공간이었다.

 

2017년. 낯선대학2기. 민은경(소리), 주보라(가야금) 수업 장면

 

4) 톡에서 만나요! 매주 만나지만, 그래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그 간격과 간극을 온라인으로 채운다. 카카오 단톡방과 페이스북 그룹 방을 시작할 때 만들어 1년간 애용한다. 물론 참여자 마다 톡 빈도는 다르다. 오프라인에서 말과 행동이 흥하는 분이 있고, 온라인에서 행동 대장을 하는 분들 자연스럽게 생긴다. 그를 중심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무르익는다. 단 폭증하는 톡이 부담스러운 분들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알람을 꺼두고 중요한 키워드를 설정해 단톡방에 참여 하라고 알린다. 뿐만 아니다. 사람마다 톡을 대하는 태도(혹은 방식)가 다르다. 가령 새벽 전화와 문자는 어려워도, 톡은 가능하다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옳고 그름의 문젠 아니다. 그래서 단톡방 사용 규칙을 만들어 공유한다.

졸업 후에도 단톡방은 유지된다. 하지만 첫날의 뜨거움과 1년 간의 화끈함은 해가 넘어가며, 차츰 사라진다. 차분해 진다. 그리고 멤버들의 생일과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단톡방은 살아난다. 예전에 1:1 대화도 단톡방을 통해 했는데, 이젠 따로 한다. 단톡방도 자연스럽게 녹이 슨다. 페북 그룹 방도 마찬가지다.

 

5) 수업은 매주 월요일 2교시로 진행이 된다. 참여자들이 돌아가며 발표(자신의 경험, 일, 삶 등)하는데, 3월 말에 시작해 12월 초까지 수업이 진행된다. 8월 한 달은 방학이다. 50여명이 참여하기 때문에 25번의 월요일이 필요하다. 공휴일, 연휴 등등을 고려하면 봄부터 겨울 초입까지 있는 월요일을 꽉 차게 쓴다. 참여자들의 발표 순서는 입학식 때 추첨으로 확정한다. 그런데 진행하다 보면, 예정된 일정에 발표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그럴 땐, 조교에게 알린다. 조교는 아직 발표를 하지 않은 분들에게 알려, 대타를 찾아 날짜를 바꾼다. 혹여나 대타가 없다면, 스텝에게 알린다. 스텝들은 그 시간을 어찌할지 바로 협의한다. 외부 강사를 초대하거나(이럴 일은 거의 없고), 이벤트를 연다. 3교시는 수업 후 진행되는 뒤풀이를 뜻한다. 이건 자율참석이다. 어떤 강제도 없다. 그런데 정이 이끈다. 30분만 있다가 갈께! 하다가 3시간 있다가 결국 택시 타고 집에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자리에는 의자에 끈적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작년(2019년)부터는 0교시가 만들어졌다. 함께 밥 먹고 1교시에 참여한다.

 

낯대 1기, 오은 시인과 함께(한 때 그가 운영한 에어비앤비 에서)

 

6) 대학처럼. 이름에 대학이 들어가니, 대학 시스템을 많이 참고한다. 3월에 입학식과 개강을 하고, 4월에 MT 를 간다. 8월에 방학을 한다. 그리고 10월에 이벤트를 열고, 12월에 졸업식을 가진다. 여름 방학도 그냥 보내지 않는다. 농활(?)이 있듯, 낯대엔 ‘올출데이’ 이벤트를 한다. 이 행사의 의도는 2가지다. 첫 번째는 평소 수업 후 시간이 없어 뒤풀이를 못하고 바로 집에 갈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마음 편하게 뒤풀이를 할 수 있도록. 두 번째는 1학기에 마음과 달리 출석을 많이 하지 못해 괜한 걱정과 부담이 있는 분들이 편히 올 수 있도록. 그러니까 ‘올출석데이’를 뜻한다. 이날의 메인 이벤트는 ‘학생회 선거’ 다. 1학기 동안 온/오프에서 서로를 알아 왔으니, 누가 누가 분위기를 잘 만드나! 어림 알 수 있다. 이때 선발된 학생회가 2학기 분위기를 이끌 수 있도록 스텝들은 돕는다. 2학기에는 학생회가 주도해 이벤트를 진행한다(체육대회, 플리 마켓 등). 졸업 이후에는 이들이 동문회를 꾸린다. 시험과 성적만 없지, 이렇게 우리가 아는 학교와 비슷하게 운영한다.

 

이렇게 6가지 꼭지로 낯선대학 운영 전반을 훑었다. 처음에 언급한 미팅 이야기(모 공중파 방송국 HR팀 차장님)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방송국은 여전히 세상 똑똑한 분들이 모이는 곳이고 기자, PD, 아나운서, 작가, 기술직 등 다양한 직군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들간 소통이 막혔고(부서 중심주의), 더욱이 연차에 따른 생각과 관심의 갭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했다. 자연 새로운 미디어(유튜브, 넷플릭스 등)에 밀리고 치이는 상황에 직면했다. 그는 낯대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 하나의 답이 되긴 어렵지만 충분히 흥미 있는 해답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의견을 줬다. 오늘 운영에 대한 이야길 정리하며, 그때 놓친 얘기도 더했다. 언젠가 회사에서 낯대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고 싶다던 그 차장님이 이 글을 꼭 봤으면 좋겠다.

*그 미팅 후, 그 회사에 초대가 되었다. 낯대 얘기부터 시작해 나를 확장하는 힘으로서 ‘느슨한 커뮤니티’ 에 대해 임직원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반응이 좋았다. 한 계단을 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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