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자금경색으로 인해 대퇴사시대, 대이직시대가 다소 주춤해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2020년 대퇴사시대가 한창 지속될 때, 저는 대기업에 재직중이었고 HR 경력시작에서 잘 팔리기 시작하는 5~6년차가 되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대기업의 동일연차 분들에 비해 많은 일을 경험해 본 저는, “이런 경험은 대기업보다는 스타트업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스타트업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지금 재직 중인 회사는 상법상 스타트업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작년에 설립된 따끈따끈한 회사입니다. 창립 3개월 차 회사에 입사한 대기업 출신 HR 실무자의 1년을 통해 여러분의 고민에 조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이 글을 시작합니다.
1.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창립 초기의 회사들은 대부분 HR과 총무를 겸임하는 사람을 찾기 마련입니다. 이 경우 HR을 한 사람을 채용하는 경우가 더 많구요. 때는 제가 입사 후 취업규칙 초안을 작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물론 이 때 저는 회사 전화 설치를 위한 업체 컨택, 회사 이사를 위한 업체 컨택, HR시스템 도입, 퇴직연금 업체 컨택을 다 함께 하고 있었구요. 이 때 메신저가 하나 도착합니다. “영석님, 화장실이 막혔어요!” 구성원 입장에서는 어디에 연락해야 할 지 모를 때 당연히 총무역할을 하는 부서에 말하는 게 맞지요.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왜 나한테..??”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현타가 옵니다. 실제로 저는 강한 현타에 회의실에 박혀 1시간 동안 멍하니 있었습니다.
2. 반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있다.
기초적인의 HR의 기능들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면 구색이 꾸려지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적인 기능은 법적 요건 충족, 회사가 굴러가기 위한 최소한의 영역 정도이긴 하지요. C-level에서 따로 원하는 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기에서 본인의 스탠스에 따라 단순한 운영업무만 하면서 널널한 회사 생활을 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입사 5개월 차에 채용에 치이고, 성과관리 제도 설계하는 데 치이는 과정에서 대표님께 사람 충원해달라고 했었는데 “아직은 이르다며” 거절당했었는데요. 채용과 성과관리가 마무리 되며 한 달 후에는 갑자기 썰물같이 업무가 빠지더니 하루종일 멍 때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럴 때에 일을 찾아서 하기 시작하지 않으면 낙동강 오리알이 될 수 있겠더라구요.
3. 조직이 작다고 조직 내 갈등도 작지는 않다.
대기업에 있다보면 여러가지 갈등상황에 마주하게 됩니다. 사실 스타트업을 생각할 때 가장 동경하는 것 중 하나는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입니다. 자칫 이 생각이 회사에 갈등이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요. 경험해보니 크고 작은 갈등이 항상 생기는 것은 대기업이나 스타트업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많은 회사의 경력직들 위주로 모이다 보니, 자신의 전문 분야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하여 다른 의견이 발생하는 경우 그 갈등이 더 커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 업무에 대한 긍정적인 갈등이 많습니다) 다만 갈등관리가 잘 안될 경우 계속해서 더 커지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소위 정치질이라고하는 나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더라구요.
장점은 쓰지 않고 단점만 써놓아서 이 글의 의도가 “아 스타트업을 가지 말라는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미 이 글을 읽으실 분들은 스타트업의 장점을 충분히 아실 것이라고 생각해서,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 단점 위주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도 모두 예상하고 있기는 하겠지만, 장점을 간단히 나열해 보자면
- HR 전반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월등히 많으며 그 결과 Generalist가 될 수 있다.
- 짧은 결재라인을 통해 퀵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이는 내 머릿속에 있는 단순한 가정을 실제로 테스트 해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 회사가 성장하며 밟아가는 하나하나의 스텝들을 함께 경험하고 참여할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이 것들이 보상의 형태로 찾아오기도 한다.
- 사외에서 진행되는 여러 HR 행사(세미나, 교육, 특강 등등)에 부담없이 참석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늘려갈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잘하는 회사의 벤치마킹이 필요해요”)
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채용 업무를 하면서 원티드를 한번 보았었는데요. 세상에는 진짜 많은 회사들이 있으며, 많은 회사에서 HRer를 채용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들 본인의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직장에서 일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