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공유냐 _ 조직문화 탐사기

8년 만에 이사를 앞두고 있다. 퇴근하면 짐을 정리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하나씩 사 모은 책장이 열 개가 되었는데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책을 한 권씩 꺼내보며 이사 갈 집에 데려갈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때마다 마치 책이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저와의 추억 기억나시죠? 저는 아직 다 안 읽어보셨잖아요? 저 버리고 가실 건가요?’ 녀석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모질게 먹었던 마음도 스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래도 이번에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다. 단 두 개의 책장 분량만큼만 책을 가져가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나 공간 관련 도서나 영상 콘텐츠를 보다 보면 가구나 책과 같은 물건이 자리 차지를 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듣곤 한다. 그럴 때면 특히 부동산 가격이 높은 편인 수도권에서 많은 물건을 지니고 산다는 건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열 개의 책장에 쟁여두고 있던 책들에 나는 얼마만큼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걸까?’ 문득 생각에 잠겨 들었다.

직접 책을 소장하면서 원할 때 바로 읽을 수 있는 삶과 필요할 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 삶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다. 책에서 오는 물성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나만의 책장에 책을 넣어두고 언제든지 매만지며 볼 수 있다는 매력이 꽤 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책들을 늘 가까이 대했던가?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매주 쏟아지는 신간 가운데 마음을 끄는 책은 꼭 있게 마련이어서 서점 앱 장바구니에는 이백 권이 넘는 책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매주 한두 권씩을 책을 사 모으다 보니 새롭게 만나는 책들 읽기에도 바빴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 나는 왜 그동안 철 지난 책들을 그리도 많이 소장하고 있었을까?

내가 원할 때 바로 접근할 기회와 권한, 나만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 책장을 그윽이 바라보다가 그날 내게 말 걸어오는 책을 만날 때의 설렘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책을 과감히 정리하고 도서관 책을 적극적으로 이용해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물리적 공간의 제약, 인근 도서관 장서의 양과 질에 대한 신뢰 증대, 책을 나눠보고 돌려보면서 말과 글로 함께 한 공유의 경험이 한몫한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소유 대신 나눔과 공유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인생여행자 정연의 조직문화 탐사기 2화

 

이십 년 전 처음 회사생활을 시작하던 시절 회사의 자료는 모두 업무용 개인 PC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 담당했던 전사 인사평가 업무 자료도, 구성원 인적 정보가 담긴 보고서도, 인사제도 설명 자료도 모두 당시 담당자였던 내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고이 저장되어 있었다. 특히나 정보 보안과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한 업무를 하고 있던 당시 우리 조직의 경우에는 더욱더 자료 관리에 엄격한 편이었다. 업무 담당자나 해당 팀장이 아니면 언감생심 자료를 보거나 보유하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점조직’으로 일하는 분위기가 업무의 일상에 들어차 있었다.

정보와 자료는 곧 권력이었다. 얼마나 많은 히스토리 자료와 최근 정보 파일을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지위와 영향력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었다. 도제 방식으로 업무 인수인계가 되다 보니 자료 역시 선배의 하드디스크에서 후배의 하드디스크로 전해졌고, 자료를 나누는 일이란 자신의 권력과 에너지를 나눠주는 일과 같아서 꼭 필요한 상황이거나 선배의 마음에 들 때만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파일을 모으고 축적해두는 건 조직 내에서 나의 입지를 강화하고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기초 활동이 되었다.

같은 회사에서 이십 년 가까이 일하다 보니 보유하게 된 데이터의 양도 세월만큼 늘었다. 처음에 PC 하드디스크에 몇십 메가바이트에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회사 클라우드에 내가 보유한 데이터만 해도 몇십 기가바이트가 되었다. 중간에 회사 안에서 본부 간 이동하는 가운데 유실된 자료도 꽤 있었음에도 이렇게 저렇게 모은 자료가 우리 집 열 개의 책장 속 책들처럼 나의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언젠가 필요하겠지, 볼 일이 있겠지.’ 하며 모아놓았던 것인데 상당 부분은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유효기한이 만료된 말 그대로 ‘옛날 자료’이고 실제 찾아볼 일도 별로 없기도 하다. 그럼에도 쉬이 자료를 폐기하지 못한 나의 마음은 무엇일까? 과거 권력의 증표였던 자료에 대한 향수이자 습관일까?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는 안심에서일까? 아니면, 당시 했던 일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일까? 이런저런 질문들이 마음을 스쳐 간다.

지난주에는 MS Teams 리더 대상 교육을 다녀왔다. Teams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만든 협업 도구인데, 구성원 간 영상통화, 채팅, 자료 아카이브, 공동작업 등에 이용된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Zoom과 함께 영상회의 도구로 많이 활용되면서 흔히 영상통화나 채팅 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번 교육에 참여하면서 ‘함께 일하는 걸 도와주는 도구’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특히, 자료를 함께 작성하고 공유하고 축적해서 ‘집단 지성’으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교육에 함께 참여한 리더들과 공동 문서 작업을 하면서, 자료를 공유하고 관련해서 피드백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들어섰구나 새삼 느꼈다.

물론 그전에도 회사 클라우드에 자료를 저장하고 공유하는 일은 있었지만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축적해서 공유’한다는 사상을 업무 현장에 데려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른바 ‘내 것’이라는 좁은 생각과 욕심 때문이었다. 일을 하며 만들어낸 결과물의 소유권이 구성원 개인과 회사 가운데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서, ‘이 자료를 내 책장에만 꼭꼭 간직할 것이냐, 함께 나누면서 더 키워갈 것이냐.’ 생각 정리가 필요했다. Teams와 같은 협업 도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걸 명확히 발견하게 된 것도 이번에 참여한 도구 활용 교육 덕분이었다. 결국 구성원 간 신뢰, 소유가 아닌 공유의 힘에 대한 믿음, 나만의 축적이 아닌, 함께 하는 성장의 과제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은 깨달음의 여정

문화비평가 루이스 하이드는 그의 책 <선물>에서 ‘대가 없이 주고받는 일은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재능과 영감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돌려주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타고난 재능(Gift)에서 비롯된 창작물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돌려주어야 하는 선물(Gift)이며, 재능은 시장의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대가 없이 주고받아야 하는 선물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환원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가치는 배가된다.’ 라는 그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나의 것을 쌓아서 교환하는 거래의 경제에서 선의로 함께 나누는 선물의 경제로의 전환을 설파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다 보니, 이는 비단 창작자뿐만 아니라, 회사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부터 나눠야지. 온전히 주고 공유함으로 나는 더 성장하고 더 영향력이 생길 거야.’ 이 마음을 품고 오늘도 출근한다. 물론 쉽지 않다. 매번 욕심에 휘둘리는 자신도 발견한다. 그럼에도 이 길로 들어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거기에 나의 더 나은 미래와 성장이, 동료와 함께하는 일터의 기쁨이, 조직의 성장이 있음을 믿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가? 당신의 조직은 어떤가? 나만의 책장에 고이 책을 쌓아놓고 있는가? 함께 나누면서 더 큰 서가의 도서관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 글쓴이 _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자동차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9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자동차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인생여행자 정연, 19년차 HR 매니저, 9년차 요가수련자, 14년차 아빠로 살아갑니다.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https://brunch.co.kr/@prom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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