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에서 자전거로, 기업의 핵심가치
흔히 지루하고 반복적인 인생을 쳇바퀴에 비유하곤 한다. 있는 힘껏 달려보았지만 결국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인 자신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은 얼마나 절망스러운가.
혹시 이러한 모습이 지금 사무실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나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하루하루 녹초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그래서 지금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묻자면,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이 회사 밖에서의 자아 실현, 부수입을 통한 조기 은퇴 실현 등을 부르짖으며 쳇바퀴에서 급히 하차하기 전에, HRer로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의미 없이 제자리에서 돌고 도는 쳇바퀴를 개조하여 원하는 목적지를 향해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자전거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자전거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차치하고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구조만을 떠올려 보자. 자전거와 쳇바퀴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바로 핸들의 유무이다.
이 글은 기업을 쳇바퀴에서 자전거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결정적 단계, 핸들을 어떻게 설계하고, 설치하며,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다룰 것이다. 핸들이 앞뒤없이 냅다 구르기만 하는 바퀴를 붙잡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듯이, 기업의 핵심가치는 급격하게 성장하며 통제 범위를 벗어날 위기에 처한 사업의 방향성과 구성원의 행동 양식을 다시금 조직이 원하는 미래를 향해 정렬시키는 역할을 한다.
01. 기업의 핵심가치 Framework
핵심가치란 무엇인가? 미션은 또 뭐고, 비전과는 어떻게 다른가? 본격적으로 핵심가치를 설정하기에 앞서, 각 개념과 이것이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가자.
우선 기업은 현재 처해 있는 경영환경(산업, 시장, 경쟁자, 규제, 기술 변화 등)에 따라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이를 내/외부 구성원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내게 된다.
가장 광범위한 형태인 MTP(Massive Transformative Purpose)는 해당 조직 고유의, 영감을 고취시킬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목표이다. SpaceX의 “The road to making humanity multi-planetary”라는 문구가 MTP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션은 조직의 목적(Why)을 나타내며, 주로 사업적 의도를 담은 문장으로 구성된다. Google은 “To organize the world’s 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이라는 문장을 통해 그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모여 일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비전은 이러한 목적을 이루었을 때의 최종적인 상태(What)를 묘사하는 것으로, 목적 달성의 상황을 그리는 만큼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작성하게 된다. Nike는 “We see a world where everybody is an athlete – united in the joy of movement…”로 시작하는 문단을 통해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생생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비전을 공표한 바 있다.
핵심가치는 여기서 구성원들의 피부 가까이 한 발짝 더 다가선 개념으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사고방식 및 행동의 준거로서 조직의 의사결정 및 경영 원칙의 근간이 되어 기업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
Microsoft의 “Innovation, Diversity and inclusion,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처럼 기업이 추구하는 지향점을 구체적인 문장이나 키워드로 나타낸 핵심가치는 해당 기업의 사업 및 인사전략 수립의 근간으로 작용하며, 시간이 흐르고 구성원의 변화가 생기더라도 변함없이 유지되어 기업의 정체성을 지키고, 내/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조직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기업의 방향성과 중심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의 조직이 위의 모든 요소들을 갖출 필요는 없으며 회사의 필요 및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른 취사선택이 필요하다.
02. 핵심가치 설정하기
이제 핵심가치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얻었으니 본격적으로 우리 회사의 핵심가치를 설정해볼 차례다.
회사의 성장에 따라 내/외부적으로 명문화된 핵심가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 경영진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구성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통해 핵심가치를 정의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 과정에서 아래와 같이 시간 및 공간을 각각 x축, y축으로 설정한 Spatio-temporal Value Frame을 활용하면 조직의 과거-현재-미래, 내부-외부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들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핵심가치에 대해 구성원의 공감과 자발적 실천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핵심가치 설정 단계에서부터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한 Listening & Discussion 세션을 설계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방식을 따를 수 있다.
STEP1. 우선 구성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평소 생각 및 경험에 기반해 조직 구성원이 공유해야 할 가치, 지속 유지해야 할 행동 양식, 개선 혹은 새로이 강화해야 할 행동 양식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준다.
STEP2. 참여자들을 3~4인의 소규모 그룹으로 나누고,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리더/발표자/서기 등 역할을 분담한다.
STEP3. 각 조별로 토의를 통해 도출해낸 핵심가치의 의미와 선정 이유를 체계적으로 정리(문서화)한 후, 정리된 내용을 종합 세션에서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회사의 MTP/미션/비전/사업계획, (만약 존재한다면) 현재 핵심가치, 타 기업의 사례 등 다양한 자료를 참고할 수 있으며, Brain Storming 방식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것이 권장된다.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직접 경험하고 느낀 점들을 바탕으로 도출해낸 핵심가치와 그 이유 하나하나가 회사의 현재 상태나 방향성을 점검하는 중요한 지표로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렴 및 정리된 구성원의 의견은 경영진의 피드백과 논의를 거쳐 조직 전체가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는 핵심가치로 정립되게 된다.
03. 핵심가치 내재화 및 적용하기
핵심가치를 만들고 공표했다고 해서 이것이 진정한 조직의 ‘핵심(core)’에 자리잡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핸들을 만들었다고 바퀴가 저절로 핸들에 가서 붙지는 않으니까. 바퀴와 핸들을 연결하고, 핸들 조작법을 익히는 단계,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내재화와 적용 과정이 남아 있다.
정립된 핵심가치는 내재화를 통해 기업문화로 녹아들어 기업의 가치관 및 신념 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업무 공간 디자인, 다양한 이벤트 등을 통해 핵심가치의 노출 빈도를 높이고, 관리적인 차원에서 교육/내부 커뮤니케이션/채용/보상 등 기업의 세부적인 경영활동에 핵심가치를 적용하는 것이 이러한 내재화 노력의 일환이 될 것이다.
특히 내부적으로 평가/보상 등의 의사결정에 핵심가치 척도를 반영하여 내재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는데, 간단하게 핵심가치별 구체적인 행동양식을 4점 척도 평가 문항으로 제작하여 자기평가 및 동료평가를 시행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때 이러한 핵심가치 평가 점수를 평가 및 보상의 주된 기준으로 사용하기보다는 기존 성과/역량 평가를 보완하는 Booster 또는 Stopper 요인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자기평가-동료평가 점수의 격차는 개인별 변화 및 개발 노력의 시발점으로 큰 의미가 있는데, 이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익명성 보장, 피드백 전달, 결과의 활용 및 개선 방안 제안 등에 있어 HR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마치며
지금까지 다룬 핵심가치 정의-설정-내재화 및 적용의 세 단계를 무사히 끝마쳤다면, 조직은 이제 미션과 비전을 향해 달려나갈 최소한의 준비는 마친 상태가 된 것이다. 물론 그 여정 중에는 힘겨운 언덕길도, 어딘가 흔적으로 남을 진흙탕도, 때로 피해가기 어려운 궂은 날씨도 만나게 되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밟는 페달은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테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근간이 된 원티드 HR 오픈클래스 ‘성장하는 기업의 미션 및 핵심가치 설정법’ 의 강연자이신 김기재 님이 강의 중에 인용해주신 David S. Rose의 한 마디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Any company designed for success in the 20th century is doomed to failure in the 21st.”
세상을 뒤흔드는 변혁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해 기업이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핸들, 지켜야 할 그만의 가치와 정신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