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수평조직을 직접 만난 날

‘수평조직’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심리적 안전감이 있는 수평조직의 중요성은 이미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수평조직을 ‘경험’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올해로 55살이 된 회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다른 팀은 몰라도 우리 팀은 수평조직이라고 자부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요. 최근에 ‘진짜 수평조직은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책이나 아티클에서 보며 상상했던 나이스하고 유쾌하기만한 수평조직이 아니라, 직접 경험한 –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즐거운 – 수평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저희 회사에 기업문화팀이 새로 꾸려졌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에 새로운 팀장님 및 팀원들과 업무 분장을 주제로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팀은 기업문화와 교육 업무를 함께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총원을 각 업무에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어쩌다 보니 교육 업무와 기업문화 업무를 둘 다 해 보기도 했고, 담당 중에 해당 업무를 가장 오래 해왔던 제가 담당을 대변하는 상황이 되어 팀장님과 의견을 계속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나) 기업문화업무의 양에 비해 교육업무 양이 많아서, 교육과 기업문화 업무 담당자를 완전히 나눠버리게 되면 교육업무 담당자들이 많이 힘들어질 것 같아요. 교육업무는 구성원들이 다 나눠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 교육업무를 모두가 맡게 되면 기업문화업무가 업무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기업문화 개선은 지금 우리 팀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모두가 교육과 기업문화를 맡게 되면 모두가 교육 업무도 기업문화 업무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팀장님은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수행하려면 기업문화담당자, 교육담당자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셨고, 반면 담당들은 각 담당자가 기업문화 업무와 교육 업무를 병행하기를 바랐습니다. 팀장님은 팀 차원에서 팀이 해야 하는 역할 위주로, 담당자들은 담당 차원에서 앞으로 우리가 실제로 해야 하는 업무 위주로 생각을 하다 보니 의견 충돌이 생긴 것입니다. 앞으로 전반적으로 팀이 어떻게 운영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팀장님도 담당자들도 의견의 합치가 안 된 상태에서 다른 한 쪽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앞으로 팀이 원활하게 굴러가기 위해서는 ‘컨센서스’를 만들어야 했어요. 하지만 담당자인 저로서는 팀장님의 의견에 계속 딴지 아닌 딴지를 걸게 되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한시라도 회의를 마무리 짓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꽤나 쉽지 않았던 회의는 결국엔 팀장님과 담당들의 의견이 잘 조율되어,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참석자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결론을 내고 마무리되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어려웠던 회의가 잘 마무리될 수 있었는지, 더 나아가 제가 경험했던 그 어떤 회의보다 즐거운 회의로 기억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회의를 통해 비로소 수평조직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회의를 돌아보며, 수평조직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조건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먼저, 수평적인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바로 수평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팀장님의 확고한 의지였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팀장님은 조직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구성원인 저는 수평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팀장님의 의지가 참이라고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팀장님과 저의 의견이 다를지라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각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벽에 부딪친 것 같은 느낌도 받기도 했고 (물론 팀장님은 저보다 더 답답하셨겠지만요), 그래서 소통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의 참석자 누구도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서로 반박을 하는 것조차 서로의 이야기를 진짜로 ‘듣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모두가, 특히 리더가 ‘수평조직의 필요성’에 진정으로 동의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팀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구성원의 의견을 끝까지 들어주는 리더의 모습은, 수평조직에 대한 리더의 의지가 말뿐만이 아니라는 진정성을 증명해 주는 좋은 증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공통의 명확한 목표’였습니다. 공통의 목표 덕분에 우리의 회의는 단순한 의견교환의 장에서 끝나지 않고, 상충되는 의견들이 하나로 모이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초반에 피상적으로 업무분장에 있어서 각자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할 때는, 서로의 입장차가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의견이 부딪치면서 진짜 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하나 둘씩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시점에 우리 팀이 신설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것이고, 우리 팀이 수행하는 과제로 보면 기업문화, 교육으로 양분되지만, 어쨌든 우리 팀의 목적은 우리 조직이 더욱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서포트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단 하나라는 것이었어요. 이처럼 공통의 전제를 갖고 보니, 조율 가능한 부분들이 생겼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참석자가 동의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최근에 읽고 있는 조직문화의 대가 에드거 샤인과 피터 샤인이 저술한 <리더의 질문법>에서 읽은 구절들이 떠올랐습니다.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하는 팀 동료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우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여기서 크게 마음에 와 닿았던 개념이 ‘우리의 관점’이었습니다. 회의의 참석자들은 하나의 팀으로서 궁극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어느새 ‘우리’의 관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희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결론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평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해당 조직의 목적과 역할에 대해 모든 구성원의 합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먼저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팀 구성원 간에 목적/목표에 대한 명확한 공유 인식이 없다면, 심리적 안전감이나 수평조직은 그럴듯한 구호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평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좋은 조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만 이야기하고, 일방이 누군가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굳이 껄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면서까지 이루어야 하는 공동의 목표를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말이죠. (그리고 회의가 이렇게 흘러갈 경우, 모두가 예상하시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상급자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는 식의 결론이 나기 쉽습니다.) 이 경우에는 팀이 성과를 내기 위해 정말 필요한 생산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것은 팀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입니다. 사실 저는 해야 할 말을 못하고 넘어가는 편은 못 되어서, 그래도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들을 하며 회사 생활을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유난히 의견을 모으는 것이 더 어려웠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다가, 아직까지 제가 꽤나 ‘동질적인 팀’에서만 회사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신입사원 때부터 함께 했던 선배들, 리더들과 일해왔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갖는 것 자체가 흔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하게 된 팀은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앞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이번처럼 어떤 중요한 안건에 대해 의견이 다르면 조율하는 것이 정말 어렵겠지만, 팀의 다양성이 정말 큰 효용을 가진다는 것을 맛보기로나마 체험하게 된 지금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됩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나와 다른 사람들로 구성된 팀’의 효용성입니다.

생각이 같으면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부딪칠 일이 없는 비슷한 사람들로만 팀이 구성되어 있으면,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조직, 이야기가 많이 오가는 조직이 되는데, 그것을 수평조직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그것은 수평조직이 필요한 이유에서 비추어 볼 때는, 반쪽짜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평적인 조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되는 이유는,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이제 어느 한 사람(주로 리더)의 생각만으로는 좋은 답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팀이 동질적이라면 그 안에서 아무리 수평적으로 소통이 된다고 한들, 다양성을 갖춘 팀에서만 나올 수 있는 창의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우리로서 해야 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각자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낼 수 있는 팀이 진짜 수평적인 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의견들이 수평적인 조직에서 충분히 부딪치고 서로 다듬어지면서 팀의 성과 창출에 필요한 의미 있는 의견들로 모아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심리적안전감이 보장된 수평적인 조직이 가져올 수 있는 진짜 긍정적인 효과일 것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회의였는데, 회의실 문을 나서고 나서는 꽤나 재밌는 회의로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새로 만난 팀장님과는 많이 투닥투닥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재밌을 것 같고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수평조직을 향한 리더와 구성원들의 의지, 명확한 목표, 그리고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면 책에서만 봤던 멋진 수평조직을 진짜로 만들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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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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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광수
외부필진
심광수
8 일 전

‘수평’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게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장미
필진
장미
8 일 전

울 승희찡… ㅠㅠㅠ 고민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 수평조직일수록 회의가 시끄러운(?) 것 같아요. 수평적이니까 아이디어도 더 많이 주고받게 되고 ! 분위기 넘 부럽부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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