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재작년, 2019년 가을로 기억한다. 그룹사 전체의 HRD를 담당하는 우리 부서는 다음 해 연간 업무 계획을 추석 즈음에 잡는다. 그 해 최고의 화두는 다름 아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었다. 이듬해 1월 그룹의 사업 방향을 천명하는 신년사에 이 단어가 한 꼭지로 들어갈 정도였으니 그 중요성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그때부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생소한 단어는 어느새 그룹 교육의 0순위 주제가 되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무엇인지,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지 팀원 모두 낯설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무엇인지 알아야 교육도 기획할 수 있으니, 모두가 이 단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고,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해 다른 기업의 디지털 교육 기획을 알아보며 연간 업무 계획을 완성했던 것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이다.
그 이후 팬데믹 위기가 닥치며 갑자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현실이 되었다. 교육담당자로서 당장 계획된 오프라인 교육들을 하루아침에 비대면으로 전환해야만 했고, 이러닝 교육 컨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만드는 새로운 업무가 추가되었다. 코로나19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가속화시켰다는 분석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포스트 코로나와 HR의 미래
일상이 된 위기 속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제 단순히 교육의 주제를 넘어 현실적인 고민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업무적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교육에 접목시킬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회사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전통적 대기업인 우리 회사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원티드의 Future of HR 컨퍼런스 중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세션’을 흥미롭게 보았고, 이제 그 내용을 간단히 리뷰하고자 한다.
#1. Future of Work [연사 : 송한상 Deloitte Consulting HC Workforce Transformation Leader]
코로나19 이후 일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까? 기업들은 위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또다른 미래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프 슈워츠(Jeff Schwartz)는 그의 책 <Work Disrupted>에서 파괴적 혁신을 통해 일이 새롭게 창조되고, 10년 동안 나타날 변화가 COVID-19로 인해 불과 10주 사이에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최근 한 기업대학(corporation university)의 경우, 그들의 경쟁자를 유튜브, 세바시 등 교육 영상을 접할 수 있는 영상 플랫폼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다가올 미래는 21세기에 맞는 마인드와 사고방식으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과거의 방식으로는 미래의 일을 예상할 수 없다.
딜로이트에서는 매년 인적자원 보고서(Human Capital Report)를 발행하고 있으며, 올해(2021년)의 보고서에서는 HR 관점에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다. 그 결과는 크게 인간과 기술 사이의 세 가지 역설(paradox)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속감(belongings)에 대한 역설이다. 비대면 근무, 리모트 워크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개별화, 파편화된 상태로 일하는 직원 개인이 어떻게 하나의 조직에 대한 소속감을 얻을 것인가? 두 번째는 안전(Security)에 대한 것이다. 팬데믹과 같은 위험 상황 속에서 점차 포괄적인 의미의 안전이 중요해지는데, 어떻게 안전을 보장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대담한 시도(Bold Action)에 대한 역설이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계속적으로 조직은 새로운 비즈니스 채널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데, 어떻게 구성원들이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러한 패러독스와 더불어 보고서에서는 HR의 9가지 아젠다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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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longings : 어떻게 소속감을 만들 것인가?
- Well-Being : 일하는 방식에 휴머니티를 녹여내는 방법
- Postgenerational Workforce :
다년생 식물(Perennials)과 같은 경력직, 고령층 직원을 어떻게 새로운 인력으로 재탄생시킬 것인가? - Superteams : AI와 인간을 같은 팀으로 융합하는 전략
- Knowledge management : 외부와의 연결 확대
- Reskilling : 새로운 관점에서 직원 역량 추가
- Conundrum : 기본소득, 보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
- Workforce Strategy : 새로운 인건비 산출 방법
- From “could we” to “how should we” : 업무에 대한 윤리적 고민
이러한 아젠다에 대해 많은 리더들과 HR 리더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조직의 준비 상황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리포트에서는 위기에 대응하는 3가지 프레임을 제시한다. 바로 Response – Recover – Thrive가 그것이다.
첫 번째 Response 프레임은 위기에 대한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COVID-19 위기 이후 조직은 하루하루 비상 대책 회의 수준의 나날을 보냈다.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조직의 비전과 미션을 영속해 나갈 것인가? 호텔의 경우 자가 격리 인력에 대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었고, 자동차 제조업체는 산소호흡기 생산 라인을 만드는 등 변화에 대응했다. 이러한 Response 프레임에서 HR은 다음과 같은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
- Governing Workforce Strategy : 위기 상황에서 인력 산정, 인력 예측, 인력 수급이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딜로이트의 대시보드는 코로나 확산, 여행 제한, 입국 요건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직원의 안전을 관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 Designing Work for Well-being : 단순히 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 뿐만 아니라, 실제 일의 설계 안에서 직원들의 육체적, 정신적, 재무적 안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 Beyond Reskilling : 아마존의 Tech University는 직원들을 더욱 가치 있는 직무로 전환하기 위해 6년간 8,200억원을 투자했다. 새로운 기술과 스킬을 직원들이 최신 상태로 유지하도록 지원하기 위함이다.
다음은 Recover 프레임에 해당되는 아젠다이다.
- Superteams : 인간과 AI, 로보틱스와 조합된 형태로 구성된 슈퍼팀으로 더 나은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 NASA의 우주탐사 프로그램, 아스트로제네카 백신 개발 과정에서 활용된 AI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제 AI는 팀 레벨까지 인간과 협업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 Belongings : 원격 근무로 인해 떨어져서 일하는 구성원들이 어떻게 소속감을 느끼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조직이 위기 상황에서도 직원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데에서 나오는 안정감(Comfort), 사회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개방적인 조직에서 나오는 연결성(Connection), 나아가 조직 구성원들이 내가 하는 일들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지 고민하는 데에서 나오는 기여(Contribution)이다. 이런 3가지 요소가 기업에 대한 소속감의 원천이 된다.
- Ethics and the future of work – from “could we” to “how should we” : 기술의 발전으로 더 많은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채용 시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기업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탈락한 지원자는 어떻게 느낄 것인가? 또한 직원들의 위치를 추적하거나, CCTV를 활용해 근무지를 확인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AI나 자동화의 도입이 인력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윤리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 Post-Generational Workforce : 밀레니얼을 넘어서 경험 많은 중장년층의 인력이 다시 현장에 복귀하였을 때, 이들을 어떻게 배치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떤 직무에 직원을 배치할 때 나이나 경력 같은 인구통계학적인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일에 최적인 사람인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Recover 프레임에 이어, Thrive 프레임은 미래의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The Compensation Conundrum : 이제 개인의 기여도를 보다 형평성 있게 평가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기업들은 각각의 가치 사슬에서 하나하나의 모든 직무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보상 원칙이나 기준을 좀 더 공개적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성과가 적더라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에 대한 보상이나, 타인이 일을 잘하도록 돕는 직원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 Knowledge Management : 사내 정보 공유를 넘어서, 조직이 만들어낸 생태계 안에서 상호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네트워킹은 어떻게 가능한가? 정보 공유에 대한 인센티브를 조직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코로나 이후 HR이 고민해야 할 트렌드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조직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래를 리드할 수 있는 HR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송한상 리더님의 강연은 전체적으로 2021년 발행된 딜로이트의 인적 자본 트렌드 보고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위기에 대한 교육 컨텐츠를 만들면서 이 보고서를 숙독했던 적이 있다. 전세계적인 HR 트렌드를 다루다 보니, 국내 개별 조직의 현실과는 맞지 않거나 아직은 우리에게 앞선 고민이라 생각되는 내용도 있었지만, 한발 앞선 HR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특히 기술이 발전하는 상황에서 소속감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나, 기존 직원 리스킬링을 강조하는 내용은 교육담당자로서 더 눈여겨볼 부분이었다. 이 보고서는 딜로이트 코리아 웹사이트에서도 제공되고 있으니 더 구체적인 내용은 링크에서 확인해봐도 좋을 것 같다.
#2. 스타트업 인사담당자가 바라보는 Digital Transformation
이 강연에서는 퍼플랩스 인사실 김성수 CHRO님이 스타트업 관점에서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타트업 조직은 대기업에 비해서는 소규모이지만 직군 구성은 매우 다양하다. 이런 조직 상황에서 어떻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할 것인지가 스타트업의 주된 고민이다.
강연은 먼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하면서 시작한다. 전세계 CRM 업계 1위를 고수하는 기업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핵심이 고객에 있다고 본다.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프로세스를 개선하고, 시장 요구사항에 대응하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1990년대 기업들은 디지털 인프라를 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고, 2000년대부터는 디지털 비즈니스 전략을 활용하는 기업이 등장했다면, 2010년부터는 본격적인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에서 출발하는 기업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역시, 사업 환경이 기업 위주에서 고객 위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현장은 아니지만 과거와 오늘날의 교실 풍경을 비교해 보면, 일방적 전달 위주의 교육에서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요약하자면 기업들은 단순한 전산화(Digitization)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업무 단순화(Digitalization) 단계를 거쳐 고객과 상호작용하며 가치를 창출하는 Digital Transformation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전환으로 과연 어떤 가치를 만들어 낼 것인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데이터’와 그 활용 방법이다. 세 번째는 기업의 프로세스와 일하는 방식이다. 다음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라는 변화를 관리할 수 있는 변화관리 역량이다. 마지막으로 DT를 통해 지향하는 바, 목적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비교하자면, 보통 스타트업은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태어난 회사가 대부분이다. 이미 IT 기반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여러 플랫폼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환경에서 HR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김성수 CHRO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 HR이 고민해야 하는 영역을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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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igital Workforce : 임직원의 디지털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이고, 어떤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 Digital Workplace : 코로나 19 이후 근무 형태가 급격히 변화했는데, 새로운 일터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 Digital HR : 일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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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민과 더불어, 조직에서 실질적으로 DT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조건들을 생각보면, 적어도 적절한 인적자원정보 시스템(HRIS)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조직 규모가 일정 규모 이상(최소 50인 이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 구성원의 숫자가 그보다 적은 경우 디지털로 소통하는 것보다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또한 사내에 IT 전담 부서가 있어야 한다.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명확한 내부 리소스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활용하는 조직의 분위기와 문화다.
한편 스타트업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크게 다음과 같이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목적 수립’이다 정확한 니즈 파악과 검토에 기반한 목적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영진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담당자가 아무리 좋은 기술을 도입하자고 하더라도 경영진과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는다면 리소스 투입 시에 반발이 발생할 수 있다. 경영진의 서포트는 필수적이다. 세 번째는 비용이다. 예산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명확한 ROI 측정이 가능해야 한다. 네 번째는 기술에 대한 전문성이다. 사내에 IT 부서가 별도로 존재하고, 기술 도입을 적용할 PM이나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속도이다. 변화의 시간을 너무 길게 가져가는 것은 스타트업에 적절하지 않다.
스타트업의 경우 사업 자체의 변화가 너무 많다 보니 변화 자체에 대한 번아웃이 대기업보다 빠르게 찾아온다. 이 부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만 스타트업의 작은 규모는 변화 자체에 있어서는 효과적이다. 규모 100명 미만인 기업이 5만 명 이상 기업과 비교했을 때 변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100명 미만에서 2.7배 정도 높다고 한다. 결국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목적이 가장 중요해지는데, 스타트업에서 고려할 만한 목적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기존 직원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또한 일이 쉬워져야 한다. 도입한 기술이 사용하기 어렵거나 오히려 부가적인 업무가 많아지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으로 시간과 비용의 절감이다. 마지막으로 측정 가능한 ROI가 도출되어야 한다.
스타트업 조직의 특성을 생각해 봤을 때 탑다운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빠른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 작은 영역(ex. 채용)부터 시작하되, 전담 TF를 구성해 변화의 기한을 빠르게 가져가는 것이다. 퍼플랩스의 경우 채용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으로 HR 영역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시작했다. 주로 채용 플랫폼에서 나온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집중했고 그 결과 비용이 감소, 채용 적중률이 증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실 이 강연을 듣기 전까지,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에서 굳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더 필요한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서도 여전히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영역들이 있고, 그것을 고민하는 방향 또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전통적 대기업 조직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업 자체는 디지털에 바탕을 두었더라도, 일하는 방식이나 기업의 전반적인 데이터 활용 수준 측면에서 여전히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개별 조직이 처한 상황에 맞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필요하다.
#3. 솔루션, 도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KDB생명 디지털혁신팀 한무영 팀장님은 오랫동안 사업을 영위해 온 금융 기업에서 새로운 프로세스를 도입하면서 부딪힌 장벽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태생부터 디지털화되지 않은 대부분의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고, 수많은 전통 기업들에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디지털 전환을 완수하지 못하는 기업은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보험업에서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 고객에 대한 디지털 접점이 점점 확대되면서 디지털 최적화를 통한 고객 중심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보험사들은 외부 고객을 위한 복합적인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쪽으로 변화했고, 내부 고객인 직원들에 대한 변화 역시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되었다. 먼저 일하는 방식 측면에서 변화는 교육, 조직문화 개선, 인프라 구축, RPA 도입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직원 역량 측면에서는 개방형 혁신체계를 구축하여 외부 역량을 흡수하고 내부 역량을 향상시키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KDB생명에서는 이런 변화에 맞추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하면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세스 자동화(RPA) 프로젝트와 데이터 분석/통계 모델링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먼저 RPA 프로젝트가 진행된 배경에는 사업 특성 상 사람이 하는 단순 반복 업무가 증가하며 수작업 오류도 함께 늘어나는 문제 상황이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고정비를 증가시키므로 조직에도 큰 부담이었고, RPA를 도입해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였다. 또한 단순 작업에서 해방된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에러율을 감소시키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효과를 거두고자 했다.
이런 RPA의 도입 목표에 부합하는 성공 사례는 ‘기업고객 사전 진단 보고서’ 자동화 프로젝트이다. 이 문서는 실제 영업 현장에서 보험 설계사가 기업 고객을 응대할 때, 보통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 활용되는 자료로, 해당 기업의 정보를 정리한 것이다. 기존에는 설계사가 보고서를 요청하면 담당 직원이 신속하게 작성해 전달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이 하루에 언제 얼마나 들어올 지 예측이 어려워, 담당 직원이 지속적으로 요청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편 보고서 작성에는 건당 평균 30분 정도가 소요되었고, 작업 자체는 어렵지 않다 보니 전담 직원을 배치하기보다는 기존 직원이 요청에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기업고객 사전 진단 보고서’를 자동화하는 프로세스 개선 이후,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자동화 서비스 활성화 이후 지속적으로 보고서 신청건수가 늘어났으나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고, 현장 설계사의 만족도도 높아졌다.
그렇지만 이런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RPA를 실제로 도입해 보니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발견됐다. 1차 RPA 프로젝트가 종료된 후 문제점을 정리해 보니, 우선적으로 신규 솔루션을 구현하기 위한 환경 세팅(방화벽, DRM 서버접근 등)이 어려웠던 문제가 있었다.
또한 RPA 도입으로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던 업무들이 막상 도입을 해 보니 만족도가 낮은 경우도 생겼다. 총무 업무를 지원하는 RPA의 경우, 만족도가 가장 높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그 이유는 금융사의 각 지점에서 사용하는 문서들이 조금씩 달랐는데, 이 문서의 양식을 통일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담당자에게 통일된 문서 양식을 보내주어도 빠르게 과거 업무 방식으로 회귀했다. 이것은 RPA 도입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여전히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2차 프로젝트에서는 1차 프로젝트의 시사점을 바탕으로 몇 가지를 개선했다. 먼저 외부 개발사 내부 담당자 개발로 전환(담당자가 직접 프로세스 개발)했다. 1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부 직원이 기술을 습득한다는 목표를 명확히 했기 때문에, 개발자가 아니었던 담당자들도 2차 프로젝트에서는 개발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현업 부서 개별 면담을 통해 RPA 개발 우선 순위를 조정했고, 그 결과 1차 프로젝트에서는 25개 과제로 3,000시간을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었지만 2차 때는 보다 적은 14개 과제만으로 9,000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현재는 3차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현업에서 솔루션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담당자를 늘리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만약 1차 프로젝트 결과에 실망해서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결과이다.
데이터 분석과 통계 모델링 프로젝트는 빅데이터 분석을 회사에 도입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는 보험사의 스코어링 모델은 규칙 기반 모델이다. 철저히 사전에 프로그래밍된 규칙에 따라 스코어링을 하다 보니 기존의 방법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분석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도입하게 된 머신러닝 분석은 비정형 데이터 또한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등, 규칙 기반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블랙박스 형태의 모델링이다 보니 결과 설명이 어려운 단점도 있었다. 머신러닝의 특성 상, 어떤 변수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히 확인해야 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분야에는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기존 스코어링 모델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면서, 주기적으로 머신러닝 분석 결과를 비교해서 상호 보완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머신러닝 분석 모형의 성능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 데이터의 질(quality)이다. 질 좋은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거버넌스 등 사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며, 전사적인 데이터 거버넌스 정의를 통해 최적의 프레임을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사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석 툴을 도입하고 수집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또한 빅데이터 분석에서 모든 변수를 고민 없이 설정해서는 안 된다. 고민 없이 변수를 설정할 경우 garbage in-garbage out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의미한 변수들을 선정하여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조직의 기존 구성원들은 이런 디지털 기술의 적용과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과거 인간의 경험이 데이터보다 중요했던 때에는 담당자의 말 한마디가 더 큰 힘을 발휘했다. 지금도 분명히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지만 조금씩 시대가 변하고 있다. 경험이 잘 먹히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이다. 조직 구성원들의 저항은 여기서 시작된다. “OO 업무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로 데이터나 기술을 활용하는 것보다는 개인의 경험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할 때 기존 업무 담당자를 이해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특히 솔루션을 이용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사람은 결국 기존의 업무 담당자인 것이다.
이 강연의 메시지는 “솔루션만이 답이 아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솔루션의 도입 초기, 제안 업체는 장밋빛 결과만을 제시하고, 경영진은 그 결과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한다. 그런데 실제 솔루션을 운영하는 담당자가, 제안 업체의 주장과 현실의 괴리를 인지할 때 문제가 시작된다. 경영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 업체가 제시했던 효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게 되고, 업무 담당자와 운영 담당자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앱이 되거나, 퇴보하는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은 솔루션 도입에 대한 목적, 효과, 추가 보완사항에 대한 이해 부족과 목표 공유 부재에서 기인한다. 경영진은 고정 비용이 획기적으로 감소할 것을 기대하고, 담당자는 업무 시간이 줄어들어 야근에서 해방될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담당자의 경우 솔루션이 도입될수록 내 업무가 아닌 다른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고, 다른 부서와 상호 협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의 복잡성도 증가한다. 솔루션을 도입함으로써 업무 수준이 점점 고도화되기 때문에, 담당자는 과거 자신의 업무와 현재의 고도화된 업무 사이에서 비효율을 낳게 된다. 그 결과 대부분의 담당자는 과거의 업무 프로세스로 돌아가고, 버림받은 솔루션은 빠르게 사장된다. 특히 최근 출시되는 머신러닝 기반 솔루션은 학습을 계속 수행해 줘야 하는데, 학습 기회가 적어질수록 정확도도 점점 떨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솔루션을 도입해서 업무 프로세스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을 측정하는 지표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직에서는 효율성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경향이 강한데, 업무 담당자는 솔루션의 결과물이 조직이 원하는 것과 달라서 본인의 성과에 반영되지 않는 것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또한 솔루션 도입으로 인해 업무 수행 인원이 줄어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도입 시점부터, 솔루션 담당자와 HR이 함께 ‘성과 평가 지표’를 사전에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업에 솔루션 사용자가 증가하는 것이 곧 인력 감축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협업을 통한 조직의 만족도’가 솔루션 도입의 성과를 측정하는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솔루션이 도입되어야 기업은 조직원을 줄이기보다는 조직이 공유할 파이를 키워나가고, 개인은 새로운 업무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전통 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에서 HR 담당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강연이었다. 특히 솔루션 도입 초기의 기대와 향후 업무 과정에서의 기대가 어그러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에 상당히 공감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 해당 업무를 오래 해온 담당자들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도 공통적인 고민일 것이다. 이때 구성원의 리스킬링이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HRD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패널 토론에서는 연사 분들이 생각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무엇이며, HR은 어떻게 DT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고 조직의 저항을 줄일 것인지를 논의했다. 특히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팀의 목표는 2년 내 부서를 해체하는 것”이라는 KDB 디지털혁신팀 한무영 팀장님의 이야기였다. 확실히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은 조직원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DT 팀에서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일과는 상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반대로 모든 직원들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자기 일의 일부로 생각하여, 굳이 추진 조직이 필요 없게 되는 것이 DT팀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HR은 이러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여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결국 해답은 각자의 조직 속에 있을 것이다. 이번 컨퍼런스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COVID-19 상황에서 최근의 HR 트렌드를 조망하고, 스타트업과 대기업이라는 각기 다른 조직 상황에서 DT를 이끄는 분들의 깊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HR 애널리틱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라는 화두가 어느새 진부하게 느껴지는 만큼,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HR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솔루션이라는 신화 같은 존재에 가려진, 환경세팅 단계에서의 한계, 임직원들의 심리적 장벽 그리고 솔루션 도입 후 운영/관리에 역설적으로 많은 리소스를 필요로 하는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솔루션만이 답이 아니다”라는 저 한문장이 크게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그 내용이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정리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