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세계 최대 정치 이슈 중 하나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다. 나는 미국 대선을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하게 관전하면서 과연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됐다. 바로 지난 4년간 미국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배의 선장 역할을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서 말이다. 나는 지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국제부에서 국제이슈를 기사로 작성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뤄본 바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단 미국이라는 나라를 하나의 기업으로 간주해보자. 2016년 11월 진행된 45대 대통령 선거는 바로 트럼프 대통령을 미국이란 나라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출하는 이사회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경영에 실패한 전형적인 리더의 면모를 보였다.
일방적인 충성심 요구
트럼프의 리더십은 관료에게 무한의 충성심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은 부하직원을 신뢰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심하는 면모를 보인다. 주식회사 미국의 헤드쿼터가 있는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한 사랑을 받는 장녀인 이방카 트럼프와 그의 남편 제러드 쿠슈너에 의해 장악됐다. 평생 정치‧외교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위 관료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였다. 특히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는 사실상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인의 장막’을 형성해 능력 있는 관료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단순히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보건 등 ㈜미국의 전(全)분야를 총괄하는 국가 CEO가 부하직원을 신뢰하지 않으면, 노동생산성은 발휘되기 힘들다. 오히려 관료들은 언제 자신이 떠밀려 날까 전전긍긍하며 트럼프가 CEO로 있는 백악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사와 비화 등 일종의 기업비밀을 모으기에 바빴다.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가 난 상황에서 회고록을 출간해 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심정이 반영된 것이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 측근들이 지금까지 출간한 대부분의 회고록은 미국 현지에서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관련 책들이 독자의 손에서 읽히면 읽힐수록 트럼프의 실패한 용인술은 만천하에 알려지며, CEO의 전반적인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쳤고, 주식회사 미국의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책임 경영의 실패
자고로 한 기업의 CEO라고 하면 기업 성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사회에서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며 CEO에 선출한 만큼 맡은 소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이란 ‘블랙스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복한 것은 “이것은 어느 날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였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강조를 등한시 하면서 되레 자신은 물론 영부인 멜라니아 아들 배런 등과 고위 관료들이 줄줄이 코로나19에 확진판정을 받으며 국가의 의료 시스템에 부담을 끼쳤다.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업의 재무적 역량에 악영향을 미친 셈이다. 2020년 12월 20일 현재 미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확진자는 1,760만명에 이르며, 사망자 숫자는 31만5,000명에 달한다. 미국이 전 세계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3%, 18.6%나 된다. 미국의 인구밀도가 한국과 비교해 15배 낮은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이 CEO로 있는 기업이 초유의 비상상황을 맞이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오랜 기간 높은 수익률을 올렸던 ㈜미국의 주식을 신뢰했던 사람들이 ‘매도 버튼’을 만지작 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
CEO 트럼프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과학자를 신뢰하지 않는 반지성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질병관리청이라고 할 수 있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로버트 레드필드 국장이 9월 16일 상원 청문회에 나와 “마스크가 공공보건을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라며 “마스크의 효과는 과학적으로 분명한 증거가 있다. 심지어 마스크가 코로나19를 막는 데 백신보다 더 확실하다고까지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레드필드 국장이 “부정확한 정보를 얘기했다”고 폄하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3일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살균제를 인체에 주입하는 방안을 검토하자”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밖에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소장을 해고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기기도 했다. 파우치 소장은 미국 최고의 감염병 전문가다.
전문가에 대한 불신은 한 분야에서만 오랜 기간 일해 온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편견이다. 더욱이 강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창업주들은 눈으로 나타나는 데이터보다는 자신의 직감을 믿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재무, 회계, 구매, 인사, 영업 등을 총괄해야 하는 CEO는 항상 열린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매일 같이 고객을 상대하는 것은 이들 실무진이기 때문이다. 이미 업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멀티플레이어 기업이 돼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만큼 여러 분야에 대해 오픈마인드를 갖는 것을 필수적이다. CEO 스스로 전문가의 의견을 제대로 청취하고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최적의 의사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적상승을 100% 담보할 수는 없다. 시장이 우리가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수용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은 원래 냉철하다.
㈜미국의 이사진들은 2020년 11월 3일 이사회를 열고 CEO 교체를 선언했다. 지난 4년간 CEO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이 ㈜미국의 영속성과 주주이익 극대화를 담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주가 상승에 베팅을 하려는 예비 주주들은 새롭게 선임된 CEO가 전임 CEO가 보였던 최악의 리더십을 반복하지 않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특히 예비 CEO이자 창업자인 우리들은 어느 순간 우리에게 쓴소리를 하는 전문가와 동료들을 불신하면서도, 경영실적이 좋지 않게 나오면 전문가와 부하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새김질해봐야 한다.
경영시스템 가운데 하나인 전사적 품질경영(TQM)은 기업 내 조직원 전체가 제품과 서비스의 사용자 만족을 위해 장기적인 품질목표 수립과 품질관리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직원과 부하직원들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핵심자원에 해당한다. 이들과 어떻게 조화로운 신뢰관계를 형성하느냐가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스템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인의 태도다. 개인의 태도가 나쁘면 시스템은 금세 무너지게 된다. 올 하반기 최대 유행어였던 “너 인성 문제있어?”라는 말을 가슴깊이 새기며 한해를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