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어디에서 탄생하는가 – 개인의 소소한 사연들

유럽이 2차 세계대전에 휩싸인 때였다. 전쟁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프랑스는 자국 내 난민을 억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서둘러 내린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문제는 프랑스 군대는 독일 반대 세력을 선별해낼 능력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를 지지하는 독일인과 반대하는 독일인을 구별하지 못하니 모두 몰아내거나 가두는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눈에 보이는 외국인들을 모두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수천 명, 아니 수만 명은 족히 됐다. 기껏해야 이삼일 치 정도의 식량과 담요를 소지한 사람들. 그들은 유대 난민, 반나치 망명자, 느닷없이 잡혀 온 관광객, 에스파냐 내전 참전 용사들이었다. 부주의하게 잡혀 온 히틀러의 정보원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는 신속하게 서류를 검토해 밤이 오기 전에 귀가 조처해 주기를 바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하릴없이 낮 시간이 흘러갔고 이내 어둠이 경기장을 감쌌다.” 하루 이틀이면 자신들의 신분이 증명되어 풀려날 거라 믿었던 그들 중에는 ‘발터 벤야민’도 있었다. 그들의 기대는 빗나갔다. 아무도 풀려나지 못한 채로 열흘이 지나갔다. 선별위원회가 알파벳 순으로 처리하고 있는 걸까. 난민까지 억류할 필요가 있을까. 이런 희망과 의문들이 사람들 사이를 배회했지만, 이미 사태를 파악한 벤야민은 곁에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선별위원회가 있다고 해도 그건 익살극일 뿐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 세상 최고의 선의가 발휘된다 해도 수천 명의 사안을 제대로 살펴보는 일은 불가능해요.”

 

이탈리아의 소설가가 쓴 『역사의 천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20세기 독일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죽음과 생의 마지막 여정을 그려낸 책이다. 프랑스 정부는 억울하고 답답한 개인들의 사정에 주목할 겨를이 없었다. 개인의 사정을 헤아릴 수 없으니 집단 차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벤야민은 이를 간파한 것이다. 비극이 시작되리라는 예상도 했으리라. 개인의 소소한 사정들이란, 당사자에겐 절체절명의 문제지만 집단에게는 하나의 사안에 불과한 법이다. 야만적 행위가 저 멀리 원시 사회에나 있다는 생각은 유아적이다. 사실 원시 부족이 야만적이고 현대 사회가 문명적이라는 이분법을 받아들이는 인류학자는 없다. 우리 일상 곳곳에 야만이 스며들어 있다. 집단의 관점으로 개인을 억압하는 행위도 문명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개인들의 소소한 사정에 귀를 닫는 사회가 야만인 것이다. 그러한 사정을 들어주는 일은 한 국가의 발전사에서도 가장 뒤늦게 성취되는 영역이라고, 황현산 선생은 말한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다. “이것은 야만이다”고, “이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냐”고, 개인을 대신하여 문학이 호소해 주는 것이다. 개인들의 목소리, 현장의 외침을 담아내어 문학이 손짓한다. “세상이여, 여기를 보라!” 문학은 그렇게 개인의 소소한 사정들에서 탄생한다.

 

개인 사정이란 게 상황에 처한 그네들에게는 버거운 일도 많다. 저마다의 사정은 개인에게 감정적 후유증을 남긴다. 화마와 같은 사고를 당하거나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으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절망에 허덕이는 것은 물론이다. 실연을 당하면 슬픔과 우울감에 잠긴다. 진실이 패배하는 현실을 체험하면서 삶의 부조리와 모순을 느끼기도 한다. 사연은 감정을 낳고 감정은 일상을 패대기친다. 개인들이 겪는 삶의 버거움을 문학이 보듬는다. 개인들의 사연을 시와 소설로 풀어냄으로 감정을 어루만진다. 문학은 철학처럼 관념적이지 않고 정치처럼 거창하지 않다. 일상적이고 소소하다. 문학에서 예술적인 형식을 덜어내고 나면 우리네 삶이 남으리라. 문학의 탄생지가 우리네 삶이기 때문이다. 문학을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일에 능숙한 이승수 교수(한양대)는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를 명쾌히 풀어냈다. “『홍길동전』에서는 가정불화와 청소년의 가출을, 『허생전』에서는 심각하게 전업을 고민하는 학자의 절망을 읽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과 간질병을, 『변신』에서는 카프카의 아버지 콤플렉스와 수모감을 생각했다. 불화와 절망, 질병과 콤플렉스 그리고 분노와 수모는 모두 나와 이웃의 삶 그 자체가 아닌가! 이러한 것들이야말로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이면서 문학이 돌아가야 할 자리다. 삶에서 문학이 태어나고 문학은 다시 삶을 낳는다. (…)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눈은 글자를 따라가도 마음은 그 글자가 태어난 삶의 지점에 가 있는 이유다.”

 

개인의 사정은 눈에 잘 보이거나 몇 마디 말로 규정되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말하기에 모호하고 설명하는 더 어려운 개인의 어떤 내면 상태일 수도 있는 것이다. 조경란의 단편 「동시에」를 보자.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소설을 써야 될까,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하느라고 힘들 때였는데, 자꾸만 꿈에 나무가 보였습니다. 꿈에 보이는 나무가 정말 존재하는 나무인지, 환상 속의 나무인지 구분할 수 없었고, 제가 백과사전 같은 것을 많이 봤는데도, 그 나무의 이름이나 학명 같은 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육 개월 정도 계속 꿈에 나무가 보였어요. 저는 그것을 어떤 신호라고 받아들였습니다. 내가 앞으로 이 나무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제가 지금 나무에 관해서 쓸 만큼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글들을 많이 썼어요. 그런데 자꾸만 꿈에 나무가 보였고, 나무들이 바다에서 자랐고, 그 나무들로부터 사람이 생겨났고, 나무들이 쪼개져서 사람이 되었고 (중략)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나무에 관해서 써야겠구나.” 물론 소설을 나무라는 이미지만으로 쓸 수 없음은 작가도 알았다. 서사가 필요했다. 조경란은 어느 만남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일화를 소설적 서사로 바꾸어 나무와 함께 단편으로 버무려냈다. 그 소설이 「동시에」다. 작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소설을 써놓고 몸은 많이 아팠지만, 저는 많이 행복했습니다.” 문학이 세상 속 독자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소개한 이야기다. 문학은 때때로 작가를 구원한다. 독자든 작가든, 문학은 개인들을 위한 위로요 응원이다. 개인들이 지닌 고뇌를 토로하는 고해성사요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생각의 전당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는 사회과학이 다룬다. ‘인간’의 삶에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문제들은 인문학이 고심한다. 사회의 일원이자 한 ‘개인’의 문제라면, 문학이 귀 기울인다. 문학만이 우리에게 위로를 안긴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와 동떨어져 지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와 같은 사회의 진보를 위한 가치에는 힘을 모아 함께 싸워야 한다. 어떤 나라, 어떤 시기는 정치적인 문제 해결이 우리 삶을 가장 크게 바꾸어놓을 수 있기에 그렇다. 문학은 다른 영역에서 우리를 돕는다. 개인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고 어루만짐으로 삶을 살아갈 마음의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이다. 세상의 변화가 사람들을 소외시키거나 권력이 사람들을 억압하면 이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영역이 문학과 예술이다. 한 개인이 삶에서 겪는 절망과 상실 그리고 불안과 허위를 잘 다루는 쪽도 문학이다. 작가들이 지닌 감각의 더듬이가 섬세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통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른 예술과 달리 인식의 변화를 일으키는 예술 장르다. 음악이나 회화와 달리 언어를 사용하기에 그렇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개인들의 소소한 사정을 농밀하게 알게 되고, 문학을 통해 세상이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 한 조각의 진실을 얻는다. 문학의 시선은 폭력적이지 않다.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바라보고, 발견한 것들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사려 깊은 언어들을 동원하여 지면으로 옮겨 놓을 뿐이다. 문학의 빛이 지구상 곳곳을 쓰다듬을 때 세상은 덜 야만적인 곳이 되리라. 문학이 세상의 목소리를 하나둘 주워 담아 예술로 빚어낼 때 세상은 좀 더 아름다운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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