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에서 길 찾기 – 자기 삶의 화두를 따라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열대 우림입니다. 우리나라 면적의 70배나 되는 엄청난 넓이의 아마존은 지구에서 만들어지는 산소의 약 1/3를 생산하죠.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엄청난 양의 산소를 생산해 내는 비결은 간단합니다. 크고 작은 다양한 식물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지요.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아마존 강의 존재 덕분입니다. 아마존 강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양의 물이 흐릅니다.

우리나라의 고전을 비롯한 세계문학은 최고의 정신이 모여 있는 하나의 숲입니다. 아마존 밀림이 그러하듯이 세계문학은 인류에게 지성과 공감을 선사합니다. 세계인의 지적 허파인 셈입니다. 제가 이리 말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문학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표현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절정에 다다른 인간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호메로스에서부터 줄리언 반스와 필립 로스까지, 거장이 지어낸 최고의 작품들이 모아 둔 곳이 세계문학 고전이고요. 브라질의 대지에 아마존 강이 흐르듯이 문학 작품의 기저에는 고도의 정신이 흐르는 것입니다. 몇 권의 문학 작품이 제게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지금 당장 옷을 팔아 한 권의 문학 고전을 사서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는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이전의 성급한 표현입니다. 아마존의 면적이 거대하듯이 세계문학의 범위와 분량도 방대하니까요. 자신에게 맞춤한 책은 존재하겠지만 어떤 책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세계문학이라는 광대한 정신의 아마존을 여행한다면 어디서부터 여행해야 할까요?

작은 독서모임을 진행하는 A 씨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합니다. 많은 고전의 제목을 알지만 정작 읽고 체험한 고전은 거의 없었습니다. 체험에서 나온 분별이 없기에 이런저런 명사들이 추천하는 고전 목록에 휘둘리거나 전문가를 자처하는 가짜 실력자들의 허위를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자신이 읽어야 할 목록이 과도하게 커져 버렸습니다. 젊고 이상적인 성향의 B 씨는 지성인이 되기를 꿈꿉니다. 그는 한 출판사에서 간행한 세계문학 전집을 1번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7번인가 8번까지 읽었다는 소식을 접했던 즈음, 절반 이상의 작품은 생각보다 흥미롭지 못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후 소식을 몰라 그가 끝까지 읽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의 세계문학 읽기가 매작품마다 즐거운 독서였는지는 의문입니다.

두 사람의 사례에서 보이는 공통점 하나는 외부로부터 출발한 목표를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에게는 내면으로부터 시작한 목소리가 없었습니다. 학습은 주체적인 의문이나 문제의식 또는 화두에서 시작됩니다. 관건은 주체성이 있느냐입니다. 스스로 고민하는 화두나 자신의 삶에서 발견된 고민 또는 나아가고 싶은 방향에 대한 성찰이 독서의 질을 드높입니다. 인문학 공부의 목적이 박식이 아니라, 자기 이해를 높이고 인생에 대한 통찰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이해하도록 돕는가? 지금의 내게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 내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품고 이에 걸맞은 사유를 돕는 작품을 찾아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주체적 독서란 결국 스스로 생각한 화두와 연결되는 책을 선정하고 자신의 모습과 연결하면서 읽는 행위를 뜻합니다.

세계문학을 순서대로 읽는 모습은, 힘찬 열정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이란 지극히 구체적이고 주관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장르이기에 그렇습니다. 게다가 고전 목록만 해도 엄청난 분량이라 우리 인생의 유한성을 생각하면 시간이 아쉬워지는 선택이기도 하겠죠. 제가 권하는 방법을 순서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자신의 화두, 고민, 물음, 비전을 생각할 것. 이때 인생의 화두와 비전이 아니라 올해 또는 이번 분기의 화두와 비전으로 한정하는 게 좋습니다. 둘째, 세계문학전집 카달로그나 서평집을 읽으면서 자신에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작품을 찾을 것. 처음에는 10~20여 권 정도의 목록을 마련해 두고, 가장 관심이 가는 작품부터 읽으면 되겠지요. 셋째, 작품 속으로 뛰어들어 정성을 다해 온몸으로 읽을 것. 우리나라 문학이 아니라 세계문학이라면 작품의 인물과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당대의 역사를 알아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세계문학전집 카달로그나 서평집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여야겠군요. 제 서재에는 세계문학만을 꽂은 책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문학동네, 민음사, 열린책들 이렇게 세 출판사에서 발행한 카달로그가 있죠. 카달로그라는 말 그대로 작품을 간략히 소개하는 비매품 책자입니다. 한 페이지마다 한 작품을 다루면서도 책 사진, 소개, 저명한 인사들의 평가까지 실렸기에 소량의 핵심 정보만 담은 셈입니다. 민음사 카달로그의 한 페이지를 소개해 보죠.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작품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대표작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존경하는 일본 작가

『인간 실격』은 『백치』의 오다 사쿠노스케, 『타락론』의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무뢰파(無賴派)를 대표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후기 걸작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오직 순수함만을 갈망하던 여린 심성의 한 젊은이가 인간들의 위선과 잔인함에 의해 파멸되어 가는 과정을 그렸다. 『인간 실격』은 어느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인간 영혼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스스럼없이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상처 받은 영혼을 달래준다.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데 있어 다자이보다 뛰어난 작가는 드물다.” – 뉴욕타임스

카탈로그에 적힌 텍스트는 모두 옮겼습니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은 얼굴 사진과 커다란 책 표지 이미지가 지면의 반을 차지하고요. 이 정도 소량의 정보를 접하고서도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할 겁니다. 읽고 싶어질 수도 있고 별다른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죠. 누군가는 강렬한 끌림이 있기도 할 테고요. 제가 그런 경우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40년이 넘어가던 즈음, 제 마음과 정신이 극도의 피폐함을 겪었거든요. 그때 제게 필요한 것은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자기 인생의 상실과 무상함을 견디어 냈던 진솔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비롯한 몇 편의 소설이 질식해 가던 제 영혼에 산소를 공급해 주었죠.

세계문학 서평집 한 권도 소개합니다. 이번에는 비매품이 아닙니다. 『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읽은 한국 작가들의 리뷰를 엮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소설가 김연수가 『황금 물고기』를 읽고 쓴 리뷰에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제 마음을 그대로 옮긴 것 같은 다음의 문장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다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알아내려고 애쓸 겁니다. 책뿐만 아니에요.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춤도 추고, 외국에도 갈 거예요. 가능한 한 모든 걸 맛볼 겁니다. 이 삶에 눈멀고 귀먹고 입 다문 사람이라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의 신세나 마찬가지죠. 자유로운 물고기라면 자신의 입과 코와 눈과 귀로 자기 앞의 삶을 맛보고 냄새 맡고 보고 들을 거예요. 그게 바로 황금 물고기죠.”

“그건 자유로 물고기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그 황금 물고기가 하는 일은 뭔가요?”

“자신에게 돌아가는 일이예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매 순간 성장해요. 바뀌고 또 바뀌죠.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이 되죠.”

이쯤되면 프랑스 문단의 거장 르 클레지오의 후기 대표작 『황금 물고기』를 피할 방도가 없습니다. 제가 ‘예닐곱 살에 인신매매단에 납치된 후 세상을 표류하던 한 한 소녀의 근원 찾기’ 이야기에 빠져든 것은 예상되던 일이었죠. 『인간 실격』과 『황금 물고기』와의 만남은 카달로그와 세계문학 서평집에서 출발되었습니다. 보다 근원적으로는 제 삶에 대한 주체적인 고민이 운과 때를 만나 두 편의 문학 작품과 조우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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