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가겠습니다.”

 

제안을 받은 지 채 만 하루도 안 된 시점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날 이직 결정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나는 2년 전 어느 날 순식간에 스타트업에 몸을 담게 되었다.

 

 

[스타트업이라고 다 같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더 길게 고민을 했다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까라는 생각이 이따금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결론은  같았을 테다. 그쯤 이미 창업에 대한 마음을 품고,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결국은 시기의 문제였다. 오히려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만으로 창업을 바로 했을지도 모를 2년 전에 나를 떠올리며 이따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사실 주변 지인들 또한 오랜 만에 안부를 전하며 스타트업에 있다고 하면 꽤나 쿨 한 반응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스타트업의 범주와 본인이 현재 지금 일하고 있는 스타트업의 실제 범주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리라. 그들이 떠올리는 스타트업은 ‘배달의 민족’, ‘토스’, ‘당근마켓’, ‘마켓컬리’ 같은 이름을 가진 회사들이겠지만, 나는 언젠가 그 회사들처럼 되고자 하는 초기 스타트업을 다니고 있을 뿐이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카테고리적인 특성은 매우 독특하다. 무언가 가슴을 뛰게 만들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희망찬 느낌과 無시스템, NO체계, 빡셈(aka. 라꾸라꾸침대) 등의 부정적 감정이 혼재된 단어이다. 사실 스타트업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라는 것이 애매하고, 아직 학자마다 정의도 제각각인 상황에서 한마디로 스타트업이 어떻다라고 본인의 얄팍한 경험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너무나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 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 흔히 J곡선을 통해 설명을 한다면 조금이나마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하다.

 

스타트업(startup)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로,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한다고 위키백과 첫 줄에 써있다. 그렇지만 이 정의는 아무리 여러 번 읽어보아도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잘 모를 때는 거인의 어깨에 슬쩍 올라타서 바라보면 되지 않을까?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겠다는 말이다.) 에릭 리스(Eric Ries)는 스타트업계의 바이블과 같은 <린 스타트업>의 저자이다. 그는 스타트업을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서비스를 만들고자 하는 조직’으로 정의했는데, 이 정의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심오함이 숨어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스타트업의 스펙트럼은 사실 매우 넓다. 아래는 <스타트업의 J곡선>이라는 스타트업의 성장곡선인데, 극초기의 스타트업과 IPO 직전의 스타트업은 이름만 같을 뿐 상당히 다른 개념으로 접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초기 스타트업은 2~3명 정도의 창업자가 모여 아이디어를 모으고 개발을 하는 단계이니 매출은 당연히 없고 법인으로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IPO 단계의 회사들은 그야말로 유니콘으로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회사들이 많으며, 핫 한 회사들이다. (시리즈 A, B, C 등의 개념은 기회가 되면 이어지는 기고에서 이야기 해보겠다.) 두 개의 회사는 모두 스타트업으로 지칭되지만 그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에릭 리스의 정의를 빌리자면, 초기 스타트업은 극심한 불확실성이 더욱 극심하게 높은 상태이며, 뒤로 갈 수록 불확실성이 다소 감소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한국무역협회 <한미중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 비교>

 

 

[원티드의 수많은 스타트업 포지션 공고를 보고 고민하는 인사담당자에게]

 

다니고 있는 회사를 너무나 사랑하고 행복하게 다니는 분도 있겠지만, 수많은 직장인은 늘 이직을 꿈꾸며(또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샷 추가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아침을 열고, 점심시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퇴근 시간 직전에 혹시나 일이 생기진 않을까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따금 심한 좌절을 느낄 때(=현타가 올 때) 스타트업의 톡톡 튀는 공고를 보며 이 곳은 다를 거란 기대를 갖게 되고, 진정 내가 앞으로 꿈을 펼칠 곳 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상 속에서는 이미 트렌디한 오피스에서 후드티를 입고 스톡옵션 실행으로 뉴스에서나 보던 큰 부를 이룬 자신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지도 모른다.

 

흔히 사측이라고 구성원의 원망을 듣는 인사담당자들 역시 마찬가지일테다. 우리 회사 채용공고를 올리고 있지만 원티드의 수많은 스타트업의 HR포지션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인사업무의 대한 회의감/울분/스트레스와 흔히 시스템이 셋팅되어 운영 위주의 업무를 담당하며 매너리즘에 빠져들 때 쯤 스타트업은 좀 다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27.3%

 

우리나라 스타트업 가운데 5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의 비율이다. (2020년 3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자료 인용). 즉, 산술적으로 5년 이내 4곳 중 3곳은 망한다는 뜻이다. 그 어느때보다 창업을 하기 좋은 여건이고, (일례로 최근에는 연대보증제도만 해도 과거와는 많이 다르다. 흔히 회사 창업자가 회사가 망한다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는 일은 이제는 많이 줄었다.) 훌륭한 스타트업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특성 상 기본적으로 고위험을 내포한다는 사실은 흔히 잊어버리기 쉽다. 더욱이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국내 스타트업 시장의 건전성이나 여건 상 가야할 길은 아직 멀었다고 매일 느끼고 있다.

 

생존에 대한 문제 외에도 기존 직장에서 당연시했던 제도나 기준들이 없거나(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업무 R&R이 모호하거나(내가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 조직 분위기, 파벌 싸움 등 스타트업은 다를 것이라 생각했던 문제들이 붉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결국 지원 당시에 좋은 점을 더 좋게 보고 나쁜 점은 보지도 않고 결정해버리는 문제로 스타트업 이직을 후회하고 적응에 실패하게 되는 이들을 주변에서 적잖게 보게 된다.

출처=블라인드 글 캡쳐

 

얼마 전 근황을 물으며 본인도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다던 전 직장 동료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위 캡쳐 글을 보낸 적이 있다. 스타트업이라는 드라마가 푹 빠져 있는 친구였는데, 그래서 한 번 더 말릴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는 이유야 개인별로 다양하겠지만 크게 범주를 정하면 5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1. 조직문화
  2. 경제적 보상
  3. 회사의 성장 비전
  4. 개인 역량 향상
  5. 본인 사업을 위한 경험

 

만약 현재 스타트업으로 이직이나 창업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가장 먼저 본인이 어떠한 것을 얻고자 하는 지 명확하게 정리를 해보길 권한다. 그 점이 꼭 스타트업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판단이 된다면, 다음은 어느 스타트업으로 갈지를 결정할 단계이다. (그래서 다음 편은 스타트업 결정 시 고려사항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스타트업은 앞서 이야기한 J곡선에 따라 5가지 요소만 해도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가령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의 이유가 본인 사업을 위한 사전 경험일 경우 극초기의 스타트업으로 가는 것이 훨씬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으로 망할 위험 또한 매우 높기 때문에 그 만큼의 리스크를 안고 가야만 된다. 아울러 초기 스타트업은 보통 지인을 통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접근 방법도 다르다. 만약 Co-founder로 합류하게 된다면 이는 이직이 아니라 창업의 개념이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많다. (가령 3~6개월 정도 고정수입이 없더라도 나는 살 수 있는가 또는 나의 최저 생계비는 얼마인가?)

 

참고로 일반적으로 시리즈 B, C 정도의 대규모 투자를 받고 인력이 급증하는 시점에 스타트업에서는 HR 전담인력의 필요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전까지는 보통 대표이사가 직접 인사업무를 겸했지만 인력이 늘고 그에 따른 여러 인사 이슈가 발생하는 시기이다. 즉, 인사담당자들이 HR 포지션 공고를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스타트업들은 보통 머리 아픈 인사 이슈가 생기는 시점인 것이다. 이 단계의 회사들에 합류하게 되면 해결해야 할 일은 매우 많은데 체계는 아직 미흡한 경우가 많다. 손수 체계를 만들고 회사가 성장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생각과는 다른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원래 있던 규모의 회사로 재취업을 결심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이유이다.

 

본인은 결코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된다면 적극 추천하는 편이다. 다만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인사담당자가 스타트업도 회사의 한 종류일 뿐임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바른 선택을 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타트업을 통해 어떠한 점을 얻을 수 있고, 또 어떠한 점을 잃을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본 후에 선택한다면 스타트업은 분명 매우 매력적인 곳이다.

 

스타트업은 실패할 수 있어도 스타트업을 한 구성원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힘겨운 순간마다 본인의 마음을 다잡아 준 배틀그라운드 장병규 의장의 깊은 울림이 있는 문장을 끝으로 다시 한번 선택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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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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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현
멤버
안동현
9 개월 전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이지효
외부필진
이지효
9 개월 전

스타트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많이 담겨있어서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

goodhsp
멤버
goodhsp
10 개월 전

친절한 선배에게 고민상담을 받은 느낌이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음글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

lovelana727
멤버
lovelana727
10 개월 전

진심이 느껴지는 선배의 조언처럼 느껴지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DH LEE
멤버
DH LEE
10 개월 전

블라인드에서 저런 내용 글 자주 봤었는데 공감이 가네요. 좋은 글 감사드려요.

jiny101
외부필진
jiny101
10 개월 전

스타트업을 바라보았던 제 마음을 들킨 것 같아요~^^. 그런데, 희망도 얻어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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