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부분의 조직에서 혁신을 위해 실패를 용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행동이 말만큼은 아닌 듯하다. 조직과 리더들이 겪고 있는 이 Knowing-Doing Gap,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의 줄리안 버킨쇼 교수와 미국 와튼스쿨의 마틴 하스 교수는, 10년 이상 5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팀과 조직의 역학 구조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Return on Failure’, 즉 ‘실패수익률’이란 개념을 제안하였다. 실패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과 비용을 통해 전체 가치를 총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실패로 인한 비용은 줄이고 혜택은 늘려갈 수 있으며 결국 실패를 자산으로 축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실패수익률의 분모는 어떤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해 투자한 자원이고, 분자는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회사와 조직, 그리고 고객과 시장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각종 지식과 정보를 말한다. 당연히 실패수익률을 높이려면, 분모를 작게 하든지 분자를 크게 하든지 하면 된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 실패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소극적인 방법을 써 온 게 사실이다. 분모를 최소화하는 방법에 집중해 온 것이다. 불확실성이 없어질 때까지 소규모로 신중하게, 매우 보수적으로 투자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의 조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별로 한 게 없으니 당연히 실패수익률은 높게 보여진다. 하지만 과연 이게 실패를 용납하고 포용하는 토양을 만드는데 적절한 방법일까? 버킨쇼 교수와 하스 교수는, 실패수익률을 높이는 데 있어서 분자를 극대화해 수익률을 올리는 게, 기업과 조직 입장에서 훨씬 더 실질적이고 장기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소극적으로 분모 최소화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자 극대화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제안이다.
실패수익률의 분자를 크게 만들려면, 우선 실패한 프로젝트를 면밀히 검토해 가능한 한 많은 통찰을 얻어내야 한다. 이때 핵심은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교훈을 마치 대차대조표처럼 ‘자산’과 ‘부채’ 항목으로 나눠 분석하는 것이다. ‘자산’과 관련된 내용은 고객과 시장, 미래 트렌드, 조직의 전략 및 프로세스 등과 관련돼 있다.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고객의 니즈와 시장에 대해 무엇을 배웠는지, 우리가 협업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었는지, 또 일하는 방식과 소통의 방식, 그리고 리더십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등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산’ 계정 쪽에 쌓아 둘 실패 프로젝트의 교훈을 정리해 볼 수 있다. 반대로 ‘부채’ 계정에 쌓아 둘 교훈에는 기업의 평판 같은 외부적 비용은 물론, 지나친 관리 노력에 따른 내부적 비용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실패로 인해 고객에게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재료비, 노무비, 생산비 등 직접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지, 또한 프로젝트 실패로 인해 팀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거나 조직 내 불화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등을 점검해 보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 들어간 유무형의 비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예를 하나 살펴보자.
<한 가방제조기업 대표는 역량이 뛰어난 젊은 디자이너에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재의 가방을 만들어보라고 했다. 하지만 프로토타입 제작 결과 고객들은 기존의 가죽 소재 가방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결과를 보고, 해당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디자이너는,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사표를 냈다>
이 예에서 회사가 얻은 혜택과 비용이 각각 무엇인지 살펴보자. 먼저 비용은 젊고 유능한 디자이너의 퇴사다. 보통 여기서 끝난다. 그러다 보니 실패는 곧 비용만 발생시키고 마는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여기서 얻게 된 혜택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혜택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퇴사한 이유를 면밀히 살피는 것에서 시작된다. 만약 퇴사의 궁극적 이유가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호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명확한 의사소통 방식과 실험적 문화 장려의 절실함’이라는 교훈을 자산으로 정리했다면 이는 분명 혜택이다. 프로젝트 시작 시 대표의 주 목적은, 새로운 소재의 가방이 상업적으로 성공할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지만, 이 부분을 디자이너에게 명확하게 전달하지 못했고, 결국 그 디자이너는 고객들이 새로운 소재로 만든 가방을 외면하자, 자신의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보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퇴사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실패한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한 비용과 그를 통해 얻게 된 혜택은 무엇인지, 즉 실패 프로젝트의 부채와 자산이 각각 무엇인지를 면밀히 분석하면, 실패 수익률이 높아져 미래에 똑같은 실수를 범하기는커녕 더욱 개선된 모습과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교훈이 그룹이나 부서 간에 잘 공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실패에 대한 접근방식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른바 불확실성 시대다. 시도해 보지 않으면 맞는지 틀리는지 알 길이 없다. 가보지 않은 여정에서 실패를 피할 도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고 있는가’에 있다. 배움의 축적이 있는 실패는 혁신의 어머니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매몰비용에 불과하다. 실패용인 문화와 함께 곧잘 언급되고 있는 ‘심리적 안전감’에 대한 오해도 없어야 하겠다. 심리적 안전감은 구성원의 느슨해짐을 용인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 실패를 미래의 실질적 자양분으로 만들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