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인가? – E. H. 카의 역사관에 대한 단상

저는 90년대 중후반에 대학을 다녔는데, 당시 캠퍼스에서 떠돌았던 추천 교양서 목록이 있습니다. 어떤 책들인지 모두 잊었는데 웬일인지 두 권의 책은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윌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와 에드워드 핼릿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입니다. 저는 『철학 이야기』는 아직 읽지 않았고 『역사란 무엇인가』는 서른이 넘어서야 읽었습니다. 이 유명한 카의 역사철학서는 20세기 후반 내내 인기를 끌었던 책이었죠. ‘카의 의의와 한계’라는 주제로 정리한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학의 큰 줄기를 잡게 된다는 말을 어느 역사학자에게서 들었던 기억도 나네요. 카의 역사론은 큰 감동을 안기지만, 그의 관점에 대한 비판도 마음을 흔들더군요. 카의 유명한 명제와 그에 대한 비판을 소개합니다. 우선 ‘과거’와 ‘역사’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와 역사는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부의 과거만이 역사가 됩니다. 과거는 역사학의 연구 대상이지요. 이상적인 역사 연구를 상상한다면, 역사가에게는 타임머신이 필요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하면서 당시의 문화, 인물, 거리, 건물 지금은 사라진 텍스트 등을 대상으로 연구하면 좋을 테니까요. 현실 속의 역사가는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향하는 게 아니라 발품을 팔아 도서관이나 기록물 보관소로 향합니다. 과거가 아닌 사료와 역사책을 파고들 수 있을 뿐이니까요. 카에 따르면 ‘과거의 사실’과 ‘역사적 사실’이 다릅니다. 과거는 지난날에 존재했던 모든 것의 집합체이고, ‘과거의 사실’은 어떤 하나의 과거사를 말합니다.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s)’은 수많은 과거사 중에서 역사학자가 현재의 관점과 문제의식에서 의미 있다고 판단한 과거를 기술하고 해석한 역사라는 학문의 결과물이죠. 예컨대 ‘과거의 사실’이 모두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죠. 이제 카의 유명한 명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아마도 가장 많이 회자되는 카의 말이 아닌가 싶네요. 『역사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말입니다. 글의 맥락은 이렇습니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다. 자신의 사실을 갖지 못한 역사가는 뿌리가 없는 쓸모없는 존재다. 자신의 역사가를 갖지 못한 사실은 죽은 것이며 무의미한 것이다.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resent and the past).” 『역사란 무엇인가』(김택현 옮김, 까치, p.50)

‘과거의 사실’은 역사가를 만남으로 ‘역사적 사실’이 됩니다. 역사학자의 기본기(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엔, 과거라는 보고를 파헤쳐 자신만의 ‘역사적 사실’이라는 보물을 취득함으로써 역사가가 되죠.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은 공생하는 셈입니다. 이때의 취득은 학문적 어휘는 아니고 발견, 기술, 해석의 과정을 뜻하는 단어로 썼을 뿐입니다. 카의 유명한 문장,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에서 ‘상호작용’은 이해되셨을 테죠. 문제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표현입니다.

카는 현재와 역사가 상호보완의 관계, 균형을 이뤄야 하는 관계로 보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와 과거가 동등한 지위에서 원활하게 소통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역사가’가 학문적 범위의 재량 안에서 ‘과거의 사실’을 얼마든지 해석하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김기봉은 이렇게 지적합니다. “대화의 주체는 언제나 현재의 역사가일 뿐이고 과거의 사실을 대변해야 할 과거인들에게는 발언권이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인들의 생각이 담긴 사료는 스스로 말하지 못하고 역사가의 일방적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해석되어 인용될 뿐이다.” 카의 명제,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는 정의는 수사적 표현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동등한 대화라는 주장과 달리, 카는 역사해석에서 역사가가 지닌 힘의 우위를 인정하는 발언도 합니다. “역사적 사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가가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서만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카가 중요하게 여긴 의미는 교훈 제공의 여부와 역사가의 연구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현재와 과거가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일방적으로 현재의 역사가에게 좌우되는지를 보여주죠. 역사학사 김현식이 “역사가가 사실의 해석을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확신이야말로 카의 실체”라고 비판한 이유입니다.

카는 “사실이란 생선 장수의 좌판 위에 놓인 생선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접근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는 고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김현식 교수는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는 일로 과거를 설명한다. 친구는 자기 앞에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은 이미 흘러가 버렸습니다. 돌이키려고 애를 써도 돌이킬 수 없는 것, 한때 존재했지만 더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과거니까요. 과거가 절대로 우리 눈앞에서 재현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다시 말해 손에 잡힐 것 같았던 과거가 싱살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여전히 역사학은 유효합니다. 역사학의 대상이 애초부터 ‘과거’가 아니니까요. 역사학자 김현식에 따르면 역사란 “현재에 존재하는 역사가가 현재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토대 삼아 죽은 과거를 되살려내는 작업”입니다. 결국 역사란 현재와 과거 간의 상호작용이라기보다는 현재와 현재 사이의 상호작용인 셈이죠. 그가 제시한 ‘명태’ 비유는 카의 역사관을 너머의 역사 이해를 돕습니다.

명 태
변훈 곡 / 양명문 시 / 베이스 오현명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 다니다가
어떤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자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쇠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김현식 교수의 명태 해설을 들어보시죠. 역사 서술로 고민하던 역사가가 공부 피로를 달래기 위해 또는 술의 기운을 빌어 영감을 얻기 위해 소주를 준비합니다. 북어나 명태를 안주로 삼고서 말이죠. 한 잔의 소주를 들이키고 짝짝 찢은 명태를 들었습니다. “바로 이때입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는 동해의 푸른 바다가 출렁거립니다. 바다 밑에는 떼지어 찬물로 호흡하는 새끼 명태가 가득합니다. 그들은 춤추며 밀려다니면서 자라난 후 어부에 그물에 걸려 원산을 유람하고는 마침내 강원도의 어느 덕장에서 말려집니다. (…) 역사가가 지금 이 순간 대면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과거의 흔적입니다. 한때는 헤엄쳤을 테지만 지금은 이집트의 미라처럼 된 북어를 마주하는 것입니다. 이 미라를 통해 명태의 싱그러운 과거였을 동해 바다, 짝들과의 유희, 어부와 원산항 등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역사, 다시 말해 현재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을 토대로 삼아 과거를 되살려내는 작업은 비유컨대 노가리(새끼 명태)나 북어를 찢으면서 명태의 생생한 과거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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