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잘 입는 사람’이란? (7) 옷장 편집권을 갖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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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다 사다 모으다 품다

 

보다. 사다. 모으다. 품다.

어느 날 서점에 들렀다 우연히 발견한 책 ⟪컬렉터⟫(박은주, 2105)의 겉표지 문구에 매료되어 버렸다.  옷장을 채워가는 지금의 내 생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책에는 컨템포러리 아트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컬렉터의 이야기와 컬렉터의 작품 소장을 여러 방면에서 돕는 컨설턴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가까이서 미술품 컬렉터나 컨설턴트를 접할 기회가 없던 내게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컬렉터들은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발전시키기 위해 전시회에 참석하는 건 기본이고 휴가를 내서라도 아트 페어에 참석하기도 한다. 또 클럽에 가입하여 배우고 토론하고 소통하는데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 구입한 작품에는 컬렉터 개인의 추억,  잠재된 욕망, 가치관, 정체성 등이 투영되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전시회를 위해 대여된 난해한 작품을 볼 때마다 익명의 소장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고 한다.

저자는 컬렉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터뷰 승낙을 받기까지 겪었던 고충을 고백하기도 했다. 컬렉터 개인에게 각각의 작품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기쁨을 향유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욕망, 개인의 역사, 세상을 보는 관점 등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 바로 개인의 컬렉션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트 컨설턴트가 컬렉팅을 시작한 이들에게 제시하는 조언에는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남의 이야기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온전히 본인의 안목으로 작품 구매를 결정해야 한다는 것. 작품과 작가에 대한 공부, 미술사에 대한 공부가 필수적이라고는 하지만, 진정한 컬렉터는 작가의 명성을 사기보단 내면의 울림을 주는 작가의 이념을 산다고 한다. 또한 컬렉터는 작품을 보고 작품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도 명확히 인지하지 모사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컨설턴트는 개인 컬렉터를 대할 때 먼저 그가 누구인지부터 파악한다고 말한다. 컬렉터는 작품을 통해 컬렉터 자신의 정체성을 재차 확인할수록 컬렉션을 사랑하고 오래오래 품게 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컨설턴트가 컬렉터의 욕망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와의 인터뷰에 컬렉터들이 응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왜 그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놔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취한 접근법이 인상적이다. 저자는 컬렉터들에게 컬렉팅의 열정과 기쁨을 세상과 나누자고 제안했다. 진정한 컬렉터에겐 작품이 단지 투자의 수단이나 뽐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확인하는 거울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며, 작품 그 자체가 목적이기도 하다.

 

2. 편집 기준은 정체성

 

누군가에게 쇼핑은 소비 자체로 잠시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내게 쇼핑은 컬렉팅이다. 나를 컨셉으로 하는 큰 그림을 옷으로 완성해 가는 과정. 그게 내겐 쇼핑이다.

몇 해 전만 해도 힙한 장소의 힙한 편집매장에서 쇼핑하는 사람 정도는 돼야 멋쟁이라 불렸다. 편집매장이란 곳은 힙한 것을 전 세계에서 골라와 파는 곳이다. 이곳이 힙했던 이유는 안목 높은 MD의 편집 실력을 훔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편집이란 꼭 MD만 하는 게 아니다. 편집은 우리가 옷장을 꾸리며 무의식중에 하는 일이니.

영상물 제작에서는 ‘편집’이란 ‘잘라내기’와 동의어로 쓰인다. 우리 옷장도 아닌 건 칼같이 덜어낼 수록 만족스런 옷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뺄 것 빼고 더할 것은 더하는 것. 그것이 편집이다. 편집매장 운영, 영상 제작, 옷장 컬렉션 구성. 이 모든  ‘편집’에서 필요한 건 바로 기준이다.

⟪단: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2015)의 저자 이지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삶이 행복해지려면 나만의 가치가 아닌 모든 것은 ‘버리고’, 자신의 뚜렷한 정체성을 ‘세우고’, 자신이 세운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게 진정성을 ‘지키라’고 말한다. 이지훈이 말하는 ‘단’ = 심플함은 옷 잘 입는 사람들이 컬렉팅할 때 지키는 철칙이다. 곤도 마리에가 말한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말도 본질만 남기는 ‘심플함’을 실천하기 위한 전략 중 하나이다. 

나는 브랜드를 초월하여 쇼핑한다. 또 카테고리도 초월한다. 남성복에서도 쇼핑하고, 다양한 외국 사이트에서 직구도 망설이지 않으며, 저렴한 SPA 옷과 고가의 브랜드 옷이 모두 내 옷장에 존재한다. 브랜드나 카테고리, 가격대보다 더 중요한 기준은 내 정체성이다. 나는 내 정체성에 부합하는 옷만 존재하는 컬렉션을 만들어가기 위함이다.

그래서 기업이 정해놓은 브랜드 컨셉이나 머스트 해브 아이템에 대한 고정관념, 지금 트렌디한 아이템은 과감이 머릿속에서 ‘버리고’, 내 정체성을 반영한 나만의 룩을 ‘만들고’, 내 옷장의 컨셉을 ‘지켜내야’ 한다.

내가 클라이언트들과 쇼핑 장소에 갈 때마다 한 번씩은 자기 정체성과 동떨어진, 그 나이대/직업군/성별의 사람들이 입는 옷을 사야 되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단호히 말한다. “그건 아니에요. 내려놓으세요.”

우리 중 상당 수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옷을 입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옷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입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옷을 입으려면 내 옷이 아닌 것은 단호히 배제하는 결단력이 필요하다. 내 클라이언트 대부분은 옷장 컨셉이 되어 줄 정체성 탐구 과정을 거치고 나면 (따로 숙제를 내드리지 않았음에도) 옷장에서 많은 옷을 비워냈다. 스스로 편집의 필요성을 알아차린 것이다.

과거엔 옷장이 터져라 아무 옷이나 수집했던 내가 ‘조용한 말괄량이’인 내 행복에만 집중했을 때, 옷에서 무엇을 버려야 할지, 옷장에 무엇을 들여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들이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쉬웠다. 나는 어디서든 무엇이든 쇼핑하지만 내 옷장은 점점 더 ‘조용한 말괄량이’다운 컬렉션이 되어가고 있다.

 

3. 옷장 편집권은 내 것이어야 한다

 

자기 옷장 편집권을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매일매일 SNS 피드 속 ‘연예인 000의 백’, 인플루언서 000의 소장품, ’30대 남성들이 가장 많이 산 스니커즈’ 같은 문구는 가볍게 흘릴 수 있다. 대형 쇼핑몰의 넓디넓은 SPA 매장에서 두리번거리다 시간 낭비하는 쇼핑이 아니라 필요한 것만 찾고 그 이외의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스피디한 쇼핑을 할 수 있다.

⟪컬렉터⟫의 겉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컬렉션은 곧 컬렉터의 취향과 안목, 예술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창이다.

나는 옷장을 꾸리는 우리를 위해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내 옷장은 곧 내 취향과 안목, 옷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소통의 창이다.

나의 취향과 안목, 옷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 나만의 옷장을 완성하기 위한 옷만 택하여 사는 것. 처음부터 화려할 순 없지만 오래도록 나와 함께할 내 컬렉션을 완성해 가는 쉽고도 어려운 방법이다.

내 옷장 속에는 많은 옷이 걸려 있지도 않고 비싼 명품도 없다. 그러나 내 옷장에는 출신지는 다양해도 내 옷임이 확실한 옷들이 알차게 걸려 있다.

나는 매일 내 옷장에서 꺼내어 옷으로 표현한 내 세계로 사람들과 나누는 소통이 즐겁다. 내가 말하지 않을 때도 말없이 나를 표현해 주는 내 옷. 옷장 편집권은 평생 남에게 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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