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사이’ 월드, 낀 팀장이 일하는 방법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 기분이에요.”

신임 리더 오리엔테이션 중 갓 리더가 된 한 분의 솔직한 속내를 듣게 됐다. 실무자로서의 내공을 켜켜이 쌓아가며 담당 업무를 능수능란하게 처리하게 될 즈음 직장생활의 2막, 바로 조직의 허리 역할이 시작된다. 여기서 허리라 함은 최종 의사결정권이 없으면서 후배들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모든 중간관리자를 이야기한다.

공채 신입사원 중 단 1%만 도달한다는 임원의 자리에 올라도 위로는 최고 경영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름 석자를 걸고 창업을 하기 전에는 중간관리자의 자리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만큼 중간 위치에 기대되는 역할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잘 수행할 때 직장 생활의 지속성은 물론 인생 전체의 만족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하기에

중간관리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리더들을 만나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리더가 될 조건을 갖춘 이들이 많았다. 바로 양쪽 모두의 입장을 잘 헤아리는 공감능력과 균형감이 발달한 분들이다. 상사가 요구하는 촉박한 데드라인에 ‘오죽하면 저럴까’ 하는 마음으로 그럴 수밖에 없음을 공감하면서도 눈앞에 쌓인 업무로 인해 힘겨워하는 후배들의 속마음도 100% 이해가 된다. 쓴 소리를 숨기고 ‘얼마 안 걸리는데 직접 하고 말지’라는 생각으로 야근을 자처한다. 그렇게 초보 중간관리자는 점점 상사와 후배 사이에 끼어가며, 압박과 스트레스를 적절히 분출하지 못한 채 홀로 견디기 시작한다.

조직에서의 스트레스 원인을 살펴본 연구(Kahn et al., 1964)에 따르면 역할 모호성, 역할 갈등, 역할 과중 이 세 가지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준비 없이 덜컥 앉게 된 중간관리자의 자리에 어떤 역할과 역량이 요구되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고, 상사와 후배 사이에서 어느 한편을 들기 어려운 갈등의 한복판에 있으며, 실무에 더해 관리자로서의 역할까지 요구받는 삼중고에 지쳐가는 것이다.

낄 것인가? 깰 것인가?

요즘 중간관리자들은 소위 위아래로 끼어있는 고달픈 세대로 묘사되고 있다. 서점 매대에서건 기사에서건 우리는 옳고 그들은 틀리다며 ‘꼰대’의 입장을, ’90년대생’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 전례 없이 개성 강한 캐릭터가 등장한 요즘 시대에 두 세대 사이에 놓인 중간관리자를 세상은 ‘낀 세대’라 부른다.

낀 세대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일까? 내가 두 세대 사이에 끼어있다고 느낀다면 틈에 끼지 않고 틀을 깨는 리더로 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낀’이라는 글자에 자음 ‘ㅏ’자와 ‘ㅣ’자를 더해야 ‘깬’이라는 글자가 된다. 아는 바로 我(나 아)자다. 위로는 상사, 아래로는 후배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의 소신을 담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끼지 않고, 깰 수 있다. 이는 바로 理(다스릴 이)다. 실무자를 넘어 중간관리자가 되었다는 것은 혼자가 아닌 함께 일하라는 조직의 요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하면서도, 팀원들과 함께 성장할 때 틈에 끼어 으스러지지 않고 틀을 깨는 리더가 된다.

중간관리자의 고민 포인트

처음 중간관리자가 됐을 때 마주하게 되는 고민들이 있다. 조직마다 환경이 다르고,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천차만별이겠으나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기본적인 원칙과 시대정신에 따라 이를 지혜롭게 다뤄보면 어떨까?

고민 1. 달라진 내 역할은 무엇일까?
중간관리자가 된 당신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히 설명해주는 상위권자는 해태나 유니콘과 같은 상상 속의 동물일지도 모른다. 다만 친절히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차세대 리더로 기대 받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새로운 역할에 적응하기 위한 첫걸음은 리더십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전 직장에서는 매년 리더십 평가를 진행했다. 평가 결과를 분석하며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구성원들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는 리더들의 공통점들이었다. 그들의 강점은 6가지로 압축됐다.

1.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 문화 조성
2. 큰 그림, 비전을 제시
3.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권한 위임
4. 솔직함과 투명한 의사소통
5. 합리적 사고와 공정함
6. 전문성

위 모든 강점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일’이다. 후배들이 일할 맛 나는 조직을 만들어주는 것. 일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리더가 인정받고, 사랑받는 리더였다. 실무자로서의 완벽함을 넘어 조직 전체의 일하는 수준을 끌어올릴 때 자연스럽게 리더로서 인정받고, 영향력이 커진다.

고민 2. 누구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할까?
기존의 일하는 방식이 익숙하고, 정답이라 여기는 상사와 새로운 방식과 좀 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원하는 후배들 사이에서 귀 기울이고 함께 손잡아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바로 후배들이다.

담당하는 행사 마케팅을 위해 후배에게 카드 뉴스 제작을 요청한 적이 있다. 후배는 모처럼 흥미로운 업무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허나 후배가 결과물을 가져왔을 때 조금 놀랐다. B급 감성, 소위 말해 ‘약 빤’ 카드 뉴스를 제작해온 것이다. 항상 심플한 톤 앤 매너를 유지하던 행사와는 결이 다른 결과물이었다. 어차피 승인되지 않을 것이니 다시 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을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후배가 고심해 만든 카드 뉴스를 ‘원래, 어차피’라는 꼰대어를 써가며 가로막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번 홍보 콘텐츠의 주 타깃 고객층은 20~30대였고, 그들이 선호하는 유머 코드와 B급 감성은 필요한 요소였다. 솔직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우여곡절 끝에 승인된 ‘약 빤’ 카드 뉴스는 오히려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회사가 아니라 리더나 경직된 조직문화가 싫어 떠난다”는 요즘 세대들의 이야기가 종종 들려온다. 블라인드, 잡플래닛 등을 통해 서로의 속내를 거침없이 공유하는 비밀이 없는 시대에 기업의 일하는 방식과 소통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후배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심리적 안전감을 높여야 조직 전체의 실행력과 경쟁력이 올라간다.

고민 3. 내 피드백이 잔소리로만 들리지 않을까?
중간관리자가 되고 후배들에게 던질 쓴 소리를 다시  삼키는 일이 자주 생긴다. ‘나 역시 꼰대는 아닐까?’라는 자기 검열에 더해 다른 방향과 의견을 전달해야 하니 감정적으로도 불편한 상황이 싫은 것이다. 하지만 후배들은 피드백이 싫은 게 아니라 나쁜 피드백이 싫을 뿐이다. 90년대생을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사는 당돌한 세대쯤으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그들에게 조직에서 꼰대를 만났을 때 대처법을 묻는 설문조사의 결과를 살펴보니 일방적인 강요와 무례함이 거듭될수록 철저하게 입을 닫는다는 응답 비율이 더 높았다.

께 성장하려면 피드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과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지난 업무의 과오를 비난할 시간에 최초에 기대했던 모습과 방향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혹시나 처음 방향 설정부터 잘못됐거나 상사의 의중도 모른 채 몇 날 며칠을 허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둘째, 부분을 전체로 확대하지 않고, 사실에 집중한다. “어떻게 하루가 멀다 하고 지각을”이라는 말과 “지난주 2번의 지각을”이라는 말은 결이 다르다. 전자는 반발심부터 불러오지만 후자는 지금 여기서 발생한 문제에만 집중하게끔 한다. 셋째, 질문으로 끝나야 한다. 어렵게 시작한 피드백을 잘 마무리하려면, 피드백을 받는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 “다음부터 잘 합시다”가 아닌 ‘내 생각은 이런데 이 대리 생각은 어때요?’가 되어야 한다. 결국 업무를 실행하는 사람은 상대방이다. 직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펜을 건네줘야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고민 4. 다들 왜 내 맘 같지 않을까? 동기부여의 디테일
파트장으로 처음 발령됐을 때 설렘을 잊지 못한다. 내겐 그 자리가 부담이라기보다 조직을 변화시키고 뜻을 펼쳐나갈 수 있는 기회로 느껴졌다. 허나 자리가 바뀌고 리더 역할을 해보니 내 맘처럼 적극적이지 않은 팀원들이 야속한 순간도 참 많았다. 과연 그들의 잘못이었을까? 애초에 팀원과 중간관리자는 눈앞의 목표가 다르다. 팀원은 자신의 한해 KPI 달성 여부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고, 팀장은 팀 전체의 성과와 각 구성원이 제 몫을 하는지를 고민한다.

실무자 시절 의욕적으로 임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A부터 Z까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아이디어를 적용해 실행했으며, 결과를 통해 배웠던 일들이다. 떠넘기는 것과 믿고 맡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일할 맛나게끔 해주는 중간관리자는 업무의 극히 일부만 떼어내 배경과 목적을 거두절미한 채 요청하지 않는다. 가급적 업무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믿고 맡기는 리더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지켜줬으면 하는 마감기한, 예산 등의 가이드라인은 제시하되, 이후는 자율과 책임을 온전히 쥐어준다. 믿고 맡기는 리더는 업무를 맡길 때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최초에 기대했던 바와 결과를 함께 리뷰한다.

리더들은 종종 그들의 팀원들이 업무 의욕이 없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팀원들의 의욕을 꺾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의미가 충분히 부여되지 않은 업무와 경직된 조직문화가 원인인 경우가 많다. 단편적이고, 일방향적인 업무 지시가 반복되면서 실무자는 내 일이 아니라 네 일이라고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고민 5. 직책자가 되니 외롭다. 내 편이 없어요.
직책자는 외로운 자리다. 팀원들과 모여 똑같이 상사를 속 시원히 욕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상사의 입장만 대변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면 조직 내에서 기댈 사람도 없어지고, 확실한 내 편도 없는 것 같은 고립된 감정을 느끼기 쉽다. 중간관리자가 팀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신은 내 편이 아닌 상사 편’이라는 인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직책자들만의 밀담’이 이어지고, 그들만의 답이 정해진 회의가 계속될 때 가속화된다. 결국 투명하고, 열린 소통이 부족한 조직은 그만큼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중간관리자가 정보를 권력으로 활용하려면 소유하기보다 공유해야 한다. 기준은 단순하다. 팀원들의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될 정보라면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투명하고 빠르게 정보를 공유할 때 팀원들에게 같은 편이라는 신호가 전달되며, 신뢰를 얻는다. 물론 조직 내에 퍼진 가십거리까지 내 편이랍시고 전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조직에 부정적 감정과 오해만 쌓이기 때문이다.

여기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두 나무가 있다. 하나는 대나무다. 대나무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유연하게 흐름에 올라탄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대나무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소나무다. 비록 세찬 바람에 몇몇 가지가 꺾이고, 상처가 났을지언정 단단하게 내려둔 뿌리로 인해 뽑히지 않고,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며 숲과 함께 성장한다.

상사 그리고 후배들과 함께 일해야 하는 중간관리자에게 필요한 것 역시 대나무와 같은 유연성, 뿌리 깊은 소나무와 같은 리더로서의 소신과 책임감이다. 파도가 밀려드는 백사장에서 모래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또 다른 모래벽을 쌓을 것인가, 파도 위에 올라타 서핑을 시작할 것인가? 기존에 방식에 왜라고 묻는 후배들, 실행에 힘을 실어줄 상사와 손을 잡을 때 우리는 또 한 번 성장할 것이다.

글_ 한상아 DB인재개발원 기본교육팀 과장 / 《낀 팀장의 일센스》 저자
해당 기사는 HR Insight 2020년 10월호 기사를 재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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