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앱 ‘블라인드’의 인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앱을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대기업을 비롯해 중소기업, 공무원, 국책연구기관 연구원까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거나 해당 분야에 대해 전문성을 가진 이들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해 이 앱을 종종 활용하곤 합니다. 블라인드에선 때론 회사 내 민감한 조직문화가 폭로되거나 대외비로 취급됐던 근무환경이 수면위로 드러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항공의 땅공회항 사건도 이 앱을 통해서 공론화가 됐습니다. 앱을 통해 공개한 회사 내 부조리가 기사화되고 각자 다니는 회사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사내 이슈를 알리고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이나 경찰, 검찰 직원이 볼 수 있도록 태그를 거는 일도 이제는 일상화가 됐습니다. 저도 사내 부조리에 대해 제보할 것이 있다며 채팅을 걸어오는 직장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 앱의 가장 큰 무기는 여러분이 알다시피 바로 ‘익명성’ 입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손을 들고 얘기를 하면 잘난 척을 하는 아이라고 은근히 배척하는 문화가 체화돼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 놓고 뭔가를 얘기하면 회사 내부에서부터 혹은 더 나아가 우리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하지만 블라인드 앱은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버렸습니다. 오로지 공개되는 것은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뿐입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익명성을 무기로 미확인 소문을 유포하거나 회사를 음해하려는 시도도 왕왕 존재합니다. 회사 내부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블라인드를 통해 직원들이 회사 내부문제를 폭로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블라인드를 사용하면 안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내려 보내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회사에게는 찾아낼 수 없는 ‘내부의 적’이 최대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회사 관련 글들의 상당수는 조직문화와 시스템이 후진적이거나 오너나 상사가 갑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원들은 이를 외부에 공론화하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현재 상황을 개선해 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문제는 회사에서 소통의 창구를 늘리고 조직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그저 비용이 늘어나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데 있습니다. 만일 사내 창구에서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됐다면 익명 게시판을 통한 비판 또는 언론 보도, 더 나아가 경찰 수사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후폭풍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는 익명의 직원 한 명이 쓴 글 하나가 회사의 명운을 뒤바꿀 수 있는 테일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건은 회사가 조직문화 개선과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직원들이 익명 앱에 글을 올리는 것은 이 회사의 침몰과 파산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요구하는 부르짖음입니다. ‘회사 내에서 바뀌려는 노력과 움직임이 보이지 않으니 익명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외부에 의해 바뀌는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구나’하는 탄식인 것이죠. 결국 이 같은 노력을 한 직원들은 회사가 개선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조직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회사 얘기를 단순히 MZ세대의 철없는 행동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조직은 발전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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