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만난 사이
: 매월 월간지를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들을 통해 업무 이상이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들, 자신의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나누는 사람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생태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 훌륭한 태도만으로도 깨달음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1화 : 그들의 태도를 배운다
일을 하다가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수많은 회사와 사람들을 만날 텐데 제일 좋았던 기업은 어디예요?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예요?”
이러한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궁금해할 베스트 프랙티스를 가진 기업이나 자신의 전문성을 뚜렷하게 가진 ‘핫피플’을 말할 때가 많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기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오래 기억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만남은 일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각각의 태도다.
잡지를 만드는 일은 ‘독자라는 사람의 니즈를 읽고’ ‘필자라는 사람과 기획의 방향을 공유하고’ ‘취재원이라는 사람을 인터뷰하고’ ‘기자라는 사람들이 결과물을 만들어내’ ‘다시 독자라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결국 그 어디에도 ‘사람’이 빠지는 순간은 없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만나는 사람 중, 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겸손함이다. 겸손함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모호한 단어이다. 각자가 가진 기준에 따라 판단되는 성격이다. 내가 보는 기준에서의 겸손함은 ‘꾸준히 학습하는 태도’이다.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졌다고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자 노력하는 태도는 스스로 아직 부족함이 많고, 계속 학습해야 한다는 겸손함에서 나온다. ‘다 안다’는 자만심보다는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겸손함은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들은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됐고 그동안 두서없이 해오던 일들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기사는 ‘더 잘 쓰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두 번째는 성장 욕구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한 세미나에서 외국계 기업 사례 발표가 있었다. 꽤 흥미로운 주제여서 그 내용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데 사실 그날을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발표자인 J 이사 때문이다. 그날 처음 만난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발표 사례를 우리 매체에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J 이사는 언제든지 연락 달라고 했다. 실제로 연락을 했고, 그의 말처럼 언제든지 연락해도 참여를 해주는 우리 매체의 ‘단골 필진’이 됐다. 언젠가 그가 말한 적이 있다. “일을 하면서 외부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성장하는 게 보이더라고요”라고.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L 실장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게임업계에서 오래 일해 온 그는 어려운 미션이 주어질 때마다 ‘인생은 게임과 같다’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한다.
“게임 속에서 레벨업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위기를 다 극복해 나가잖아요. 그 위기를 넘어서야 다음 단계가 열리니까요. 저는 인생도 지금의 어려움과 위기를 넘어서야 다음 단계가 온다고 봐요. 그래서 피하기보다는 부딪히고 넘어서려는 노력을 하는 거죠. 물론 언제나 다음 단계가 오는 건 아니에요. 인생은 게임 속 가상공간과는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게 분명히 있는 거 잖아요.”
세 번째는 배려이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능숙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는 나조차도 여전히 그게 어렵다. 가끔 인터뷰에서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하기 싫은데 홍보팀에서 떠밀었다’ ‘임원의 지시로 억지로 나왔다’라는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이럴 때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반나절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 반면에 어색한 자리를 여유 있게 이끌어가는 이들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성격이 밝고 쾌활해서라기 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발휘되는 것이다. 자리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식상한 질문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 답을 주기도 한다. 그들과의 만남은 어색하지만 편안하고 감사하다.
사람에 대한 기억은 사소함에서 나온다. 설령 그 사소한 모습이 자신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대방에는 오래 기억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