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UCA 환경 하에서 기업 경영을 하면서도, 여전히 조직이 안정적일 것이라는 낙관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죠. 세상이 바뀌고,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바뀌면서 그간 우리가 당연시 해온, 그리고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온 조직의 전제들도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근현대 경영사의 뿌리, 성과주의 입니다. 과학적 경영관리의 근간을 이뤄 온 이 성과주의는 앞으로도 계속될까요?
기업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대체로 한국 기업들이 성과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외환위기, 즉 1998년이 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과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한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센티브와 승진을 차등화하는 등 제도와 시스템을 성과주의에 맞추었죠.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공기업들도 앞다투어 성과관리체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요약되는 성과주의는 한국기업조직들에게 하나의 패러다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20년을 넘기고 있는 한국기업의 성과주의는 그간 어떤 특성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한국의 성과주의 작동에는 상명하복의 관료적 위계 문화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기업이 처음 직급을 만들 때 군대의 계급 구조를 그대로 원용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실제로 모든 위계조직은 군대를 닮아 있습니다. 어떤 업무를 하느냐(What) 뿐 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How)도 상명하복 하에 이루어지죠.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하나 있습니다. Reinventing Organizations의 저자이자 정치가인 프레드릭 라룩스(Fredric Laloux)는 ‘관료적 위계주의는 미래가 과거의 반복이라는 가정이 성립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안정적 환경일 때 유효하다는 말이죠. 즉, 관료적 위계주의는 장기적인 안정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VUCA 환경이 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이는 더 이상 유효한 원리가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서 기업이 지속가능 하려면 구성원들 모두의 오너십과 몰입, 창의가 절실한데 이는 소수 경영자뿐 아니라 구성원이 how는 물론, 큰 방향만 맞는다면 what에서도 자유를 누릴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what과 how에서 모두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업무목표도 팀 이나 개인 차원에서 수립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성과주의를 도입할 즈음에 창립된 구글, 야후, 아마존 등 미국의 IT 기술 기업들은 모두 일찌감치 이 조직운영원리를 실험했습니다. 최상위가 차상위를 지배하고 차상위가 그 아래 단계를 지배하는 위계주의가, 능력 있는 구성원이 what과 how를 정할 자유를 가지도록 하는 새로운 조직운영 원리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새로운 조직운영원리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방향성이 흔들리거나 방향 합의와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이 약화되면 속절없이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 기업들이 이 새로운 운영원리의 실현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VUCA 경영환경에서는 목표와 전략, 즉, what과 how를 한 두 사람에 의존하거나 장기적으로 미리 정해 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최종 제품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시장이 얼마나 될지, 또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단정할 수 없는 경영환경이 되었습니다. 목표는 끊임없이 바뀌고 시장도 그와 함께 명멸을 반복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현재 한국형 성과주의의 상황을 감안해 보았을 때 이러한 조직운영 원리를 안착시키기 위해 무엇을 고민해 봐야 할까요?
첫째, 관료적 위계문화를 빠르게 불식시켜야 하겠습니다. 최근 많은 조직들이 이를 위해 수평적 조직구조와 소통 채널 구축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신구 문화형태가 공존하고 있지요. 즉 많은 한국 기업에서 성과주의와 위계주의가 혼합된, 이른바 과도적 성과주의가 만연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공존 상태가 방치되어 장기화할 시에는 조직 내 피로도를 증대시킬 수 있으며 이로 인해 변화 동력을 근본적으로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둘째, 성과주의 본연의 모습을 살리려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본래 성과주의란 효율, 혁신, 고성과를 보상하는 것인데, 그 동안 한국적 위계주의와 공존하다 보니 상명하복을 잘 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보상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how의 자유를 통해 창의를 발휘하지 않았는데도 보상했다는 것이죠. 결국 혁신은 구호로 그치고 실제 혁신은 억제되는, 이른바 혁신의 고비용 저효율 순환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더 늦기 전 새로운 조직운영 원리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새로운 조직운영 원리는 what과 how 모두에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구성원들은 세상에 필요한 혁신과제를 스스로 찾아 수행하는 자유를 보장 받아야 하는 것이죠. 이제 개인영역은 조직이익에 더 이상 희생되거나 복속되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불가침 영역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거기다 근로시간까지 짧아지고 온라인 근무형태가 일상화되기 시작했죠. 이런 조건하에서도 변치 않는 대전제는 기업이 여전히 이 개인들을 동기부여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what과 how의 자유에 기반한 오너십의 발휘, 이것이 VUCA 시대의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 방법일 수 있음을 진중하게 성찰하며 이에 대해 전향적이고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도움되는 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