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던 2020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자랑스럽게 쌓아왔다던 문명의 금자탑은 한순간에 그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이제껏 한번도 본 적 없는, 마치 좀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가공할 전염력으로 말이죠. 우리는 서로를 의심해야했고, 서로를 멀리하는 것을 새로운 기준으로 선택해야 했습니다. 치료제나 백신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다운 모습을 지탱해 줄 지지대였고 그 외 모든 것은 감염의 공포 앞에 연대력을 잃어갔습니다. 전 세계에 걸쳐 촘촘하게 짜여져 있던 글로벌 생산, 소비 체인은 중국발 제조업 생산붕괴로 인해 도미노처럼 무너졌습니다. 돈이 있어도 화장지를 사지 못하는 선진국 국민들의 민낮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와중에도 락다운에 항의하는 집회를 벌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우리가 문화대국이라 일컬었던 나라들이었던 지라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호화로운 성장의 황금기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했던 한 해였습니다. 분명히 인간으로서, 그리고 문명인으로서 존엄적 가치를 시험받는 시기였습니다.
#코로나가 남긴 생채기
바이러스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는 것도 증명시켰습니다. 젊은 사람보다 노인들이,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이 바이러스 앞에 취약했고 치명적이었습니다. 지위가 낮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는 비만, 당뇨병, 호흡기 질환과 같은 기저질환을 가진 이들에게 바이러스로 인한 치명율은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경제력에 따라 코로나로 인한 사망률에도 차이를 보였습니다. 영국의 경우 가장 빈곤한 지역의 코로나 19 사망률이 가장 빈곤하지 않은 지역보다 두 배나 높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던 미국 독립선언서의 문구는 적어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모든 인간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효능감,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하는 ‘회사’라는 공동체는 어땠을까요? 바이러스로 손발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조직이 그동안 보여온 여러 가지 모습들이 과연 공정한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관행과 관습에 가로막혀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바이러스를 뚫고 출퇴근을 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하는 일은 회사에 출근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하는 일 중에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무엇이며 단순반복업무는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가, 더 나아가 그러한 일은 꼭 내가 해야만 하는가, 자동화 시킬 수는 없는가,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차별화 될 수 있을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손쉽게 얻을 수도 있지만, 손쉽게 잃을 수도 있는 시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업들의 대처방식
삼정KPMG에서 지난 2020년 코로나 사태 전인 1월과 팬데믹 상황인 7월, 전세계 CEO의 주요의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정리해서 발표한 바 있습니다. CEO의 의사결정 흐름은 향후 기업과 산업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입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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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많은 CEO들이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됨에 따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뜻하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의 중요성이 점점 커짐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65%의 CEO가 향후 5년간 기후관련 리스크 관리가 조직을 운영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제적 흐름을 반영하여 정부차원에서 기업의 ESG 정보공개를 제도화 추진중입니다. 즉, ESG요소에 대해 기존에 ‘윤리적 판단’ 수준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객관화된 ‘ESG 성과지표(KPI)’를 통해 판단하겠다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조 바이든 美 정부가 출범하면서 ESG는 새로운 무역장벽의 역할까지 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출이 주력인 국내산업의 특성상 패러다임 전환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국내 주요기업들은 이미 ESG에 대해 적극적인 대처 움직임(전문가 영입, 위원회 신설 등)을 보이고 있습니다.
② 기업성장의 리스크 요인에 대한 우선순위 변화
2019년 그리고 2020년 1월까지만 해도 기업성장의 최대 리스크요인은 ‘환경, 기후변화’(21%)였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인 2020년 7월의 설문결과 가장 큰 리스크는 ‘인력관리’(21%)로 나타났습니다. 기존에는 12번째 순위였는데 말입니다. 전대미문의 상황으로 원격근무가 전격적으로 도입되는 등 일하는 방식에서 대변혁이 있게 됨에 따라 기업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인재의 확보, 인재 채용 및 직원 생산성 제고에 큰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③ 디지털, 디지털, 디지털
전반적으로 CEO들은 팬데믹 상황임에도 자사의 미래 성장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확신 67%, 유지 16%)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글로벌 생산공급망의 붕괴 등과 같이 기존 밸류체인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이러한 평가를 내린 근거에는 디지털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CEO의 75%는 코로나19가 디지털 고객 경험 생성을 가속화했다고 답했으며, 이렇게 달라진 고객 경험 방식에 대응하는 디지털의 고도화를 통해 자사의 비즈니스에 긍정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변화는 영구적이다
코로나로 인한 변화, 특히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영구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허나 ‘전면적 비대면화’와 같은 극단적인 형태로 갈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업무의 성격에 따라 원격으로 대응할 수 있는지가 결정됩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지난 12월 발표한 업무별 원격근무 대응상황에 따르면 업무의 종류를 협업수준(독립작업 vs 공동작업)과 업무유형(일상업무 vs 창의업무)에 따라 4분위로 나누어 원격으로 준비된 업무로 고객서비스, 시설/부동산, 재무, 법무, HR 순으로 나열했습니다. 그리고 원격 준비가 되지 않은 업무로 세일즈, R&D, 마케팅 등을 언급했습니다. 일상적, 그리고 규정과 제도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원하는 업무일수록 원격화에 유리할 것입니다. 반대로 타겟별 차별화된 전략을 수립하고 치열한 Ideation이 필요한 업무일수록 대면의 필요성을 더 느낄 것이라는 것이죠. 스티브 잡스와 리드 헤이스팅스가 대면업무를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모두가 한데모여 일하던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반대로 모든 업무가 원격으로만 이루어지는 극단적 상황도 일어날 것 같지는 않구요. 사람들은 여전히 협력하고 모이기 위해 물리적으로 만나기를 필요로 하고 원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우리가 하고 있는 업무가 어떤 종류이며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2020년이 ‘아차’ 하는 사이에 바이러스에게 속절없이 당했던 한해라면 2021년은 전열을 재정비한 인류가 다시 그 페이스를 찾아갈 한해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북반구를 중심으로 겨울철 대유행중입니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바이러스의 위력은 잦아들겠지만 스페인독감 이후 지금까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남아있듯이 앞으로도 코로나는 우리와 할게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앞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 입니다. 앞으로 코로나와 함께 살아갈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그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삼 새롭게 바라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New Era)’를 위한 준비에 거침없는 걸음을 내디뎌 보시기를 바랍니다. 변화는 영구적일 테니까요.
국장님, 멋지십니다.^^
글을 읽으면서 2020년을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백신에 의해 또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관점을 전환해야 할지 고민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어쩜이리 멋진 단어들로 쏙쏙 들어오는지. 우리가 이겨내야할 방향이 훨씬 진보적인 삶을 가져다 줄 것 같아 힘을 내게 되네요. 국장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tony
네 팀장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