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3월에 쓴 글에 이어집니다)
3월 호 아티클 보러가기
회사 게시판에 ‘크루의 서재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책꽂이 분양’ 안내를 했다.
“절호의 부동산 챤스. 판교 금싸라기 땅에 내 공간 한 번 가져보자”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었던가? 아니면 이 작은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책)를 채우고 싶은 욕망이었던가? 기대 이상으로 많은 크루들이 응답했다. 그렇게 신청한 분들이 모였다. 다행히 전자보다는 후자의 느낌이 강했다. 눈빛이 평화로웠다. 먼저 간단히 자기소개를 나눴다. 이 기쁜 날 일용할 양식도 나눴다. 도시락을 함께 먹으니(그렇다. 점심시간을 이용했다) 낯선 분위긴 금세 도란도란 해졌다. 식후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다행히 바로 옆이 카페였다) 운명의 제비뽑기(아파트 동호수 뽑듯)를 했다. 이왕이면 잘 보이는 곳을 원했기 때문에, 자리를 지정하기보다 각자의 ‘운’에 맡겼다. 우선 책꽂이에 넘버링을 했고, 뽑기를 통해 크루와 공간을 매칭 했다. 아파트 당첨 현장과 달리 절규와 탄성이 오가진 않았다. 역시나 평화로웠다. 책이 스민 곳들은 비슷한 풍경이 흐른다고 누가 그랬다.

1) 분양받은 곳을 소중히 다뤄주세요.
2) 1달에 1권(이상)씩, 4달 동안 서재를 맡아 주세요.
3) 책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친(혹은 본인이 읽고 재미있었던) 책을 소개해 주세요.
4) 포스트잇을 통해 책 추천 이유를 써 주세요.
어떤가? 아주 심플하지 않은가. 복잡해선 될 일도 안된다는 걸 우린 익히 알고 있다. 특히나 즐거운 일은 더더욱 심플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모두 즐길 수 있다.
다음날, 참여한 크루들은 각자의 공간을 자신의 책으로 채웠다. 재미있었던 건, 다들 책을 소개하며 그 책에 맞는 어떤 풍경을 연출했다. 이 부분은 예상하지 못했고, 뜻밖이었다. 개성이 폴풀 묻어나며, 이 프로젝트의 재미를 더 짙게 만들었다. 그렇게 작은 공간마다, 작은 전시가 벌어지니 바쁜 걸음으로 자리로 향하던 크루들은 속도를 늦추고(마치 스타벅스 드라이브 드루에 입장하듯) 책장 주변을 맴돌았다. 서재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분들도 많았다. 으앗! 이것은 성공의 스멜이 아니던가. 있는 듯 없는, 없는 듯 있었던 서재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공간으로(그 순간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바뀐 것이다. 버리지 못해 쌓아 둔 듯한 책이 모양빠지게 줄 서 있었던 서재가 아닌, 동료가 큐레이션 했고 큐레이션 이유(추천 이유)가 책 제목만큼 선명하게 보이고 주변이 뭔가 느낌 있게 채워지니 비로소 ‘책’이 이야기를 건네는 귀한 서재처럼 바뀐 것이다. 홍대 땡스북스, 최인아 책방 등 독립서점들은 한약 달이듯 정성들여 책을 큐레이션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우리는 각 칸에 ‘게스트 카드’를 올려두었고, 혹여나 빌려 가다면 그곳에 꼬옥 체크를 할 수 있도록 부탁을 했다.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운 도서카드를 슬쩍 놓아둔 것이다.


이렇게 오픈한 크루의 서재는 약속대로 4개월 정도 진행이 되었고, 시즌2는 진행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생각은 했지만 못했던 것들이 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크루의 서재에 책을 소개한 분들이 직접 그 책에 대한 이야길 하고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 큐레이션 된 책의 저자를 모셔, 직접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마련하고 싶었다. 서재 한 켠에는 카카오 크루만이 아니라, 네이버 그린팩토리에 있는 ‘지식인의 서재’처럼 작가들의 서재도 마련하고 싶었다(좋은 건 어쩔 수 없이 끌린다). 또 판교에 있는 다른 회사에 다니는 분들의 책들도 큐레이션 하면 재미있는 교류가 진행될 거란 므흣한 상상도 했었다. 이뿐 아니다. 서점에서 했던 숱한 이벤트, 도서 축제에서 진행한 무수한 행사들을 떠올리며 이 작은 공간만의 진짜 축제를 상상했다.
결국 이를 수 없었던 꿈이지만, 언젠가 그런 날(회사이 서재에서 진행되는 책 축제)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