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첩한 조직 만들기의 본질

축구경기와 육상경기를 한번 떠올려 보자. 축구에서는 공을 누가 잡았는지, 그 사람이 어디로 뛸지를 빨리 알아채고, 가능하면 누구에게 패스할 것인지 까지 예견해서 내 진행방향도 그에 맞춰 바꾸어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선수라 평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축구와 달리 육상 선수에게는 이러한 방향전환이나 완급조절, 상대 선수의 움직임에 따른 나의 움직임 조절이 요구되지 않는다. 각자 정해진 트랙에 따라 오로지 스피드만으로 승부를 가른다. 육상에서 스피드가 유일한 관건이라면 축구에서는 스피드와 유연함 모두를 겸비해야 한다. 스피드와 유연, 이것이 바로 민첩함이다.

최근 이 민첩함은 스포츠뿐 아니라 조직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고 있다. 예측불가능하고 급격하기까지 한 상황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라면 민첩한 조직이 더없이 빛을 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 시대에 이어 4차산업혁명시대가 열리고 모든 부문에서 디지털화가 진행되면서 민첩함이야말로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조직이 이 민첩함을 높이는데 애를 먹고 있다. 왜 그럴까? 사실 이 민첩함이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호하는 속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린 민첩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민첩한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행동편향성’(bias for action)이다. 일단 해보자, 저지르고 보자는 성향을 말한다. 즉, 민첩한 조직은 시도나 실험을 많이 하고 가능성이 반만 되도 실행에 옮긴다. 또 방향을 수정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되면 곧바로 바꾼다. 하지만 민첩하지 못한 조직의 특징은 반대로 ‘무행동 편향성’(bias for non-action)이다. 되도록이면 아무 행동도 안 하려는 성향이다. 이렇게 보면 민첩함의 반대말은 ‘느리다’가 아니다. ‘행동하길 꺼린다’, 또는 ‘안 움직인다’이다. 문제는 조직 내 구성원들이 변화에 따라 방향을 빨리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냥 가만히 있는 걸 선호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황이 급변할 땐 더욱 그렇다. 노벨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인간은 기회를 찾아 움직이는 성향보다는 위협이 두려워 가만히 있는 성향이 더 강하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상황 파악이 잘 안될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움직이는 것보다 생존확률을 높인다고 한다. 우리는 조직 내에서 이런 경우를 흔히 목격하고 있다. 조직 내 만연한 이런 모습들은 개개인의 근속 기간을 연장시켜 줄지 모르지만 결국 회사를 서서히 사그라지게 만들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인간본성에 반하는 민첩함을 어떻게든 조직 안에 주입시켜 보려고 애쓰고 있는 중이라 할 수 있겠는데 어렵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두 가지 본질적 방안을 제안해 본다.

첫째, 조직 내 의미 중심의 소통이 훈련되어야 한다. 쉽게 표현하자면, 이 훈련의 핵심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상태’를 ‘좀 더 이해되는 상태’로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상황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 그 상황을 단지 위협으로만 느끼기 보다는 해결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려면 ‘what’과 ‘how’보다는 ‘why’ 중심의 소통이 되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지가 명확히 인지되었다면 당장 완전한 해결 방안이 떠오르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봉착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가능한 대안을 생각하고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행동편향성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은 유럽을 탈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어느 날 연합군 대대장이 소대장을 불러서 라인강의 교각A를 내일 아침 7시까지 확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임무를 받고 나서려던 소대장은 멈칫하고는 왜 그 교각을 확보해야 하는지 물었다. 대대장은 연합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라인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러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교각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소대장이 밤새워 해당 지점에 도착해보니 교각A는 이미 폭격으로 끊어진 상태였다. 소대장은 순간 당황했지만 곧바로 지도를 펼쳐 10킬로미터 북쪽에 교각B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는 대대장에게 무선으로 교신한 후 즉시 이동해 그날 오전이 가기 전에 교각 B를 확보했다.

이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소대장이 자기 임무의 의미, 즉 Why를 몰랐다면 교각A가 파괴되어 임무 수행이 불가하다는 보고만 하고 귀대했을 거라는 것이다. 즉, 상황의 변화에 맞춘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각A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가 베를린 진격을 위해서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소대장은 변화된 상황에서 지도를 펼쳤던 것이다. 민첩함이 발휘된 것이다.

두 번째, 리더들은 조직이 추구하는 의미체계를 끊임없이 고민해서 그 타당성을 높여가야 한다. 많은 조직들이 민첩함을 전략이라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민첩함은 전략이 아니다. 전술이다. 조직이 전술적으로 신속히 방향을 바꿔나갈 수 있으려면 전략이 타당해야 한다. 그리고 전략이 타당하려면 이 전략의 근거가 되는 조직의 의미체계, 즉 조직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왜 가려고 하는지가 먼저 타당해야 한다. 앞선 사례에서 소대장처럼 행동할 수 있는 구성원이 여러 명 있다면 조직의 리더들은 본연의 임무인 조직의 의미체계와 전략수립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구성원이 민첩하지 못하다면, 즉, 지시 받은 것 외에는 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에서 리더들은 자신이 직접 전술차원으로 내려와 확인과 지시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방향과 전략이 취약한 조직이 되어 버렸다면 Why를 말해주고 싶어도 말해 줄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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