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흥미로운 현상을 관찰하고 있다. 각 분야별로 수많은 신생기업들이 생겨나고, 모두는 “스타트업”으로 이름 붙여진다. 일부는 소위 전문가들에게 자문(諮問)을 받으며 성장에 필요한 도움을 얻는다. ‘시리즈’를 막론하고 특히 인사(HR)와 조직문화 분야에서 자문 받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관찰한 사례들의 패턴은 대부분 유사하다.
- 스타트업의 대표가 투자자(VC), 다른 대표, 협회 등의 ‘네트워킹’을 바탕으로 ‘전문가’를 소개받는다.
- 회사의 상황을 공유하고 자문을 계획한다.
- 대표와 인사담당자가 자문받는다. 필요 시 강연을 진행한다.
- 자문/강연 내용을 도입하기 위해 다양한 과제를 수행한다.
- 대표는 자문에 만족하며, 또 다른 회사의 대표/담당자에게 자문을 권유한다.
HR 자문을 통해 회사와 인사담당자가 수행하게 되는 과제는 대부분 비슷하다.
- 회사의 비전, 미션, MTP를 새롭게 정립하고, 핵심가치와 인재상을 새롭게 꾸린다.
- 이에 맞춰 각종 제도 등을 업데이트 한다. : 채용/선발제도, 신규입사자 적응과정, 조직도, 직급체계, 성과평가제도, 보상제도, 승진제도, 1:1세션, 각종 회의제도, 업무 사이클, 조직진단제도, 사내교육, 타운홀미팅, 워크샵, 직군별로 협업에 필요한 각종 툴, 사내 규정, 복지제도 등등.
- 외부로 소통하는 (채용) 홈페이지를 새롭게 만든다.
- 미션, 비전, MTP, 핵심가치, 인재상을 누구나 인지하도록 각종 콘텐츠를 만들어 붙인다.(화장실에도 붙일지 말지 고민한다.)
더 나은 조직과 사람을 만들고, 더 많은 성과를 내며 성장하기 위해 자문을 받는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흥미롭게도 자문을 받은 일부 회사들에서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다른 곳으로 빠르게 이직하는 경우를 다수 관찰했다. 물론 개인의 이직에는 여러 배경과 이유가 있고 그마저도 각자가 다르지만, “더 나은 조직, 오래오래 다니고 싶은 조직”이 되기 위해 자문을 받았는데 결과는 정반대인 현상, ‘자문받기 전이 더 나았다.’, ‘자문을 받고는 원래 묻어왔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등 자문의 함정에 빠진 현상들을 관찰했다. (‘자문을 통해 더 행복한 조직이 되었다.’는 사례를 더 많이 알지 못한 것은 오롯이 필자의 역량이 부족한 탓이다.)
필자도 실제로 위의 업무들을 수행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무슨 효과가 있지? 그냥 기본만 제대로 해도 될 것 같은데,,” 그 기본은 다음과 같다.
- 채용면접에서 면접자와 진실되게 소통한다.
- 채용 합격 / 불합격 여부를 적시적절하게 면접자에게 알린다.
- 입사 당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각 항목을 소통한다. 스톡옵션계약 등은 향후 처리계획을 통지한다.
- (수습기간/시용기간이 있다면) 어떤 업무를 통해 어떤 결과를 내야 하는지, 그 과정은 어떻게 평가하고 합불여부를 결정하는지 당사자 모두가 명확하게 인지한다.
- 협업 당사자가 각자의 직무 범위, 진행 중인 업무를 잘 인지한다.
- 평가방법, 연봉협상 시기, 상여금/성과급 등의 계획을 당사자 모두가 오해없이 인지한다. 내용이 변경된다면 지체없이 공지한다.
- 각 직군/팀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의사결정권한, 예산/인원 등을 부여한다.
- 직무역량 성장에 필요한 교육을 기획한다.
- 기본적인 수준의 복지와 부가적인 차원이 복지를 기획하고 준비한다.
- 수시/정기적인 소통창구를 통해 성과달성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공유하고 해결한다.
사실 이 내용들은 인적자원관리 등의 경영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사람이 조직에 들어가 활동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떠올려도 도출할 수 있는 ‘기본’이다. 인사담당자의 업무 체크리스트로 활용해도 될 내용이다. 그런데 인생도 그런 것처럼 역시나 기본이 제일 힘들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또 다르다. ‘비즈니스 모델 구축해서 생존하기도 바쁜데…’, ‘배부른 소리…’, ‘지금은 HR이 비어있어도 나중에 차근차근 만들면 된다.’ 등도 맞는 말이지만,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하는 각오로 철두철미하게 기본을 지탱한다면 오히려 노력과 비용이 줄고 이익이 된다.
조직문화는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문화(Culture)의 어원인 라틴어 Cultus(쿨투스)는 경작이나 재배 등을 뜻한다. 대지 위에서 스스로 자라난 생산물을 아울러 “문화”라고 부르는 거다. 즉, 조직문화는 MTP, 핵심가치 등으로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위와 자연의 바탕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 차원이다. 기본을 잘 실행하면, 좋은 문화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자문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자문해야 한다. 스스로 물어야 한다.
“우리 회사/팀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회사/팀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가?”
“우리 회사/팀이 처한 대내외 문제 상황은 무엇인가? 해결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채용, 입사, 평가/보상, 변화관리 까지, 각 순간에서 구축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구성원들이 어느 시점에서 회사의 정체성을 느끼도록 할 것인가?”
“우리 조직/팀이 다른 조직/팀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책이나 다른 회사의 [우수한 사례]를 보고 흔들리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는 기본에 충실하고 있는가?”
‘기본’은 시대, 환경, 업의 특성, 조직, 구성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책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누가 이렇게 말했어요”가 아니라 스스로 하는 “질문”과 “실천”이 유일하게 중요한 이유다. 질문해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자문도 자문 위에서 효과를 낸다. 아름다운 이상주의가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자는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다. 기본이 되지 않고는 그 어떤 유명한 사람에게 자문 받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요컨대, 잘 알려진 다른 회사나 조직이 해왔던 경험, 제도, 가치, 문화, 방법 등은 그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하며 만들어낸 것이다. 그들은 모호함을 품고 질문하며 그들만의 해법을 찾아냈다.
자문(만) 받는 조직은 정답을 쫓는다. 기존의 사례들을 자문 받으며 답습하려고 한다. 누군가 쓴 책과 이론을 붙잡고 훈고한다.
자문하는 조직은 질문을 던진다.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자문하며 해답을 찾는다. 자신의 조직을 직시하며 창의한다. 기본에 충실한다.
이제 자문(諮問)보다는 자문(自問)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