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티나이티스 현상의 극복, 그 쉽지 않은 여정

1977년 3월 27일 스페인 테네리페섬, 네덜란드 KLM 항공기와 미국 팬암 항공기가 이륙하는 과정에서 충돌했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및 관제탑과 조종사간 의사 전달 오류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사고 조사과정에서 추가로 드러난 KLM기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 내용은 충격적이다. 부기장이 “아직 이륙허가를 받지 않았습니다”하며 이미 활주로에서 움직이기 시작한 기장에게 항의하자, 기장은 짜증을 내며 “나도 알아”라며 속도를 높였다. 기장의 권위적인 어조에 눌린 부기장이 다시 관제탑과 교신하는 사이 기장은 교신을 가로채며 관제탑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륙합니다”.

시속 290km의 속도로 KLM기의 랜딩기어가 이미 활주로에 진입해 있던 팬암기의 동체를 강타했고, 583명의 사망자와 6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역대 최악의 항공참사가 발생했다.

테네리페 참사 외에도 다른 수많은 항공사고 조사에 따르면, 비행기 사고의 상당부분이 조종실내의 의사소통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부기장들이 기장의 권위에 눌려 잘못된 판단에 맞서 직언을 하지 못하는 현상을 캡티나이티스(captainitis)라 부르는데, 바로 이것이 테네리페 비극의 원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캡티나이티스 현상은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도 아주 넓고 깊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든 직원들은 아는데 CEO 혼자만 모르는 현상을 지칭하는 “CEO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CEO가 싫어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한 직원들이 두려움 때문에 차마 직언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캡티나이티스 현상의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 국내 굴지의 IT대기업 중견사원이 자살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많은 동료직원들은 전설적으로 악명 높은 상사의 괴롭힘을 비극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 상사와 일한 사람들은 다들 “지옥”이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한다. 빈소를 다녀온 한 동료직원은 빈소에서 들은 이야기가 예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고 술회하며 이렇게 고백했다. “나 또한 침묵하는 방관자중 하나였다는 괴로운 진실을 마주하니 수치스러워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만약에 그 회사가 캡티나이티스 현상을 부분적으로라도 극복할 수 있었더라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필자는 CEO로 일하는 동안 이러한 캡티나이티스의 덫을 벗어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러나 여전히 어렵고 한계를 절감한다. 그럼에도 CEO와 인사팀이 함께 노력하면 어느 정도 까지는 이 현상을 극복하고 회사를 발전시키고 조직과 직원들을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CEO의 애타는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살펴본다.

첫째, 인사팀은 다양한 형태로 CEO와 직원들의 직접소통창구를 강화하는 것을 통해 이 현상을 극복하는 노력을 구체화할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IT 기술을 응용하여 다양한 직접소통창구를 만들어 활성화하고, 또 오프라인 직접 소통의 자리도 제도화하여 편안한 소통의 분위기가 조직내에 스며들도록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직접소통의 좋은 예로는 잭 웰치 회장이 GE에서 시행하였던 타운홀 미팅이 있다. 이러한 타운홀 형태의 미팅을 기획하여 온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 있겠다. 이와 함께 침묵을 깨는 소통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할 수 있겠다. 독서토론회나 동호회 활성화도 소통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필자는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함께 임원 및 간부 인사를 단행했다. 회사의 한 핵심 간부가 은밀하게 CEO의 전략적 방향성과 지향하는 리더십 스타일에 어긋나는 행태를 보이고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대표의 신뢰를 받는다고 생각되는 간부에 대해 부정적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악화되기 전에 용기를 내어준 여러 직원들의 도움으로 적절한 시점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적쇄신으로 회사 조직은 한층 업그레이드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수개월 전부터 직원들과 편안하게 대화하는 오프라인 소그룹단위 티타임을 정례화하였고,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책으로 독서토론회를 실시하면서 분위기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현재는, 직원들과 직접소통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인사팀에서 여러가지 온라인 소통창구를 개설할 준비를 하고 있다.

둘째, 인사팀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직원들을 선별하여 CEO의 직접 소통채널 구축을 지원할 수 있다.

필자는 과거 제조업체 CEO로 일할 때 노조위원장이나 부위원장들과 주기적인 만남을 통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였다. 이를 통해 제조현장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묻혀버린 원가혁신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할 수도 있었고, 조직상 문제 인물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모 대기업에서는 “영보드”라는 젊은 직원들 토론 그룹을 운영하며 그 활동내용을 CEO에게 직보하는 제도를 운영한 것도 참조할 만하다.

셋째, 기업마다 정기 인사평가제도가 운영되지만, 실제로는 모든 기업조직에서는 추가적인 평가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그것도 훨씬 많은 요소를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로 실행된다. 인사팀은 이렇게 기존의 제도에 추가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평가현상”을 잘 분석하여 하나씩 체계화함으로써 CEO가 구성원을 평가할 때 캡티나이티스의 덫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다. 헤드헌터가 인재채용을 위한 과정에 사용하는 평판조회 방식을 참조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제한적인 보조자료로 활용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듯하다.

기존의 평가제도는 우리의 문화와 기업현실에 맞춤형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실제 경영현장에서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진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평가제도는 CEO가 제대로 된 경영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에 맞는 “맞춤형 인사평가제도”의 필요성을 절감하고는 했다. 어쩌면 평가제도에 추가적으로 일어나는 평가현상을 하나하나 체계화하는 시도가 맞춤형 평가제도 설계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CEO의 확고한 의지와 인사팀의 이러한 노력이 합해진다면 캡티나이티스의 덫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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