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윗사람들은 말이 안 통할까?
“우리는 의자에게 체온을 주었다 여기지만 기억하는 건 무게다”
이규리의 <들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에 나오는 말이다.
의자에 대한 비유는 ‘관계’에 대해 정의한 말이지만, ‘소통’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서로 받아들이는 바가 묘하게 어긋나다보니 소통의 오해가 쌓이는 것이다.
특히 직장에서 겪는 소통의 어려움은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 가장 많이 발생하게 된다. 차마 밝힐 수 없었던 퇴사 사유 1위로 ‘상사와 동료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직장에서 ‘소통’이 안 된다고 생각할까?
‘저 사람은 진짜 말이 안 통해’
직장에서 일하면서 서로 말이 안 통해 답답했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소통이 안 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본질은 서로 ‘이해’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특히 윗사람의 경우 아랫사람과의 소통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소통’인지 ‘명령’인지 헷갈리는 경우다. 분명 윗사람은 좋은 의도로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일 수도 있지만 아랫사람은 ‘명령’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런 오해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쉽게 말해,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대부분 자기가 답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랫사람이 입을 떼기도 전에 귀를 닫고 듣지 않으려 한다. 반면 아랫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들으려 하지 않는다. 윗사람은 말하고 아랫사람은 듣기만 하니 서로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케터의 일>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팀원에게 지는 리더는 지시 대신 설명을, 명령 대신 부탁을 합니다. 팀원에게 지는 리더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충분히 듣고 판단합니다.”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이 들면, 충분히 들어라. 충분히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경청(傾聽)’을 한자로 파자해보면, ‘임금처럼 진득하게 귀를 기울이면서 눈을 크게 뜨고 사람을 바라보면 상대의 마음마저 얻을 수 있다’ 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서로가 먼저 들으려한다면 적어도 ‘체온’을 주었는데 ‘무게’를 받았다는 오해는 받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온도의 차가 만드는 ‘결로’가 탁한 소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보고 무릎을 탁 치게하는 공감의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