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er에게 역량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입니다. 채용부터 평가, 육성까지 역량이 사용되지 않는 곳이 없으니까요. 저 또한 HRD컨설팅회사에 입사해 가장 처음으로 읽었던 책의 주제 또한 역량을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당시에도 모든 교육의 출발점은 역량에 있었고 역량모델링, 역량진단, CBC, CBHRD까지 관련 개념 및 방법에 대한 학습에도 열을 올렸던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그 역량이 아직도 우리의 업에 지배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과연 맞는지 여러 측면에서 스스로 의구심이 들어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역량의 개념은 기본적으로 일반 및 저성과자와 구별된 고성과자의 지식, 기술, 태도의 복합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역량모델링 절차에는 우리 회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내는 소위 말하는 하이퍼포머, 핵심인재들이 가진 역량을 규명하고 정의하는 활동이 있고 이를 구체적인 행동지표로 만들어 채용, 평가, 육성에 활용하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드는 첫 번째 의구심은 이 역량을 정의하는 활동인 역량모델링이 빈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오래된 역량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저성과자 및 일반 성과자를 고성과자와 똑같이 만들어내겠다는 행동주의 철학 기반의 역량의 개념과 접근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나 문제는 그 역량을 규명하는 주기가 빈번하지 않다보니 항상 시대변화, 트렌드, 조직 및 환경의 요구와 맞지 않는 오래된 역량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5년전, 10년 전 고성과자를 대상으로 모델링 한 역량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현실 아닌가요? 변화관리자를 자처하는 HRer들이 과거에 규명한 역량을 관행적으로 사용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있습니다. 역량모델링을 자주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 매년 진행하는 역량진단 결과에 기반해 우수성과자들과의 자체 F.G.I를 실시함으로써 역량의 우선순위 조정, 역량 재정의, 하위요소 및 행동지표 문구 수정 등의 보완 노력을 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역량에 대한 두 번째 의구심은 역량이 과연 성과에 지배적인 영향을 발휘하느냐는 점입니다. 먼저 일반적인 역량모델링 방법으로 볼 때 고성과자 가지고 있는 개인적 특성(성격, 취향, 업무 스타일 등)과 맥락(직무, 환경, 구성원과의 관계 등)이 고려되기 어렵습니다. 성과를 낸 요인에 분명 역량이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지만 개인적 특성과 상황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요인과 변수가 성과를 내는데 지배적인 영향력을 주었느냐에 대한 분석과 검증없이 역량이 곧 성과다를 전제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역량이, 과연 성과를 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요인만 추출한 결과물이 맞을까요? 심지어 기업별로 역량이 대동소이한 것을 봤을 때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처럼 직장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표준역량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도 듭니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역량모델링 과정에서 S.M.E 선발 시 보편적 특성과 상황에 있는 고성과자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고 도출된 역량이 일반 및 저성과자와 비교해 고성과자만이 가지고 있는 특출한 역량인지 사전에 진단을 통해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작업 또한 필요합니다. 그리고 개인적 특성과 맥락을 고려한 역량의 유연한 활용을 위해서는 이러한 점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동시에 육성의 일차적 책임을 가지고 있는 부서장을 개입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스펙 좋은 외부강사가 만든 고품질 컨텐츠의 역량교육을 여러차수 진행하는 형식적교육(formal learning)보다 내부 특수성을 잘 알고 있는 부서장의 면담과 코칭의 비형식교육(informal learning)이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직급별 역량 또는 계층별 역량이라고 지칭하는 리더십 역량은 이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팀제를 운영하고 있고 팀장과 팀원이라는 역할로 나뉘거나 주니어, 중간관리자(링커), 리더 정도의 3개 계층으로 역할이 나뉘어져 운영되는 현실 속에서 직급별 역할과 이에 필요한 역량을 정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리더십 파이프라인에 기초한 승진자교육, 직급별 교육도 이런 측면에서 실효성이 있는지 고민이 필요합니다. 팀으로 일할 때 어떤 역할과 업무를 담당해야 하고 팀원 상호 간에 교류 및 시너지를 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규명하고 개발하는 팀 효과성 진단 또는 팀 단위 조직개발의 방법론을 적용해보는 것이 계층별 역량을 정의하고 활용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넷째, 역량진단에서 사용하는 역량의 행동지표가 평가자인 구성원의 직관에 의존해 평가된다는 차원에서 실제적인 역량의 보유수준을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행동지표가 빈도수를 기반으로 측정하는 BOS방식의 문항으로 되어있다보니 구체적인 관찰이나 경험, 데이터 등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 못하고 느낌과 직관에 의존해 평가하고 있습니다. 후광효과, 관대화경향 등의 오류 및 왜곡도 이러한 정성적인 평가방법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가센터 등을 통해 보다 객관적인 측정을 위해 노력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다수는 평가자가 공정하게 진단한다는 믿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동료평가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기업사례도 발생했고 인간관계나 정치, 처세에 의해 역량진단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역량의 보유수준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위해서 평가자 대상의 사전교육, 점수 표기 시 사유 기입, 평가자 별 다른 가중치 설정, 주기적인 역량진단을 통한 평균점수 반영 등 다양한 보완책을 적용해보면 좋겠습니다.
다섯째, 역량 기반 교육이라고 하지만 실제 교육내용은 역량과의 연관성이 많이 부족한 점입니다. 별도 과정개발 컨설팅을 하지 않은 일반적인 역량기반 교육과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역량정의나 행동지표와의 관련성은 부족하고 외부강사의 컨텐츠에 의존해 있습니다. 우리 회사만의 고성과 요인의 하나로 역량은 잘 규명해냈으나 이를 직원들에게 내재화하는 교육장면에서는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역량개발센터(Development Center)와 같이 전문적으로 역량에 기초한 교육방법론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마치 이상과 현실의 괴리처럼 역량과 교육내용은 거리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육체계와 교육과정명에 역량명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고 심지어 교육 전후 역량의 향상도가 있는지도 측정하곤 합니다. 역량과 교육내용의 연관성의 높이기 위해 외부 컨텐츠를 커스터마이징 하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인데 여기에 추가한다면, 퍼실리테이팅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울 수 있게하면 좋겠습니다. 학습경험(Learning Experience), 학습여정(Learning Journey)의 개념을 도입해 역량을 주제로 학습여정을 따라가면서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게 한다면 내용이 아니라 절차와 방법을 통해 역량을 교육과 좀 더 밀접하게 연관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합해보면 역량이 성과창출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잠재력의 관점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모델링 주기가 빈번하지 않아 적시성이 떨어지고, 실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에 대한 고려나 검증이 부족한 점은 보완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기업의 운영체계 및 일하는 방식과 맞지 않는 계층별 역량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고 진단의 장면에서 보다 객관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교육으로 활용할 때는 역량 본연의 내용이 잘 다루어질 수 있도록 정교한 설계와 개발이 요구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기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필요한 역량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전문성’의 개념을 사용해보는 것도 고려해 봤으면 합니다. 구성원 각자가 경력목표(커리어 골)와 경력개발 경로(커리어패스)를 스스로 설계하고 주도하면서 이에 필요한 전문성의 요소로서 학력, 자격, 교육이력 직무경험, 대외인지도 등 다양한 구성요소 및 인증요건을 갖추도록 HR이 자원과 환경을 제공하는 접근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전문성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직무에 한정된 개념, 직무 전문가를 양성하는 부분으로만 해석할 수도 있으나 커리어 전문성이라는 관점으로 확대해보면 제너럴리스트로서 리더도 하나의 전문가, 전문성으로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역량 대신 강점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까지 표준화하여 사람을 키우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요? 정답이 없는 사회 속에서 오히려 개인의 강점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주는 것이 더 많은 그리고 더 특출난 성과를 만드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표준 모델에 기반해 역량을 진단하고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잠재력과 숨겨진 강점을 찾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강점개발의 철학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구성원 존중이 집단지성 꽃 피운다. 최고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라'(DBR, 2023.3) 아티클을 보면 VUCA시대 생존을 위해서는 평균주의 시스템을 해체하고 구성원의 자기다움에 근간한 새로운 경영철학이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독특함인 흥미, 강점, 지향점이 일터에서 동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HRer에게 치트키나 다름없었던 역량이 지금도 유효한지 여러 각도에서 고민해봤으면 하는 차원에서 개인적 생각을 나누어봅니다.
기존&현재 우리의 기업 교육방식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볼 수 있는 유익한 칼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