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의 만남은 광화문 교보문고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의 근무처가 광화문역 근처로 옮겨졌다. 퇴근 후 광화문역을 가려면 교보문고를 늘 지나야 했다. 어느 날 교보문고를 향했다. 책 들로 가득한 공간, 온화한 표정의 사람들. 그 공간을 메우는 음악까지 내게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그날 이후 그곳은 나만의 아지트가 되었다. 퇴근 후 매일같이 들렀다. 새로워지는 책들이 늘 신기했다. 책은 분야별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중에 마음에 든 책을 골라 품에 안을 때면 나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마치 산삼이라도 발견한 듯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심지어 화장실에서 조차도 책을 읽었다. 지하철에 내려 집에 가려면 20분을 걸어야 했다. 그 시간이 아까워 책을 펼쳐 읽으며 천천히 걸었다. 걷다가 바로 코앞 전신주를 만난 게 여러 번이었다. 걷다가 어둑 해지면 핸드폰 플래시 불빛으로 활자 속을 거닐었다. 그리고는 책의 맛을 알아갈 때쯤 목표를 정했다.
일. 년. 백. 독.
일 년, 100권 읽기에 도전해보는 거야.

직장생활을 하며 1년에 100권을 읽는다는 것은 일과를 제외한 자투리의 대다수 시간이 책 읽는 시간이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유는 정독하기 때문이다. 활자를 꼭꼭 씹으려 한다. 밑줄을 긋고 메모하며 읽는다. 한 권의 책을 띠지까지 남김없이 본다.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의 책이 있지만, 모든 음식을 맛보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내 삶에 주어진 시간 동안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깊은 맛을 느끼려고 할 뿐이다.
가방에는 늘 두 권의 책과 펜이 있었다. 책을 읽다 밤을 새운 적도 여러 번, 주말이면 대부분 도서관을 향했다. 규칙적인 시간인데 알맹이가 비어있는 시간이 바로 출퇴근 지하철 안이다. 직장인에게 가장 좋은 독서의 장소이기도 하다. 회사가 멀다면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이 확보된 셈이다. 이동하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점심시간, 잠자기 전 모든 자투리의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약속시간에 1시간 먼저 도착해 책 읽는 습관을 만드는 것 역시 좋은 방법이다. 독서의 맛을 알게 되면 내가 시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나를 맞추게 된다. 즉 시간에 있어 내가 주인이 되는 셈이다. 책을 읽을 때는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점이 있다. 책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때 필요한 중요한 도구가 바로 펜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말이 아니라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다. 나의 대화는 곧 펜으로 쓰인 글자인 셈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마다 ‘국민 독서실태조사’를 하게 된다. ‘책을 읽지 못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항상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라는 이유가 1위를 차지했다. 물론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19년도의 자료를 살펴보면 1위가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 , 2위가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라는 답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라는 생각은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일이 바빠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데이트를 포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어떻게든 자투리 시간을 확보해 연인을 만난다. 책도 이와 마찬가지가 된다.
2천 권의 독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독서의 맛에 점점 빠져들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 있다니, 글쓴이의 심장과 나의 심장이 만나는 기쁨이 참 좋았다. 첫해 100권의 목표를 이루자 다음 해부터는 자연스럽게 채워졌다. 무엇이든 첫 관문이 어려운 법이다. 100권이 200권이 되고, 200권이 500권이 되고, 해가 거듭되자 어느덧 2천 권쯤 다다랐다. 2권쯤 되자 책을 읽는 것보다, 읽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독서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왜 이렇게 먹기만 할까? 무언가 이뤄진 것은 하나 없는데, 책만 먹는 바보가 아닌 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먹고 나니 쏟아내야 했다. 아니 쏟아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컵 속에 물을 가득 부으면 넘치듯 무언가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하나의 문장을 만났다.
2천 권을 읽으면 소크라테스를 만난다『사진 출처 : Pixabay』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말이었다.
매일 같이 독서한지 20년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2천 권이 넘는 책은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됐다.
컵 안에 들어간 물은 지식도 아니요. 지혜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었다. 그 물이 바로 나의 부족함이란 산물이었다. 이 한 문장을 만나기 위해 지금껏 먹은 것이다. 부족함은 또다시 배움으로 이끌었다. 자연에서 배우고, 사물에서도 배우고, 사람에게서도 배우는 것 말이다. 그 배움은 감사로 연결이 된다. 감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랑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국은 사랑 공부를 한 셈이다.
그리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를 가르칠 수 없는 존재다.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자연이라면 모를까. 그러나 자연 역시도 가르침 대신 깨달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19, 지금 우리가 겪고 있지 아니한가. 자연이 주는 깨달음을 말이다. 인간은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 존재 일뿐이다.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자신이 본 세계를 공유하는 것 말이다.공유하는 데 있어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지구 안에서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부족해도 다 같은 꽃 아니던가. 꽃은 다툼이 없다. 초라함이 없다. 아름답게 피워 낼 뿐이다. 길가의 꽃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 한다. 크든 작든 결국 꽃을 피워낸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우리 역시도 자연의 일부 아니겠는가.

인생에 어려움이 있는가? 꿈의 여정이 힘겨운가?
물의 지혜를 빌려보자. 물은 모난 구석도 부드럽게 감싼다. 늘 사랑을 택한다. 내 앞에 자신의 키보다 더 높은 바위가 놓여있는가? 물은 바위를 넘는 대신 작은 틈을 선택한다. 추운 겨울이 다가와 앞길이 꽁꽁 얼어버렸는가? 물은 얼음에 상처를 내며 깨지 않는다. 잠시 몸을 웅크려 기다릴 줄 안다. 곧 태양이 비춰 모든 만물이 순해 짐을 알기 때문이다. 물은 만물의 도움으로 결국 흐른다. 작은 틈을 뚫고 결국 큰 물로 나아간다. 물은 바다라는 목적지가 분명하다. 그저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갈 뿐이다. 인생이 외로운가? 꿈의 여정이 외로운가? 책은 늘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반긴다. 당신을 기다리며 하루빨리 만나길 말이다. 아침이고, 새벽이고 시간을 세지 않는다. 독서의 기쁨을 함께 나눠 보면 어떨까? 책 읽기에 가장 좋은 날은 오늘이요. 책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책 속의 진짜 성인(聖人)은 아이들
존경하는 연암 박지원 선생은 “길 가던 어린아이에게 조차도 물었다”라고 했다. 아이를 키워보니, 길 가던 아이야 말로 최고의 스승이었다. 책 속의 진짜 성인(聖人)은 바로 아이들이었다. 책 속에서 만난 성현들 역시 아이들이었다. 아이와 같은 순백의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맹자의 말씀이 이해가 됐다.
“대인이란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들은 왜 순백의 마음을 지니고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운 하트를 갖고 태어난다. 그런데 살아가며 하트에 변화가 온다. 아이들의 하트는 어떠할까? 온전하다. 온전한 하트는 세상을 하트의 눈으로 바라본다. 어른의 하트는 어떠할까? 하트에 상처가 나기도 하고, 모양이 변형되기도 한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요, 삶의 흔적일 뿐이다. 부드럽게 안아야 할 내 몸의 사랑들이다.

성현들의 하트가 아이들과 같은 이유는 울퉁불퉁 한 하트를 다듬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성현의 마음이 곧 아이들이니 아이를 이해하게 될 때 성현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성현의 마음이 이해가 될 때 비로소 나를 이해하게 된다. “인생은 짧고 배움은 끝이 없다”라는 장자의 말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공부요 배움의 연속이다.
철학적인 글이네요 ㅎㅎ 책을 멀리하고 산 저를 반성하게됩니다
janethu 님 감사합니다^^ 반성하긴요. 읽고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가 가장 적기 인것 같아요 2022년 새해 기쁨으로 가득하세요~ 늘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