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다산선생이 사랑한 작약 꽃
꽃을 피워내는 일은 결국 꽃이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소중한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어느 누가 나의 꽃을 대신 피울 수 있겠는가. 자신의 꽃은 오로지 자신만이 피울 수가 있다. 튤립이 장미꽃을 피워낼 수 없고, 개나리가 벚꽃을 피워낼 수 없다. 자신의 꿈을 어느 누가 닮아낼 수 있겠는가. 튤립은 장미향을 내지 못하고 개나리는 벚꽃 향을 내지 못한다. 꽃이 각자의 향기를 머금 듯 그대 꿈의 향기는 그대만의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같은 향기를 담아낼 수가 없다.
스스로 꽃을 피워낸 인물이 있으니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넘어선 스승과 제자 이야기
아름다움을 넘어선 스승과 제자가 있으니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자 황상이다.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 세계에 소개하고 싶을 만큼 감동적이다. 외국계 글로벌 기업에 북 토크로 진행하기도 했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옛사람의 메신저이자 고전 연구가인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가 쓴『삶을 바꾼 만남』이라는 책을 통해서 자세히 만날 수 있다.
다산 선생은 강진 유배시절 제자 황상을 만나게 된다.
“선생님! 제게는 3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공부할 수 있나요?
배우는 사람은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첫째는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넘어가는 데 있다.
둘째는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문제는 재주를 못 이겨 들뜨는 게 문제다.
셋째는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문제는 대충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
“ 공부는 꼭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
“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 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로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여름 장마철의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해야 하는 것은 어찌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 잡으면 된다. ”

스승은 제자를 위해 글로 써준다. 스승이 써준 ‘삼근계’의 가르침으로 황상은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한다. “ 추사는 두보의 시를 골수로 삼고, 한유를 근골로 삼아 튼실하고 웅숭깊은 시다. 그는 옛 것을 배워 자신만의 목소리를 빚어낸 시인이다 ” 추사의 동생인 서예가 김명희는 “스승을 배웠지만 스승과 조금도 같지 않고, 사가를 배웠으되 하나도 닮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제대로 배우고 훌륭히 익힌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조선 후기 서예의 대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시의 비결을 물었다. “스승께서 ‘두보와 한유, 소동파와 육유 네 분은 천고(千古)에 우뚝하다. 이 네 분을 버리고 시를 한다면 바른 법도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네 분의 시만 읽은 것이 50여 년입니다 ”
황상은 다산선생이 가장 강조한 초서 공부와 삼근의 가르침으로 메모하고 베껴 쓰고 정리한 것이 키를 넘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는 북학파의 한 사람인 박제가의 제자다. 추사 역시 엄청난 노력파였다. 추사가 쓴 편지에는 70년 동안 벼루 10개를 구멍 내고, 붓 1000자루를 닳게 했다고 하니 그 노력이 가히 놀랍다. ‘추사체’는 그렇게 나온 것이다. 60년이 흐른 뒤 황상은 <임술기>에 이렇게 적는다. 실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보석 같은 활자를 그대로 옮겨본다. 이 글을 볼 때마다 너무도 감동적이다. 이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책으로 새겨두려 하니 내용이 반복되더라도 이해 바란다. 나는 읽을 때마다 늘 새롭다. 호흡을 편안히 하고 스승 다산선생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더 음미해보자.
평생 새긴 스승의 가르침
스승은 15세인 내게 문사(文史) 를 공부하도록 권했다.
나는 주저하며 답했다.
“저는 둔하고, 막혀있고, 거칩니다. ”
스승은 말씀했다.
“공부하는 사람에겐 세 가지 병통이 있다.
첫째 외우기가 빠르면 소홀하고,
둘째 글짓기가 빠르면 가볍고,
셋째 이해가 빠르면 부실하다.
너는 그런 병통이 없구나.
둔한 것을 파고들면 넓어지고
막힌 것을 소통하게 하면 흐름이 원활하고
거친 것을 닦아내면 빛이 나게 된다.
파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 [勤]’이다.
소통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닦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함은 어떻게 하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
나는 75세인 지금까지 평생 그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황상, ‘임술기’ 가운데)
훌륭한 제자에게는 위대한 스승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시절 저술활동에 몰두하느라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날 정도였다고 하니 훌륭한 제자 뒤엔 위대한 스승이 있다. 다산은 부친으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책을 통해서 독학으로 공부한 인물이다. 한자가 생기고 난 후 가장 많은 책을 집필 한 인물이다. 그가 집필한 책이 무려 500여 권에 달한다. 조선 후기의 실학사상을 집대성했으며 무엇보다 백성을 사랑했던 인물이다. 사랑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산선생이 유독 좋아했던 꽃이 있다. 바로 국화와 작약이다.
<국영 시서>에 소개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 여러 가지 꽃 중에 국화는 특별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가 있다.
꽃을 늦게 피우는 것이 하나요,
오래 견디는 것이 하나며,
짙은 향기가 하나요,
곱지만 야하지 않고,
깨끗하나 쌀쌀맞지 않은 것이 하나다.”
꽃을 늦게 피우는 것 역시 으뜸으로 삼았으니, 자신의 꿈이 아직 이뤄지지 않았어도 기다려야 한다. 만물에도 사계절이 있듯 때가 되면 피지 않겠는가. 이에 반해 제자 황상은 치자 꽃을 사랑했다. 그래서 호 역시 치자 동산을 가리켜 치원(梔園)이다. 꽃을 사랑한 만큼이나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꽃 같다. 자신이 사랑했던 꽃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품고 있다. 꽃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자신만의 꽃을 피워냈다.
다산선생은 1801년 11월 마흔에 천주교의 박해 사건으로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 1818년 9월 일흔다섯의 나이에 자신의 고향 남양주의 ‘여유당’으로 돌아오게 된다. 다산초당에서는 18명의 제자가 있었고, 읍중 제자로는 황상을 포함해서 6명의 제자가 있었다. 제자 중에서도 황상을 가장 아꼈다. 황상 역시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본받아 스승의 꽃이 아닌 자신의 꽃을 피워냈다.
다산선생은 말한다.
“ 100세 이후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
그리고는 1836년 2월 22일 결혼 60주년 친척과 친구들이 모두 모인 잔칫날 아침에 세상을 뜨게 된다. 잔칫날에 가던 중 소식을 전해 들은 홍길주는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구나’라며 애통해한다.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됨이 없다니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놀랍다. 이토록 강인한 정신력이 어디서 나왔을까. 독서의 힘이 아닐까. 자신을 사랑한 힘이 아닐까.

다산 정약용 선생의 독서법
다산선생의 독서법 3가지는 정독, 질서, 초서다.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자료를 찾고 분석하며 읽었다. 질서는 메모를 뜻한다. 책을 읽다가 깨달은 부분이 나오면 메모를 했다. 초서는 학문에 보탬이 되는 것만 선별을 해서 그대로 따라 적었다. 즉 필사다.
자식 정학유와 나눈 편지의 일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수천 권의 책을 읽어도 그 뜻을 모르면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읽다가 모르는 문장이 나오면 관련된 다른 책을 찾아 반드시 뜻을 알고 넘어가라. 그 뜻을 알게 되면 반복하여 읽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게 하라.”
필사는 ‘따라 쓰기’를 말한다. 필사 노트를 마련해서 마음을 적시는 문장이 나오거든 그대로 따라 써보자. 나중에 그 노트를 열었을 때는 황금밭을 거니는 기분이 든다. 마치 이와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USB에 담아놓은 것과 같다. USB에 담긴 음악을 들으며 아름다운 풍광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나 역시 독서하며 한때 필사를 했었다. 필사 노트에 문장을 적고, 그 아래는 빈칸으로 여러 줄을 비워놓는다. 그곳에는 그 문장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었다. 독서의 양이 많아지면 생각도 많아진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자리를 잡아간다.
독서의 양이 많아지면 저자와 내가 마치 하나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주 잘 통하는 벗 말이다. 오랜 시간 독서가 되면 저자의 말인지 나의 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 생각을 적을 때 <I>라는 표시를 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다. 저자와 나를 구분 짓기 위해서다. <I>로 표시된 글은 나중에 글을 쓸 때 재료가 된다. 정독하며 읽기가 습관이 되면 책의 오타에서 잠시 멈춘다. 모음이나 자음 중 하나가 출장을 간 경우다. 읽다가 오타를 발견하면 늘 바르게 다시 적었다. 지금의 책들에서는 오타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얼마나 보고 또 보고를 검토했을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독서법에는 정답이 없다. 책을 읽다가 따라 하고 싶은 독서법이 발견되면 따라 해도 좋고 책 읽는 방법에서는 자유로움을 주었으면 한다. 책은 내 삶에 평생 벗이고 평생 함께할 동반자다. 법칙보다는 자유와 여유로움을 선물해보자. 평온함이 몰려올 것이다. 독서가의 길은 우리의 삶을 아름다운 단풍으로 채색하는 과정이다.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들 듯 여유로움 속에서 나를 발견하자. 피지 않은 꽃은 없다. 다만 그 꽃이 내가 원했던 꽃인지 아닌지 일 뿐이다.


부지런함은 어떠한 것이냐? 마음을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글귀가 너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재이님 항상 고맙습니다. 저 역시도 옛 사람의 발자취에서 귀한 깨달음을 얻어갑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