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에도 거울이 있다
사람에게는 눈동자라는 거울이 있듯, 만물에게도 거울이 있다. 바다는 하늘이라는 거울을 본다. 하늘은 만물이라는 거울을 본다. 사람은 어떠할까. 인간은 눈동자란 거울을 본다. 상대방의 눈동자에 내가 들어있다. 내가 웃어야 상대의 눈도 웃는다. 내가 찡그리면 상대의 눈도 찡그린다. 내가 곧 상대고, 상대가 곧 나 다.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은 바로 사람이라는 거울이다. 눈동자라는 상대방의 거울이 있기에 자신을 살필 수가 있다.

사람을 만나야 거울을 볼 수가 있다. 사람을 만나야 나의 얼룩이 눈에 보인다. 우리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따른다. 약속시간도 맞춰야 하며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적인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보완해주는 물건이 딱 하나가 있다. 바로 책이다. 책은 사람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혹은 한 사람을 깊게 만날 수도 있다. 책은 영혼과 영혼의 만남이기에 수세기 전의 인물과도 만날 수가 있다. 국적이 달라 언어를 모른다고 걱정할 이유가 없다. 언어를 바꿔주는 친절한 번역자가 있지 않은가. 책은 사람을 만나 거울을 보는 일이다. 자주 볼수록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가 있다. 바다가 하늘이라는 거울을 보듯 우리는 책이라는 거울로 나를 볼 수 있다.
독서, 그 깊은 바닷속으로
책의 바다에 가장 깊게 헤엄을 친 시기가 결혼하고부터다. 결혼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주말이 되면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새해가 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부가 바로 영어공부였다. 늘 한 듯한데 제자리였다. 책을 한참 보다가 영어공부 시간이 되면 공부가 분산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랫동안 달고 다닌 영어를 하루 공부에서 제외하고 독서로 하루 공부를 채워봤다. 영어가 사라지자 독서에 날개가 달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독서 공부가 시작됐다.

사실 공부라기보다는 옛 성현들과의 만남이 좋았다. 대화가 참 즐거웠다. 성현의 말씀은 늘 고요하다. 고요함 속에 그 깊음이 참 좋았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키케로,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 랄프 왈도 에머슨 , 공자, 맹자, 장자, 노자,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등 만나는 기쁨이 참 좋았다. 아침이 되면 도시락을 싸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6시가 지나면 나 역시 퇴근을 했다. 열람실에 앉아 성현의 책을 쌓아두고 읽다가 졸리면 책을 베개 삼아 잤다. 책을 읽다 바람이 생각 나, 밖을 나서면 큰 정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자에 누워 책을 보고, 벤치에 누워 책을 보고, 나무들과도 책을 봤다. 태양빛은 늘 온화한 친구였다. 태양을 벗 삼아 책을 보면 활자가 선명해진다. 눈동자가 시원해진다. 활자 속의 길을 터준다.
잠에서 깨고부터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화장실에서 조차 읽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다. 읽고 있던 책을 잠시 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다음 활자가 궁금해 책과 함께 갔다. 어느 날 화장실에서 책을 보는데 활자가 커지며 길을 안내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글자가 커질까? 눈을 비비고 다시 글자를 보자 돋보기가 눈을 따라 활자 속을 여는 듯했다. 그 경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화장실에서의 책 읽기 편한 글은 호흡이 긴 글보다는 짤막한 글이 좋다. 주제별로 반 페이지씩 구분되어 있는 책을 추천한다.
화장실에서의 독서이야기가 나오니 송나라의 구양수가 떠오른다. 한유의 문장을 사랑했던 당송팔대가 중에 한 사람 구양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다’(三多)로도 유명하다. 글 잘 쓰는 비결을 다독(多讀), 다작(多作) 그리고 다상량(多常量)이라고 말했던 인물. 이 보다 더 명쾌할 수가 있을까. 그는 공부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침상(枕上)으로 베개 위, 둘째는 마상(馬上)으로 말 위. 셋째는 측상(廁上)으로 화장실 위를 말했다. 잠자기 전, 이동하는 시간, 화장실에서의 시간조차도 공부하기에 좋은 장소라 여겼으니 구양수의 독서 공부가 대단하다. 결국 일과를 제외한 모든 자투리의 시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독서의 활동은 정해진 시간이 아니다. 내 몸 가까이 책을 두면 만나게 되어 있다. 마치 몸과 옷이 하나가 되듯 말이다.
옛 성현들은 독서가 꼭 책만이 아니라고 했다. 모든 만물이 책이라고 했다. 살아보니 이해가 간다. 우리는 만물 속에서 만물을 배운다. 우리의 삶 자체가 독서 활동인 셈이다. 내가 속한 조직,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 즉 보고, 듣기를 넘어 오감으로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독서의 활동이다. 독서는 만물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돕는다. 그리고는 우리를 마음 부자로 만든다. 독서의 중심에는 늘 마음을 두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와도 같다. 모든 일의 근본이 마음에 있으니, 마음을 즐겁게 돌봐야 한다. 마음을 돌보는 일이 독서요. 마음을 춤추게 하는 일이 독서다. 그러나 마음보다 더 큰 것이 있으니 육체의 건강이다. 육체는 마음을 감싸고 있는 근육과도 같다. 움직임으로 몸을 살피고, 독서로 마음을 살피자. 몸과 마음은 양쪽의 수레바퀴와 같으니 늘 함께 힘써야 한다. 만물이 거울을 보듯 내 마음 거울 역시 늘 살펴야 한다.

『2천 권을 읽으면 알게 되는 것들』
” 이 프로그램은 인생에서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훌륭한 교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일련의 기술을 제공할 것입니다! “
– 브라이언 트레이시 《백만 불짜리 습관》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