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성과주의가 강조되면서 연공서열형 HR에서 ‘역량 기반 HR’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역량 중심 HR, 과연 지금도 유효한 것인가?
일단 역량(力量, Competency)이란 말부터 살펴보자.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
말 자체가 너무 어렵다.
쉽게 말해 그냥 우리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 이걸 또 쪼갠다.
직급이나 직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을 공통 역량 혹은 핵심 역량이라고 하고,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리더십 역량, 각 직무 별로 필요한 것은 직무 역량이라고 한다.
(직무 역량을 또 직무’공통’과 직무’전문’으로 나누기도….)
이것을 다시 또 수준을 나누고 관찰할 수 있는 행동지표를 만든다.
이렇게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을 도출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을 역량모델링이라고 한다.
이 작업을 컨설팅에 의뢰하면 최소 3개월 이상이 소요되고, 평균 1억 내외의 비용을 청구하곤 했다…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2010년 이후 5~6년 간 역량모델링은 컨설팅사의 효자 상품이었다. 각 컨설팅사에서 보유한 역량 사전이란 자료가 매우 귀하게 다뤄지기도 했었다.
(*역량 사전의 샘플. 지도 및 육성 단계가 신뢰성의 만렙이다. 그런데 현실은 상황에 따라 가장 하위 레벨인 학습 단계의 행동이 더 난이도가 높기도 하다)
신뢰성에도 레벨이 있다니… 놀랍다.
신뢰를 핵심역량으로 선택한 기업은 실제로 저걸로 사람의 신뢰성을 측정하고 교육한다는 것인데, 말이 너무 어렵다 보니 이걸 또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을 한다.
역량모델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행동지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면 할수록 사용자인 리더와 구성원들이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그리고 역량모델 자체를 이해시키기 위한 교육을 시행하고, 컨설팅은 또 그만큼 더 돈을 번다.
하여튼, 이렇게 공들여서 어렵게 역량모델링 하고, 이를 기반으로 채용, 평가, 보상, 교육 등 모든 HR활동을 수행하는 것을 ‘역량 기반 HR’이라고 부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
지나온 시절에는 이것이 최선이었을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니 이 칼럼을 쓰고 있겠지…)
이제 불확실성의 세상이라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식의 반감기(Half-Life of Knowledge)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역량모델의 유효 기간 역시 짧아질 것이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역량모델링하는 데 3개월, 그걸 기반으로 제도 개편하는데 또 3개월, 파일럿하고 직원 설명회하는 시점에 이미 어렵게 도출한 역량들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역량은 과거를 기반으로 정립하기에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과거에 성과를 냈으니 그 걸 따라하면 미래에도 성과를 낼 거라는 전제가 무너지면 끝이다.
(‘애들 전부다 너랑 똑같이 행동하게 하면 우리 금메달 딸 수 있지? 다음 올림픽에 언니 없어도 잘 할 수 있쥐?? ‘)
과연 식빵언니 말이 맞을까?
실제로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지금의 핵심인재가 미래에도 계속 성공할 확률은 단 30%에 불과했다.
* reference : Swisher, Hallenbeck, Orr, Eichinger, Lombardo, & Capretta(2013). FYI For Learning Agility – A Must-Have Resource for High Potential Development. Lominger International: A Korn/Ferry company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당장 답을 낼 수는 없다. (그럴수 있다면 사기꾼이거나 천재다.)
좀 더 나은 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찾아가는 여정이 필요하다.
그에 대한 힌트로 필자가 추천하고 싶은 방향은 ‘문화’와 ‘역할’이다.
이제 핵심역량 혹은 인재상이란 말 대신 차라리 우리 조직이 추구하는 문화나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지금의 시대적 흐름에는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말로는 우리의 핵심역량/인재상이라고 하지만 사실 대부분 다른 회사 홈페이지에 그대로 붙여넣기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좋은 문구들의 향연이다.
무색무취한 액자 속 단어들이 무슨 ‘핵심’ 역량이란 말인가.
차라리 우리 부족(우리 조직)의 독특한 서사가 담긴 문화나 가정(assumtion), 일하는 방식이 훨씬 더 와닿는다.
리더십 역량은 필자가 지난 칼럼에도 언급했듯이, 동일한 조직이라도 각각의 포지션에 맞는 기대 역할이 존재한다.
(ex. 재무담당 임원과 생산담당 임원에게 요구되는 역할이 다르듯)
획일적인 리더십 역량의 잣대(프레임)를 들이대기보다는 리더의 Personality와 조직의 기대 역할이 조화를 이루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실무자들 역시 직무 역량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역할’ 중심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길 추천한다.
그 사람에게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이 무엇인지를 업무 단위로 알려주어야 한다.
역량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억지로 이해시켜봤자 목표 달성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칼럼을 정리해보면 ‘역량 기반 HR’은 가장 대표적인 공급자 중심 HR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불확실성의 시대, Boundaryless 경력개발의 시대에 우리 HR이 좀 더 사용자 중심으로 진화할 수 있길 소망한다.
지난 글 보기>
Dark side of HR 1탄 – 이제 신입사원 조직전력화는 버려라
Dark side of HR 2탄 – 심리적 안전감이 오히려 조직을 망칠 수도 있다
Dark side of HR 3탄 – 조직침묵(Organizational silence)
Dark side of HR 4탄 – 전임자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는 리더들
물론 이 경우에도 미래에 고성과를 낼 수 있는 역량을 예측해내야 하고 그걸 무엇에 따라 예측 할 것인지가 역시 문제인데
그러고 보면 결국 인사에서도 애자일하게 실험하고 결과보고 적용하는 plan do see 의 사이클을 빨리 돌려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써주신 글을 보고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아지네요
생각의 지경을 넓힐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사이 정신없는 일정으로 이 귀한 댓글을 이제서야 확인하였습니다 ^^
좋은 의견 나누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래 닝빵님의 댓글에서 남겼지만, 역량모델링의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제가 인살롱에서 이번에 작성하는 칼럼들은 그동안 우리 HR에서 너무나 당연시
여겨오던 것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 보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작성해주신 의견들에 200% 공감합니다 ^^
인간은 뛰어난 도구를 만들고, 빠르게 도구와 시스템에 종속된다는 말이 있죠.
역량모델링 역시 HR에 있어 하나의 도구일 뿐이고
그것을 상황에 맞게 잘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우리 조직에 맞게 개선해가나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원칙을 준수하는 것과 도구를 고집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핵심인재가 미래에도 핵심인재가 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저는 오히려 역량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요
즉 그 사람의 성과가 아닌 역량이 미래의 성과를 예측 하는 것이겠지요
다만, 이전처럼 조직에서 과거에 고성과를 냈던 사람들의 역량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미래에 고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역량들을 정의해서 그에 따라 역량모델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엄밀히 말하면 지식이나 성격도 역량에 포함될 수 있으며, 그게 아니라고 해도
역량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과 연결될 수 없다면
그건 역량모델링을 잘못 설계 하거나 잘못 실행하는 거 아닐까요?
즉 역량 기반의 인사가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역량을 잘 활용하지 못한 잘못이 더 큰 것이고 VOCA 시대에는 learning agility 와 같은 역량이야 말로 가장 성과를 잘 예측 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6년 전 Learning Agility로 논문을 쓰면서 그 당시 아직은 국내에 생소한 개념이라 수많은 챌린지를 받았던 모진 순간이 떠오르며, 그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분을 만나니 이제서야 보상받는 기분이 듭니다 ^^
Learning Agility는 특정 조직의 핵심 역량이라기보다는 ‘불확실성’과 ‘경쟁’이 존재하는 ‘모든 집단’에 있어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한 필수 역량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Learning Agility가 타고나는 부분도 일정 있지만, 후천적으로 충분히 개발이 가능하는 점이죠.
역할을 기반으로 AC를 디자인 해본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역할에서 기대되는 행동을 측정하는데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되는 기저에는 결국 개인의 특성 즉 역량의 영향력을 무시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실제로 예전에 역량을 기반으로 하는 AC & DC 가 역할을 기반으로 하는 AC & DC 로 디자인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Jackson, D., Lance, C. E., & Hoffman, B. (Eds.). (2013). The psychology of assessment centers. Routledge.).
역량모델링이라는 구시대적 인사관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는데 이번 글을 보니 제 생각도 정리가 됐고 그에 대한 개선방안에 대해서도 힌트를 얻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이번 인살롱 부캐의 컨셉을 좀 비판적으로 잡아서 어두운 면만 조명하고 있는데, 역량모델링의 장점도 분명 있습니다;; 편향된 글에서도 인사이트를 얻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
리더의 personality와 조직 기대의 조화! 리더십 진단과 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