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요즘 주변 동료들의 이직과 해외 파견, 팀 내 담당업무 조정 같은 일들이 겹치면서 업무적인 불안정기를 겪는 중입니다. 다행히 야근이 많아지거나 할 정도는 아닌데 이런 분주한 상태가 주는 피로감이 생각보다 적지 않네요.

그러던 중에, 최근 옆 팀 A팀장님이 몇 가지 업무적인 부탁을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별생각 없이 가볍게 도와드렸을 텐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일까요. 다른 팀 리더의 업무 요청으로 제가 하던 일이 자꾸만 중단되는 상황이 그날따라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팀 동료에게 푸념을 늘어놓았어요.

“요즘 A팀장님이 이거 한 번 보자, 저거 한 번 보자 하셔서 정신이 없네요.”

고생이 많다며 맞장구 쳐주는 동료의 얘기를 듣다 무심코 뒤를 돌아봤는데, 아뿔싸… 그 팀의 팀원들이 바로 등을 지고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화가 충분히 들릴 정도로 가까웠어요.

‘들었으려나…?’

찝찝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딱히 누구 욕을 한 건 아니지만 누군가는 분명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식사 시간에 제 바로 뒤에 앉아있던 책임님이 업무자료 협조를 부탁하시는데 멘트가 평소보다 조심스러운 느낌입니다.

“광현아,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밥 먹을 때 하던 얘기가 다 들렸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곧이어 A팀장님도 한 가지 일을 더 부탁하셨는데, 네 일도 바쁜데 자꾸 부탁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 ‘광현이가 불만이 있더라’ 하는 얘기가 벌써 오고 간 모양입니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을 애써 숨기고 두 분께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해 도움을 드렸습니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제 스스로에게 참 실망스러웠던 날이었습니다. 나름 기업문화에 관심이 있다며 글을 쓰고, 더 좋은 문화에 걸맞는 사람이 되겠다며 소속 부서의 조직문화 담당자도 자처한 저였는데요. 누군가는 뒷담화로 느낄 수 있을 법한 그런 얘기로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는 사실이 속상했습니다. 업무적인 불만이 있더라도 좀 더 건강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는데, 그동안 마음속에 조금씩 쌓여 온 피로감이 어느새 더 나은 문화를 만들고 싶다던 제 진심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 얘기를 들었겠지, 라는 짐작만을 가지고 나서서 사과하진 못했습니다. 내 마음 좀 편하겠다고 쉬운 사과로 제 잘못을 바로잡는 것보다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료들에게 성숙한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앞으로 더 노력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좀 뜬금없지만…

저는 ‘쇼미더머니’라는 TV 프로그램을 매년 즐겨봅니다. 랩이라는 장르가 주는 청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매 시즌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 시즌 우승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어느 래퍼가 방송에서 선보인 랩의 한 구절인데요. (인살롱에 랩 가사를 쓰게 될 줄이야…!)

 

왜냐하면 내 가사는 순전히 백 퍼센트
내가 사는 삶 속에서 나와 늘
그러니까 라임(rhyme)과 삶의 질은
같이 함께 올라가는 구조인 걸 알아둬 

 

래퍼 던말릭 (출처 = 엠넷 쇼미더머니11)

제가 조직문화와 관련된 인사이트를 나누면서 가장 경계하는 건, 저의 글이 제 경험과 동떨어진 채 그저 어디서 본 좋은 말들을 버무려 놓은 관념적이고 진정성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래퍼가 랩의 수준과 삶의 질은 함께 상승한다고 얘기했던 것처럼, 더 좋은 문화에 대한 저의 진심과 나누고자 하는 영향력 역시 제 직장생활의 질, 동료에 대한 태도와 ‘같이 함께 올라가는 구조’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문득 일선에서 조직문화 개선에 전념하고 계신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사와 조직에 대한 불만이 있기 마련일 텐데, 조직문화 담당자라는 타이틀 때문에 어디 가서 회사에 대한 작은 푸념 한 번 쉽게 하기 어려우시리라 짐작해 봅니다.

조심스럽게 응원합니다. 혹여 오늘이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낀 하루였다 하더라도, 잠시 앉아 쉬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털고 일어나 다시 뚜벅뚜벅 나아가실 수 있기를요. 지나가는 평범한 회사원이 건넬 수 있는 건 비록 말 뿐이지만, 직장인으로서 겪는 현실과 맡은 직무에 대한 사명감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고 또 고생하고 계실 조직문화 담당자분들께 제 응원이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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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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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주
필진
홍민주
15 일 전

광현님, 안녕하세요!<나에게 실망한 날>이란 제목이 와닿아서 들어왔습니다.조직문화를 만든다면서, 구성원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품지 못하는 나에게 실망감도 들고, 어려웠던 경험이 떠올라서 공감되어요. 응원합니다!

홍민주님이 15 일 전 에 수정한 댓글
tsi00021
멤버
tsi00021
2 개월 전

항상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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