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어, 음, 제 말씀은…’
‘다시 말씀드리면…’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면접관이 되어 면접에 나서 보면 다양한 지원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지원자들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면접은 떨리고, 부담되는 자리인 만큼 위와 같은 다양한 ‘습관어’들을 사용하게 된다. 여기서 습관어란, ‘음’, ‘어’, ‘그러니까’, ‘제 말씀은’, ‘예컨대’, ‘다시 말해’ 등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발화 곳곳에서 무심코 사용되는 군더더기 같은 말들을 가리킨다.
습관어는 특히 지원자들의 예상 범위에서 벗어난 질문이 주어질 경우, 더 자주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자기소개, 성격의 장단점, 직무 경험, 포부, 가치관 등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비할 법한 전형적인 질문의 경우에는 미리 답을 만들어서 외워 올 확률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습관어가 포함될 여지가 적다. 하지만 돌발성 질문이나 탐침 질문, 계속 해서 파고드는 꼬리 질문의 경우, 지원자가 예상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습관어의 출현 빈도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면접관은 습관어를 어떻게 평가할까? 짐작하겠지만 대부분의 면접관들은 습관어를 자주 사용하는 지원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답변마다 ‘음…’, ‘어…’ 등으로 시작하고, 휴지기(pause)가 길게 느껴지는 지원자에게는 ‘답답하다’, ‘위축되어 있다’, ‘자신감이 부족하다’, ‘어눌하다’, ‘서툴다’ 등의 부정적인 인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실제로도 그런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언어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습관어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내놨다. 먼저 심리학자들은 습관어의 필요성에 주목했다. 습관어가, 우리가 생각하듯 부정적인 인상 형성에만 영항을 미치는 전적으로 ‘나쁜 습관’이라면 우리는 습관어를 최대한 억제하려 노력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나마 면접 장면이라면 모를까, 평상시 지인과 대화할 때 습관어를 일부러 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재미있는 점은, 유창한 대화보다는 습관어가 불리하지만, 상대적으로 침묵보다는 습관어가 낫다는 사실이다. 관련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유창함 > 습관어를 섞은 발화 > 침묵이 많은 발화 순으로 발화자의 인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습관어는 침묵을 방지하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면접 지원자 입장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습관어라도 활용하며 침묵을 막고, 빠르게 해야 할 말을 만드는 쪽이 더 유리하다는 의미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습관어가 사람의 성격을 반영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습관어는 단순히 인상 평가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습관어를 언제, 어떻게 사용하느냐, 또한 어떤 종류의 습관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발화자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1) ‘음’, ‘아’, ‘어’, ‘에’
2) ‘그러니까’, ‘제 말씀은’, ‘제 말의 의미는’, ‘정리하면’
심리학자 펜네베이커Pennabaker와 동료들은 요인분석Factor analysis라고 하는, 심리학에서 자주 활용되는 신뢰로운 통계 분석 기법을 활용하여, 습관어를 두 종류로 분류해냈다. 먼저 채움말Filled pause은 ‘음’, ‘아’, ‘어’ 등의 표현으로, 발화의 운을 떼거나, 발화와 발화 사이 공백에 위치하며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을 하는 습관어다. 둘째, 담화 표지discourse marker는 ‘그러니까’, ‘제 말씀은’, ‘제 의도는’, ‘정리하면’, ‘다시 설명하면’, ‘아시는 바와 같이’ 등과 같이 주로 발화를 정리하거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데 활용하는 습관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담화 표지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채움말과 달리, 담화 표지의 경우, 발화자의 성실성conscientiousness 성격 점수와 유의미한 정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하면, 성실성 성격이 높은 사람들은 습관어의 한 갈래인 담화 표지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면접관의 입장에서는 지원자의 성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담화 표지의 사용 경향성을 고려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습관어는 단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언어가 성격을 반영한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다. 국내의 한 연구에서는 목소리만을 통해 외향성을 판단하게 했음에도, 정답률이 상당히 높았다는 결과를 보고하기도 했다. ‘침묵’의 기능에 주목했던 다른 연구에서는 ‘단순 침묵’과 ‘전략적 침묵’을 구분, 발화 중간 중간에 일부러 발화를 멈췄다가, (주변 분위기를 환기하고), 다시 힘 주어 다음 발화를 강조하는 식으로 ‘전략적 침묵’을 구사할 경우, 단지 끊김 없이 지속적으로 발화했던 조건에 비해 더욱 후한 인상 평가를 받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때로는 ‘군더더기’에 힌트가 있다.
성격 5요인 가운데, 업무 수행 능력을 가장 신뢰롭게 예측하는 인자factor는 단연코 성실성conscientious이다. 다수의 연구를 통해, 개인의 성실성 점수와 업무 능력 간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이 입증되어 왔다. 그렇다면 지원자의 성실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안타깝게도 직접 일이라도 시켜보지 않는 이상 짧은 면접 장면에서는 성실성을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적 연구 결과의 힘을 빌려, 성실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인된 성격검사를 통해 성실성 점수를 측정하는 것은 권장할 만한 방법이다. 하지만 성격검사는 대개 자기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지원자의 의도적 과장 반응을 잡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면접이라는 절차를 통해, 성격검사만으로는 미처 알 수 없는, 지원자의 진짜 성격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습관어에 한번 주목해보자. 성격검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지원자의 진짜 성실성이 슬쩍 드러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