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꿈을 꾸다. 2nd ( 현대그룹에 들어오다 )

1996년 여름은 많이 더웠고 나의 4학년은 오로지 사회 진출에 모든 것을 걸었던 시절이었다.

1학기에는 우선 그 시절의 LG전자와 한화정보통신에 합격을 했고, 2학기에는 한국전력공채사험과 현대그룹공채에 응시했다.

나의 대학시절은 무언가 한방향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좌충우돌하며 살아온 시절이었다.

모순으로 가득찬 왜곡된 역사에 분노하고 나라도 불의에 항거하면 좋은 세상이 온다고 믿고 열심히 살았다.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1996년 8월에는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면서 통일대축전에 후배들 음료수라도 사 줄려고

연세대에 친구들과 놀러 갔다가 경찰들이 연세대를 빙 둘러가며 막는 덕에 지레 겁먹고 나오지도 못하고

참 아픈 기억이 있었던 많이 지난 청춘의 시절이었다.

2학기가 되어서 현대그룹공채에 응시했는데, 면접을 3단계로 보는데, 2단계 실무자 그 시절 모회사 과장님이셨는데,

그해 여름 연세대사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속으로 감동을 했었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면접 때 물어본 유일한 회사였고 난 그 현대가 좋았다. 그냥.

( 아직도 나의 화두인 것, 나는 왜 나스스로 보다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가 ? )

그래서 난 현대그룹 현대정보기술에 97년도 1월 27일 입사하는 영광을 얻었고 나의 직장에서의 꿈은 여기서 시작된다.

’25년이 지난 지금 2022년에 생각해 보면,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말씀이 맞구나란 생각과 항상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길에서 마치 한발, 두발 걸어가는 산행과 같이 걸러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내가 선택한 그 기간 동안 후회는 없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주변과 내 상황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 세상의 그 무엇도 배움과 수련의 대상이 아닌 것이 없음을…. )

내가 선택한 순간 순간의 결정이 항상 옳고 성공한 것은 아니었고 대학 시절에 배운 몇 가지 말 중에서 “잘못의 원인은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라는 말을 항상 생각하며 살았던 거 같습니다.

또한 스스로 참 버거운 시절에는 지나서 보면 제 옆에서 머리박고 묵묵히 살아가라고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었네요. 지금도 만나면서 항상 감사히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다시 사회 초년생으로 돌아 가보면, 그래도 외환위기전에 입사를 했던 점, IT회사 본사조직( 인터넷사업부 ) 에 지원했지만 6개월 동안의 그룹교육과 사별교육의 긴 합숙기간 동안 외환위기로 본사에서 뽑으려던 신입사원을 그룹사 전산실로 돌렸던 점 등 참 운이 좋았네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매순간 큰 벽이었고 좌절이었지요.

앞으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는 순간에 전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던 거 같아요.

현대정보기술 본사 조직에서 그룹사 전산실로 발령내려고 그 시절 인사담당 임원과 면담 중에 전 다시 회사사정이 좋아지면 본사로 가는 티켓을 한장 주세요. 라고 이야기하는 등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지요. 조직에서 자신의 앞날을 아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어떤 임원도 자신의 미래를 모른다는 기막힌 사실을 모르던 신입이 인사담당 임원에게 보증서를 달라고 했으니, 참 재미난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다가 이런 일련의 일들에 이 큰 대기업에서 이런 실망스러운 일들을 신입사원 대상으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회사게시판 익명게시판에 “신입사원 인사배치에 문제가 있다”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지요. 제가 배치 받은 인터넷사업부는 화상회의 카메라를 영업하는 부서였던 거예요. 헐 이름이 신비로사업부 밑에 인터넷사업팀인데, 그 누가 캠을 파는 부서라고 생각하겠어요. 영업부서인지도 모르고 지원했고 이렇게 본사부서에서 전산실로 발령을 내는 등 지금 생각하면 외환위기의 전초전이었던 거지요.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아서 본사부서에서는 무급휴가 6개월 이상 발령이 나고, 전산실에서는 600프로 상여금 반납 동의를 하는 등 이 큰 그룹에서도 내부조직에서는 나라의 위기에서도 살아남으려는 행위를 먼저 진행하고 있었던 가지요. 그렇게 배치 받은 현대자동차써비스 전산실은 용산에 위치했고 제가 잠시라도 가 본 계동동 현대그룹본사와 비교해보면 주변도 시골냄새가 나는 동네였지요. 이 글을 쓰면서도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지나온 세월에는 좋은 기억만 있나 봅니다. 그렇게 출근한 회사는 한강 바로 옆에 있었고 지하철은 없지만, 제가 자취하던 흑석동과는 가까운 위치였지요. 그렇게 배치 받은  전산실에서도 부서 OJT( on the job training )이라는 부서에서 신입사원 받으면서 이런 저런 교육을 해주는 기간이었지요.

사실 제가 전산실이 그렇게 싫었던 이유는 개발언어가 코볼이라고 들었던 것이 이유 전체였지요.

그래도 학교에서 C++, JAVA등 객체지향 언어를 배우고 졸업했는데 하는 생각과 제 주변에는 선후배중에 프로그래밍에 천재들이 많아서 제가 세상에 첫발을 딛는 순간, 다른 경쟁력있는 부분에서 다시 하고 싶었던 거지요.

이런 생각으로 교육을 받는데, 부서 소개를 마치고 희망 부서가 어디냐고 물어보시는데, 같이 간 입사 동기는 프로그래밍도 잘하던 지방대 친구인데, 하필 같은 부서 통신팀을 같이 지원하게 된거지요. 전 대학시절에 통신, 네트웍이라는 부분이 생소했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분야로는 괜찮겠다. 하던 때인데, 헐 전산실 기획부서장께서 오시더니, 통신팀에는 한명만 갈수 있다고 하셔서 우리 둘이서는 점심을 먹고 한강까지 연결되는 구름다리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결과에는 바로 인정하며, 서로 입사동기로서 잘 지내자며 서로를 위로 했지요.

근데 그 주 금요일에 우리가 지원한 통신팀에서 제가 아니고 동기를 데리고 워크삽을 간다는 거예요. 결국 통신팀에는 내가 아닌 입사동기가 가게 되는 거였지요.

그 주말에는 친한 친구와 정말 많은 술을 먹었던 거 같아요.

괜히 현대그룹을 왔구나. LG전자에서는 여름 장학금도 줬는데, 한화정보통신에서 면접볼때 분위기가 좋았는데, 하며, 세상이 끝난 것처럼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요.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통신팀 부서장하시던 분과 내 동기가 고향이 동향이라 그랬다나 뭐라나 …. 교육내내 우리 입사동기 사이는 냉랭했지요.

결과에 승복한다고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육도중에 결과발표전에 워크샾을 데리고 가 버릴줄은 상상도 못했지요.

하지만, 교육이 끝날 때쯤 기획팀장님께서 우리부서에서 요즘 그룹웨어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기획팀은 어떠냐고 물으셔서 전 굳은 결심을 하며 싫다고 했어요.

아직 결과가 안났고 끝까지 내 결정을 굽히기 싫었지요. 만약에 그때 기획팀으로 갔다면 우리그룹에서 난 무얼하고 있을까? 그 시절에 기획팀에 있던 선배들은 현재도 그룹에서 같이 근무한답니다.

결론적으로 나와 내 동기는 같이 통신팀으로 배치되었지요. 6개월 전에 들어온 동기까지하면 한해에 3명의 신입을 받은 거지요. 덕분에 재미난 일도 많았지만, 지금도 같이 다니고 있답니다.

이렇게 시작한 회사 생활, 그 건물은 10층 건물이었고 10층에는 회장님 사무실과 직원 식당이 있었는데,

직원 식당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정규직이시고 동그란 철판에 원하는 음식을 가져가는 방식인데, 매주 한번 고기가 나온다. 갈비찜, 닭다리 튀김, 돼지불고기 등 6개월지나니, 7키로가 쪘다. 그룹사 직원식당중에서 원효로사옥 밥이 제일 맛났다고 한다.

나의 직장생활의 시작은 평범하지만, 맘대로 할 수 없는 세상으로의 출발이면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나의 하루 중에서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제일 오랫동안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는 아름다운 사람도 추한 사람도 비겁한 사람도 한없이 따뜻한 사람도 있었다. 난 그 속에 던져 졌고 하루하루 배우며 아파하며 좌절하며 또 노력하며 꿈꾸며 살고 있다. 우리 선배들도 그 속에서 살면서 꿈꾸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묵묵히 살았고 살고 있고 또 살 것이다. 나는 평범하면서 특별한 직장 속에서의 흔적을 하나하나 꺼내보고자 한다. 부족하지만 그 경험과 인류의 유산인 고전속 이야기도 같이 보태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렇게 시작한 첫직장, 첫부서에서의 회사생활에선 무슨일들이 일어나고 무슨 꿈을 꾸게 될까? 하나하나 보따리를 풀어보자.

난 대학교에서 운동권이었다.

1학년때 읽은 한국 현대사 책 속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분노를 느꼈다.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겁 많은 나는 항상 한 발 뒤로 물러났고 실천을 항상 고민하는 겁 많은 하지만 좀 우쭐되는 소심한 청년이었다.

지금도 절친인 그 시절 우리과 사회부장 친구의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해 얼떨결에 내가 사회부장이 되었고 그 자리는 많은 실천을 해야 하는 자리였다.

1991년 한해는 명지대 강경대 학생이 쇠파이프에 맞아서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매주 서너번의 집회와 도심에서의 데모가 있고 강의실은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서서히 운동권이 되어가고 있었고 20살 청춘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그 시절 가족처럼 지낸 공과대학 각과 사회부장이었던 9명과 공대사회부장이었던 선배와 우리가 노력하면 꼭 세상을 바꿀수 있다고 믿었다. 그 공대 동기들은 각자의 공간애서 다들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다. 몇명은 대기업에서 몇명은 중소기업에서 몇명은 외국에서 일년에 몇번보면서 지낸다. 그때는 가족들에게도 숨기고 참 열심히 살았다. 그 시절 나이트가고 공부하던 과동기는 지금도 술한잔하면 나에게 “야! 넌 학교다닐땐 매일 재벌타도 와치던 놈이 이젠 대기업에서 왜 그렇게 사명감이 높냐? “ 이러며 놀린다. 그때마다 그 오랜세월동안 나 스스로 직장속에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지 이야기 할수는 없었다. 꼭 설명해야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과동기들은 그랬다. 내가 회사가더니, 학교에서 안한공부는 다한다고 우스개소리도 하곤 했다. 그런데 사실이다. 통신팀에 배치받아보니, 그시절 나의 사수 선배로부터 랜케이블 설치부터 기계실 청소까지 시키는 일이란 일은 다하면서도 그시절 시스코 네트웍장비 로그인 한번 못하면서 네트웍에 대한 공부를 매일매이루하려고 출력한것만 1톤트럭은 나올것이다. 그시절에는 보안이 그렇게 강조되지않아서

출력종이나 도트프린터 큰종이를 절단기로 짤라서 재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궁금한건 많고 사수는 어렵고 그래서 과동기나 동문 게시판에 그렇게 질문이 많았나보다. 인터넷도 초창기라 정보도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팀장님께서 출력을 시키시면 그시절에는 10부를 해야하면 10장씩 출력해서 다시 순서를 맞추어야하던 시절인데, 난 꼭 11부를 했다. 내가 출력해주는 노동의 댓가라고 생각했다. 그 문서에는 팀장급이 볼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서 난 출력을 시키면 그다지 싫지 않았다. 보고서 만드는 법이나,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나 기타 실질적인 정보를 알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회사에서의 업무는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윗분들이 지사하는 것이기에 무엇을 해 볼수 있는 기회가 너무 적었다. 통신팀에 배치되어서 몇 달 먼저 입사한 동기는 벌써 네트웍 장비에 들어가서 선배 사수가 시킨 네트웍 구성을 하는데, 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한 거 같다. 언젠가 다가올 네트웍장비와의 만남을 설레면서

그러면서 첫만남이 1년이 넘게 지나서 이루어 진다.

그것도 현대자동차써비스 지점망을 담당하는 메인 장비를 계동사옥 데이터세너에서 에서 원효로사옥으로 옮기는 업무가 맡겨줬다. 얼마나 설레던지, 그때는 오더를 받으면, 운영 유지보수하는 네트웍 전문가 ( 실제로는 나와 회사 입사동기인데, 부서 배치룰 네트웍장비를 많이 다루고, 고객사 현대계열사 전산실에 파견나와서 네트웍장비만 다루는 분 ) 에게 다시 오더를 줘서 실제 작업은 그분께서 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정중히 부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네트웍 장비 모둘 설치와 제거, 그리고 내부적인 네트웍 셋팅 까지 내가 직접할 테니, 옆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도와줄수 있니?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수락을 했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만남은 철저한 준비에서 시작된다.

장비 모둘이 재고가 없는 모둘이므로 있던 곳에서 제거하고 다시 이동히 설치해야 하는 작업이고 지금은 많이 사용하고 있지 않은 프레임릴레이방식으로 데이터 회선개통도 확인하고 모둘 장착후, 회선을 모뎀과 연결하고 그 하나의 회선을 현대자동차써비스 전체 지방사옥과 다시 소프트하게 나누어서 연결해야 하는 작업과 신규로 추가하는 작업이었다. 나는 모든 장비 모양을 사전에 출력하고 그 모둘에 구성된 모든 셋팅을 출력하여 모든 과정을 문서로 스케줄링하고 작성해 간다. 칼라프린터가 비싸지만 램프 색깔도 구별하기 위해서 선배 몰래 칼라로 준비했다. 준비한 후 나는 몇번이고 머리속으로 시나리오대로 시물레이션을 해보고 변수가 없다는 확신에 차서 D데이 저녁을 기다렸다.

계동에서 장비 모둘을 뽑기 전에 네트웍 구성을 복사해 두고 하나하나 진행된다. 원효로사옥에 도착해서 새로운 장비에 모듈을 설치하려고 하니, 허걱 기존 장비보다 모둘이 작은 장비인거다. 이러면 사전에 준비한 새로운 구성파일을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 당황해 하는 나에게 운영전문가가 문든다. 놀래서 이야기 하니, 준비가 아주 좋다고 동기지만 전문가 인 그분이 칭찬을 한다. 새로운 구성파일을 새로운 모듈번호로 수정하고 새로운 장비를 구성해 가면서 지역본부, 사업소의 회선도 살아가고 네트웍상태가 정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전체 시나리오대로 시간과 절차대로 완벽하게(나의 기준으로 )성공했다. 그 때의 짜릿함은 그후 몇번을 더 겪었지만, 처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다 끝내고 전화로 선배사수님께 “ 잘 처리했습니다. “ 라고 보고할 때의 느낌과 뿌듯함 때문에 모두 직장 생활을 하는가 보다.

– 대학교 4학년때 내 좁은 자치방에서 ㅎㅎ

– 대학교 1학년때 ” 얼굴찌뿌리지말아요” 작사작곡한 내동기와 함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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