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적응과 정체성은 고민할 가치가 있는 주제인가?
11년 정도 HR 관련 일을 하며 3번의 이직을 경험했습니다. 3번 모두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느끼는 불편함, 퇴사하겠다는 결심, 새로운 직장을 찾는 과정, 지원과 면접, 퇴사 통보와 이별까지, 절대 매끄럽다는 생각은 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직장에서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항상 불편감을 느꼈습니다. 일도 관계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불편감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불편감을 이기지 못하고 1년 만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도 전에 퇴사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그 때의 불편감은 머리 속에서 떨쳐낼 수 없는 주제였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1년을 돌아보며 불편감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금의 회사는 과거 쓰고 있던 페르소나 가면보다 더 두꺼운 페르소나 가면을 원하는 것이구나.’
사람들은 누구나 몇 가지 종류의 페르소나 가면을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가면을 바꾸어가며 적응합니다. 페르소나 가면은 새로운 상황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익숙해져서 나의 모습을 용기 있게 조금씩 드러낼 때, 가면의 두께는 얇아지는 것 같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빈도와 정도가 늘어날수록, 조직에서 새로운 사람을 익숙하다고 느낀다면 더 이상 가면은 필요없게 된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죠. 어쩌면 평생 페르소나 가면을 벗지 못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자 칼 융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인격을 가장하는’ 가면을 뜻합니다. 융은 그 당시 페르소나가 진실하다고 믿는다는 주장에 아래와 같이 반박했습니다(Jung, 1970: Peterson, 1999에서 재인용).
페르소나를 분석해서 가면을 벗겨 보면 개인적 요소라고 생각되던 것이 실제로는 집단적 요소임을 알게 된다. 그러니깐 페르소나는 집단 정신의 가면일 뿐이다. 근본적으로 페르소나는 허구이다. 각자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지 개인과 사회가 타협한 결과이다. 우리는 이름을 택하고, 직함을 얻고, 역할을 수행하며, 어떠한 사람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진짜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이고 개별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부차적인 현실이자 타협안일 뿐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 과정에는 그 자신보다 타인이 더 많이 관여한다. 별칭하자면, 페르소나는 겉모습이고 2차원적인 현실이다.
직장 생활의 시작 지점에서 배우는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 신입사원의 자세, 타고난 역량을 가진 사람의 모습들은 페르소나를 만드는 귀중한 재료입니다. 그렇지만 페르소나에 불편함을 느끼는 지금 생각해보면 양가적인 느낌이 듭니다. 바람직하다는 건 좋은 것으로 규정된 것이지만, 내가 정의한 모습은 아닙니다. 단지 개인이 살고 있는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서 화장을 덧칠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를, 나의 정체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페르소나 가면 두께를 요구할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뉴커머에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산업과 세대가 맞물려 큰 변화를 요구하는 지금이, 과거의 균형이 깨어지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직은 뉴커머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적응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나의 정체성이 존중 받기를 원합니다. 조직에서 요구하는 정체성과 나의 정체성이 새로운 저울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탐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적응과 정체성이 가치 있는 주제라는 생각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적응과 정체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과거의 연구 내용을 정리하고, 약간의 해석을 더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풍요로운 고민이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고민을 더해주십시오.
출처
Peterson, J. B. (1999). Maps of meaning: The architecture of belief. 김진주 역(2021), 의미의 지도: 인생의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의 의미를 찾아서. 서울:앵글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