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지방대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feat. 4년차 생존 中)

안녕하세요

행복모아 인사담당자 이영호 TL입니다.

 

우선 이렇게 좋은 기회로 집필을 하게 된 점에 대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평소 기안을 올리기 위해 쓰는 문서 작성 말고는 글을 자주 써보지 않았기에 시작부터 걱정입니다. 다음달 글 작성에 앞서서 이번달은 조금 가볍게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본 글은 일종의 스낵컬처로 전문성이 전혀없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이며, 다소 두서가 없는 글이더라도 ‘이런 글도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제는 ‘대기업에서 지방대 인사담당자로 살아남기’ 로 정해보았습니다. 기업의 제도와 문화를 책임지고 이끄는 인사팀 같은 경우는 대개 고스펙인 경우가 상당히 많고 특히 학벌의 벽이 높다고 생각하나, 저스펙(?)으로 생존해나가는 모습을 재밌게 표현해 보고, 성장해나가야 하는 방향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이렇게 정하였습니다. 특히 현재 제가 몸담고 있는 기업이 대기업 같지는 않아 보이나 법적으로는 대기업으로 분류되기에 조금 더 자극적으로 클릭을 유도하고자 ‘대기업’이라는 워딩도 추가하였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의 글이 나름 조회수를 잘 뽑아내지 않을까’ 하는 술수로 지었습니다.

 


 

2022년부터 30대로 접어든 저는 서울과 다소 거리가 먼 남쪽 지역의 지방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학창 시절 꽤 괜찮은 성적을 받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수능 성적도 평균 2등급 초반으로 괜찮았으나 입시라는 눈치싸움에서 소름 끼치게 실패를 하였습니다. 당연하게 지원했던 가군, 나군에서는 경쟁률이 터져버렸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다군에서는 아주 수월하게 합격(?)을 하였습니다.

 

입시에서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였기에 당시에는 정말 억울해서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재수는 하기 싫고, 어린 마음에 ‘지방대면 뭐 어때?, 나만 잘하면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그냥 진학을 해버렸습니다. 지방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끼칠지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단순한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그때 그냥 재수를 선택했다면…)

 

뭐 이왕 선택한 거 제대로 한번 해서 지방대도 잘 먹고 잘 살아보자 는 마음으로 정말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심리학 전공이랑 복수 전공으로 배운 경영학도 나름 잘 맞았던 덕분에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고, (현재 머릿속에 남아있는 건 없는 것 같지만) 8학기 전체 평균 4.5만점에 4.5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군대도 나름 뽕을 뽑자(?) 라는 생각으로 ROTC에 지원하였고 운이 좋게 합격하여, 학부 졸업 후에 2년 간의 장교생활로 잊지 못할 사람들과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을 얻었습니다. 군생활과 동시에 조금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로 수도권 소재의 경영대학원에 진학하여 인사조직 전공으로 MBA과정을 졸업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간 돈도 돈이지만 군생활과 동시에 학업을 병행한다는 게 여간 힘든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결국 졸업은 했으니 다행이기는 합니다.

 

군대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을 덧붙이자면 생각보다 군생활이 잘 맞았고 재밌었기에 ‘장기복무’를 지원할까 라는 고민도 하였었습니다. 월급도 생각보다 잘나오고, 옷도 전투복만 계속 입으면 되고, 생각보다 이런저런 베네핏(?)이 좋아서 현실적으로 정말 많이 끌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군인의 삶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달랐기에 전역을 결심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청춘들의 삶처럼 저 또한 전역을 앞두고 취직에 대한 고민이 많았으나, 막연하게 그래도 전공을 살려서 취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심리학과 경영학을 복수전공하고 석사까지 인사조직을 공부하다보니 ‘그럼 인사업무를 하자!’ 라는 결론에 생각보다 쉽게 도달하였습니다. 학부시절에 1년정도 학회장을 했었는데, 그 때의 조직경험도 나름 재밌었기에 ‘인사업무가 잘 맞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도 하였습니다.

 

다만 인사업무라는 것이 직무 특성상 뛰어난 전문성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직무였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성도 살리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라이센스도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마침 정말 친한 친구가 노무사에 생동차로 합격을 하였고, 그 친구를 통해 노무사라는 것을 알게되어 전역과 동시에 신림에 자취방을 구하고 법학원을 다니며 노무사 고시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군생활 하면서 모은 돈을 조금씩 까먹으면서 공부를 하였는데, 생각보다 노무사 공부가 흥미로웠습니다. 물론 정말 공부라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침 일찍 자취방에서 나와 하루종일 학원이랑 독서실을 반복하다가 늦은 밤에 집에 들어오면 갑자기 서러워져 밤잠을 설치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는 것일까’ 라는 나약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 다음날 학원에 가서 수많은 고시생들의 열정을 보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했습니다.

 

고시공부 특성상 불합격 아니면 합격 둘로만 나뉘어지기에 불안한 마음에 기업체 몇 곳에 지원서를 썼습니다. (공부가 지겨워서 도망가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면접을 갈 때마다 지방대 라는 약점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 4.5라는 졸업 학점이 나름의 이미지를 개선시켜주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노무사 공부에 빠져있던 시기였기에 노동법, 인사관리 등 이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지식적인 충만함(?)이 아주 가득한 시기었기에 직무 관련 질문 등에서도 나름 수월하게 잘 봤던 것 같습니다. 또, ‘단순히 노무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가 아닌 실제 공부를 하면서 사용했던 펜(아래사진 참고)들을 주렁주렁 가지고 가서 면접장에서 보여주며, 나름의 성실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최종합격까지 운이 좋게 잘 풀렸습니다.

노무사 수험생활 동안 사용했던 필기구들

그래서 ‘하던 공부를 계속 할까’, ‘취직할까’ 로 고민하였고, 어차피 인사팀에 취직하였기에 업무를 수행하면서 노무사 공부를 이어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이때의 마음이 아직도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는 중이긴 합니다…) 그렇게 2018년 8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약 9개월 동안 수험생활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맛있었던 고시식당 안녕~) 수험기간(약 9개월)동안 사용한 연습장과 교재들을 신림에서의 추억으로 기억하고자 사진으로 남겨두기도 하였습니다. (아래)

이렇게 2019년에 반도체 소재를 다루는 중견기업의 인사팀 신입사원으로 처음 입사하여 인사 전반에 대한 업무를 배웠습니다. 사실 신입사원이라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제대로 된 업무를 부여받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했기에 이래저래 보조하기 바빴습니다. 당시 첫 출근을 기록해뒀는데, 해당 글에는 ‘인사팀으로 내부고객인 직원들에게 애정을 쏟고 싶다.’, ‘애사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등이 기록되어 있는거보니 나름 열정적으로 즐겁게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업무 중 역량 부족을 단순하게 ‘지방대 출신이니까’ 라는 이유로 치부할 수 없도록 조금 더 부지런하게 움직여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구성원들과 어울리다보니 조금 더 제도나 문화에 대한 이론적인 학습이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다시 학업에 정진하였습니다. 석사를 졸업하고 다시는 학교에 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지만 결국 끝까지 와버렸습니다. 2020년부터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으며, 2022년인 지금 드는 생각은 학문적인 생각보다 ‘도대체 언제 졸업하나’ 이런 생각만 가득합니다. 사실 역량발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보다 지방대라는 학벌을 이겨내기 위한 발버둥 중 하나의 과정이라는 이유가 조금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짧은 삶 속에서 항상 누군가가 저를 평가할 때는 ‘어디 학교야’ 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제 전반을 판단하고는 했습니다. 후속 질문으로 ‘어떻게 학교 생활을 했느냐’, ‘어떤 경험으로 성장했느냐’ 라는 물음은 없었고, 단순하게 졸업한 학교만으로 저를 판단하는 짧은 상황 속에서 더 이상 노력을 해명할 수 있는 작은 기회 조차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어떻게 보면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게 만든 계기들 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상기의 성장과정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이유도 지방대 출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해 온 몸부림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러는 저도 결국 이력서를 검토할 때 본능적으로 출신학교에 먼저 눈이 가기는 합니다…)

 

다행스럽게 이러한 몸부림들이 좋게 표현이 되었는지 좋은 기회가 생겨 지금의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SK하이닉스의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행복모아’의 인사담당자로 구성원들과 행복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기업 같지 않지만 대기업으로 분류되어 국가에서 지원하는 중소/중견기업의 여러 혜택들(청년내일채움공제, 소득세 감면 등)을 전혀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근무환경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매우 만족 중인 상태입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이렇게 글을 마무리 할 생각이며, 짧은 시간 업무를 하면서 체득한 것은 생각보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것은 저만의 피해의식이 아니었나 라는 것입니다. 위의 글을 읽으시면서 독자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사실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받은 피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뭐 사실 거의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서류전형이나 찰나의 순간에서는 학벌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 순간만 지나고나면 생활에 있어서 ‘지방대 출신’이기 때문에 피해를 받는 것은 사실 그렇게 치명적인 적은 없었습니다. 사회적 편견이 만연하고 나도 피해를 받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라는 우려가 만든 환상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지방대 출신’ 덕분에 지금까지 조금 더 노력해야만 하고 조금 더 부지런해야만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다보니 저에게는 정말 큰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자극을 바탕으로 스스로가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저는 햇수로 4년차 인사담당자입니다. 저희 회사는 500명 규모에 인사담당자는 총 4 명이고, 제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수가 육아휴직(2년_다태아)을 가버려 사실상 3 명(청주 본사 2명, 이천 사업장 1명)이서 근무 중인 상황입니다. 저도 주니어인데, 제 밑에 막내가 또 있어서 저 포함 두 명이서 본사 인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보니 여러 고충이 많습니다. 그래도 진심으로 일 자체가 재밌어서 사실 매일 출근이 기대가 되고 즐겁습니다. 추후 이러한 고충이나 장애인 고용, 표준사업장 등에 대해서 조금씩 기고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자극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큰 내용이 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며, 항상 행복하고 건강한 날들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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