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는 책에 나온 귀절입니다. 문어체로 처음 저 문장을 읽었을 때, ‘과연 저 어색한 질문이 일상생활에 통용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어색함을 무릅쓰고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다들 저마다 마음 (주로) 괴롭고 즐거운 일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하더라고요.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한국에 잠시 머무르게 되어 오랜만에 한국 회사에 출근을 했더랬습니다. 11월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에 ‘요즘, 마음이 어떠시냐고’ 회사 분에게 물었더니 농담인듯 진담인듯 돌아온 답변이 “저를 포함한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직을 해야 하나 퇴사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것 같다”와 “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겠고 뭐라도 해야겠는데 뭘 못하겠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먼저 이직과 퇴사를 두고 하는 고민 중이라는 답변은 이제 막 “서른” 무렵이 된 직장인 3년 차가 된 분의 답변이었습니다. 많이들 이야기 하는 직장생활의 고비 3, 6, 9에 서른까지 더해졌으니 그 복잡한 심경이야 말할 수 없겠죠.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최승자) 찾아온다는 서른 즈음에는(김광석) 다들 정말 잔치가 끝난(최영미) 기분으로 아주 생각이 많은 (김은주)’시기겠죠.
생각이 없다가도, 다들 그러니까 어쩐지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심정적 ‘전이’가 일어나기도 쉬운 연배입니다. 어떤 분은 서른 무렵에 ‘출근하다가 차라리 저기 달려오는 빨간버스에 뛰어들까…’도 했다는 는 심각한 수위로 고민하는 분도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 분은 빨간버스를 들이받기 보다는 얌전히 올라 타고 회사에 잘 다니고 계십니다)
저 역시 힘든 서른을 보낸 사람으로서, 언제나 이런 상태에 놓인 분들을 보면 심정적 지지를 우선 보냅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요. 왜 당연하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늘 이런 답변을 해 왔습니다.
제도교육 그러니까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제도적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이래 직장생활 전까지 사람들은 대개 3~4개월의 교육훈련과 1~2개월의 방학(휴식)을 병행합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만 따져도 거의 12년의 세월 동안 이렇게 단거리를 달리고 하나의 목표를 달성해서 다음 레벨로 나아가고, 쉬었다가 다시 다음 레벨로…이런 생활을 거듭했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직장이라는 곳은 쉼없이 거의 1년을 달리라고 주문하는 것입니다. 1년을 달리고 좀 쉬나…했더니 그것도 아니고 다시 똑같은 1년…물론 중간중간 긴 휴가를 즐기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우리가 이전의 대학을 포함한 16년의 세월동안 누렸던 1~2개월의 휴식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죠. 그렇게 3년까지 달리면 다행이고, 많은 분들이 3년이 되기도 전에 마음이나 몸이 고장나기도 합니다. 3년을 달려봐야 다시 똑같은 4년차를 달려야 하니 힘들고요.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는 교육자 분들도 계시겠지만, 학교가 그리고 대학이 가르쳐야 할 것은 지식뿐만 아닐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밥벌이라는 혹은 직업이라 불리는 고단한 마라톤을 뛰어야 할 세대들에게 적절한 ‘삶의 기술(Life Skill)’을 배우고 경험하도록 하는 일은 언제나 학업의 뒷전에 놓여 왔던 게 사실아닌가요. 물론 키자니아(?)같은 조기 교육부터, 직업연수/체험, 인턴십 등 여러가지 제도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한번쯤 직업생활이라는 긴 마라톤을 뛰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볼 기회와 시간을 부여 본다면 어떨까요?
아직도 어딘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겠지 하면서 취업의 높은 문턱을 무작정 두드리기만 하는 분들이 많은 현실이고 보면, 한번쯤 다른 각도로 이 문제를 접근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혹시 읽고 계시는 분중에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의 취업이나 경력개발을 돕는 분이 계시다면, 적어도 아래의 질문에 저마다의 답변이 어느정도 준비되도록 해 주시면 어떨까 바라봅니다.
당신에게 직업/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남들에게는 어려운데, 나에게는 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꾸준히 즐겁게 해 온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일과, 나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일은 무엇입니까?
서른에 대학원 입학허가서를 받아두고, 현실적인 고민으로 직장생활을 선택한 사람. 서른하나에 새해 목표로 ‘퇴사’를 결심한 사람. 더구나 ‘이직’을 여섯번이나 해본 사람으로서 ‘이직이냐 퇴사냐’를 두고 고민하는 많은 분들에게 제가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우선 여러분의 고민은 나만 이런 게 아니라, 유별날 것 없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을 우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더구나 그 고민이 부디 좋은 결론으로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더구나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변에 믿을만한 ‘어른’과 이야기를 해 보시라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삶의 기술’ 그러니까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생각보다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십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고 감사한 분이 있는데, 바로 제 대안없는 퇴사를 막아준 회사 선배입니다. 어느 회사의 최종 인터뷰를 보고 난 후였는데, 실제로 인터뷰 과정에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 내가 일해야 하는 목표나 이유 같은 것들이 너무나 명확해져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퇴사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뒷덜미를 잡아 주시며, ‘지금 퇴사하는 건 망망대해에서 바다로 뛰어 드는 것과 같은 일이고, 여차저차 수영해서 버티다가 어떤 배를 운좋게 만난대도, 그것이 크루즈이든 조각배이든 급한 마음에 올라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직이 목표라면 최종합격이 결정 되고 퇴사해도 늦지 않다고. 계속 일 할 생각이라면 대책없는 퇴사로 경력에 공백 남기는 것보단 이직이 낫다고. (그 때는 지금처럼 경력공백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 아니었거든요. 지면을 빌어 그분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 전합니다)
헤이 서른,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은 좀 더 편안한 호흡으로 발바닥 까지지 않고 마라톤을 완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매우 중요한 고민입니다. 어떤 회사들은 3년차에게 근속휴가 같은걸 주기도 하던데…아무튼 아무런 방해 받지 않고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할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고, 잠시 멈춰서서 주변을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목도 축이고, 코치같은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의 조언을 구해도 좋고요. 시중에 책도 많이 나와있으니까요. 저는 그 즈음 법륜스님의 ‘행복한 출근길’을 읽었는데, 그 때 보다는 마흔이 되어서 Mindfulness 같은 데 눈을 뜨고 난 뒤에 읽으니 더 와 닿더라고요. 아무튼, 서른의 질풍노도의 파고를 잘 넘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