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의식이 문명을 창조한다 –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의 저력

전쟁에서 패했다면 “우리는 졌다”라고 기록해야 역사적 기술이요, 사료가 됩니다. ‘기술’은 사건의 의미나 여러 사건들 간의 상호관계는 보여주지 못하지만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성이 세워진 해, 전염병 발생 시기, 전쟁에 대한 기록이 대표적입니다. 가령 아시리아의 아수르나시르팔 왕의 행위를 전하는 기록을 보시죠. “나는 적의 전사 600명을 베었고 포로 3천 명을 불태웠다. 한 사람도 인질로 남겨두지 않고 모두 죽였다.”

 

대부분의 고대 국가들이 1단계 역사의식에 머물렀지만 이를 뛰어넘은 두 민족이 나타났습니다. 서구 문명의 기원이 된 유대인과 그리스인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전쟁의 간단한 결과만이 아니라 전쟁의 인과관계를 밝히거나 사건의 의미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해서 사건의 원인을 규명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점점 더 역사를 중시했습니다. 최초의 교인들은 역사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기독인들에게는 과거에 대한 인식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흐르면서 종교적 예언이 실현되지 않자 역사성에 기초한 권위가 절실해졌습니다. 구약의 중요성,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사도들의 선교 등을 정리할 필요가 생긴 거지요. 39권의 구약성경은 율법서, 역사서, 예언서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 12권이 역사서입니다. 신약에도 사도행전이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사복음서 역시 역사서의 성격을 띱니다.

 

유대인들의 역사의식이 1단계 ‘기술’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기 위해 구약의 역사서인 <사사기>의 한 대목을 보시죠.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께 범죄하고 바알 신들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 내신 그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저버리고 그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섬겼다. 이와 같이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겨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노하셔서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넘기고 또 그 주변 원수들의 지배를 받게 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는 원수들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어느 곳으로 출전하든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치셨으므로 그들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사사기 2:11~15)

 

성경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민족의 침략을 받게 된 원인에 대해 “하나님 여호와를 저버리고 이방 신을 섬겼기” 때문이라고 적었습니다.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사건의 원인을 해석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역사 서술이 이성적 탐구가 아닌 종교적 신앙의 산물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단순히 ‘기술’만 작성한 게 아니라 인과관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역사가 마크 길더러스는 성경 저자들이 신앙의 위인들을 무조건 미화시켰던 것도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유대인들이 신앙적인 세계관에 붙들려 있기는 했지만, 인물들을 공평하게 서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령, 구약의 역사서 <사무엘하>에는 다윗 왕이 계집 종 앞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다윗 왕을 영광스럽지도 명석하지도 않게 그려낸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역사의식에 커다란 공헌을 남긴 민족입니다. 기원전 5세기의 그들은 신화에서 인간사로 기록 대상을 바꾸었고, 인과관계를 밝히는 탐구와 조사를 시도했습니다. 훗날 키케로가 역사학의 아버지라 칭했던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밝히려고 해당 지역을 답사했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관습과 지리적 조건도 살폈죠. 자신이 작성한 방대한 역사적 기록에 아래와 같은 서문도 붙였습니다.

 

“이 글은 할리카르낫소스 출신 헤로도토스가 제출한 탐사 보고서다. 그 목적은 인간들의 행적이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스인들의 위대하고도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무엇보다도 그리스인들과 비그리스인들이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천병희 역)

 

역사학의 아버지는 기록의 목적을 두 가지로 밝혔습니다. 망각을 예방하는 것 그리고 전쟁의 원인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는 기록물을 책으로 엮어 ‘조사’ 또는 ‘탐구’라는 뜻의 그리스어 ‘히스토리에’을 제목으로 택했습니다. 히스토리에는 “이성적 설명을 위한 조사와 현상에 대한 이해”라는 뜻입니다. 고대 희랍어 ‘히스토르(histor)’는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학식 갖춘 사람을 뜻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을 지적인 작업의 결과물로 보았던 겁니다. 책 제목은 영어 문화권으로 건너가 역사(History)의 어원이 됐죠. 헤로도토스의 작업은 역사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사실의 기록과 인과관계의 파악이 역사학이니까요.

 

서구 문명의 기둥이라 불리는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을 일궈낸 그리스인과 유대인은 뛰어난 역사의식을 지닌 민족입니다. 역사의식만으로 문명이 탄생하진 않겠지만, 역사의식이 문명의 발전에 기여함은 현재까지의 인류사를 통해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식이 높은 개인들, 다시 말해 과거를 기록하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줄 아는 사람들이 성장과 도약을 이뤄냅니다. 문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 있다면, 역사의식의 중요성과 가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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