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신(distrust)이 만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와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정부가 발표하는 보도자료 속 통계를 믿지 않는다. 정부가 유리한 통계만 취사선택해서 발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검찰이나 경찰이 특정 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를 않는다. 분명 뭔가 뒤에 다른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고 단정 짓는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리더(leader)는 구성원과 팀원을 신뢰하지 않는다. ‘요즘 애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불평불만만 많아. 일을 시킬만한 애들이 없어’라고 단정 짓는다.
구성원들도 리더에 대한 신뢰가 제로에 가깝다. ‘실력도 없는 사람이 줄을 잘 서서 부서장 자리에 올라갔구만. 내가 해도 저것보다 잘하겠다’라고 비난한다. 리더가 최소 20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쌓은 연륜과 암묵지, 내공은 깡그리 무시한 채 무능한 사람이 완장을 차고 있다고 규정하기 일쑤다.
한마디로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불신이 팽배하고 간신히 재무적 보상(월급)이라는 매개체로 연결돼 있는 모습이다. 같은 회사에 다녀서 한 배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원수보다 못한 사람들끼리 한 조직에서 샅바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인사평가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리더가 무능하다고 판단하거나 내가 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사평가 결과에 전혀 수긍하지 않는다. 그저 리더가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 좋은 고과를 몰아줬다며 나는 희생양(scapegoat)이라고 생각한다. 인사평가 후 진행되는 인사평가자와의 면담에서도 성과에 대한 리더의 조언에 귀를 닫아버린다. ‘우리 부서장은 똘끼가 있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고 내 근무평정만 나쁘게 줬다니까’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불신이 쌓일 데로 쌓여 감정의 골은 이미 깊어진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조직이 제대로 굴러가고 생산성이 발휘될 리가 없다.
불신이 팽배해 있는 탓에 피드백과 환류를 통한 실적 향상은 꿈같은 얘기다. 팀원들은 ‘당신이 저연차 때 어떻게 일했는지 내가 훤히 알고 있는데 감히 나에게 훈수를 둬? 당신이 하는 말 안 들을거야!’라고 생각해 버린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은데 자기 계발은 고사하고 매일 같이 부원들을 붙잡고 회식이나 하고 싶어 하는 리더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리더 역시 자신이 아직도 마초적인 리더십이 통용됐던 20세기 리더십을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팀원들을 비난하기에만 열중한다. 리더와 팀원 모두 조직의 일원으로 회사와 함께 성장해 간다는 일체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가 없다. 서로 열패감만 가득 차 있다. 연차가 찬 부서장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쩌겠어. 버틸 수밖에 없지’라고 생각하고, 저연차 팀원들은 ‘이 회사는 정말 가망이 없어. 빨리 떠나는 수밖에’라며 엑소더스를 꿈꾼다. 주로 젊은 층들이 ‘헬조선’을 외치며 이민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신이 만연한 조직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바로 성장의 경험을 공유하고 역지사지가 돼 보는 것이다.
일단 리더는 목표와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도달 가능한 목표를 제시하고 이를 위해 합심해서 뛰어보자고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니가 독심술로 내 마음을 읽어봐’라고 하는 태도는 후배들에게 ‘일하기 싫은 상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존경과 권위는 당신의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팀원들은 내가 모르는 것을 최대한 알려주려고 하는 상사에게 알아서 존경을 표하기 마련이다. 구성원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고 마치 후배들이 현금자판기인 것(ATM)처럼 “00보고서 제출해. 최대한 빨리. 대신 퀄리티도 좋게”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배들은 부하직원들에게 이번 게임의 골대가 어디인지, 슛을 어떻게 날려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자신의 성공경험을 나눠주는 것만으로 후배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후배들도 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 상사가 부서장과 임원이 된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회사가 특정 개인의 월급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은 아니다. 상사도 분명한 롤(role)과 장점이 존재한다. 후배들은 그 장점과 암묵지 가운데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저 상사는 나랑 안 맞아. 내가 배울 게 없어. 말이 안 통해’라고 규정하고 대화와 소통의 싹을 잘라버리면 상사 역시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다. 회사와 조직은 인공지능(AI)과 로봇들로 구성된 곳이 아니라 감정을 가진 사람들로 이뤄진 곳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성장하려는 노력을 일체 안하면서 상사를 욕하는 데만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면 자신 역시 후배들로부터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가 돼서 리더는 구성원을, 구성원은 리더의 입장을 헤아려보라는 것은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률처럼 사실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한 회사와 조직에 다니면서 한 배를 탄 사람들이 대화와 소통의 단절로 인해 원수처럼 지내는 것도 결코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역지사지의 태도는 회사 내규로 명문화할 수도 없다. 오로지 당신이 그것을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