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공간들이 말을 걸다
올해 여름휴가로 어디를 갈지 아내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지난 2월, 나는 태어난 지 32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제주도를 즐겨 찾는지 그 이유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으니, 아직은 추운 탓에 바다를 만끽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제주’도’인데 바다를 누리지 못한다니! 뜨거운 햇살이 온 세상을 내리쬐는 여름의 어느 날, 제주에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한 이유다.
이번에는 일부러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동선을 짜봤다. 바다에 온몸을 내맡기며 해수욕하기도 하고, 또 해변을 유유히 걸으며 중간중간 삼각대를 활용하여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번 여행과 가장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바로 다양한 ‘공간’을 탐방했다는 점이다. 제주도가 워낙 ‘천혜의 자연’으로 유명해서였는지, 겨울에 왔을 땐 여러 ‘오름’과 숲길을 거닐기에 바빴다. 이번 여행에서는 제주에만 있는 맛집들, 카페 그리고 책방 몇 군데를 일정에 포함했다.
- ‘내 집처럼 편안히 묵고 가라’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펜션
- 사장님이 막국수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비며 인증샷을 찍을 정도로 막국수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넘실거리던 음식점
- 다양한 손님들을 위한 온갖 책들과 제주에 대한 사랑이 물씬 풍기던 어느 책방
- 식기부터 각종 인테리어 소품까지, 모든 것을 ‘일본스러운’ 것으로 장식한 이자까야
내가 방문한 몇몇 공간들의 공통점은, 바로 주인장의 에너지가 공간에 듬뿍 담겨있었다는 점이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가 운영하는 공간도 분명히 있었지만, 반대로 서울에서 나름의 삶을 살아가다가 제주로 내려와 자신만의 뜻을 펼친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에서 벗어나 제주를 굳이 ‘선택’한 사람들이라면, 각자 나름대로 어떤 강력한 사연이, 혹은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이러한 공간에 나의 몸을 담그는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어떤 에너지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떤 에너지였을까? 도시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어떤 한 줄기 빛과 희망을 담은 외침이었던 것은 아닐까? 아직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어쩌면 나 역시도 머지않은 미래에 은퇴하여 원하는 꿈을 펼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호소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야, 너두 할 수 있어” 라고, 그 공간들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하였다.
별생각 없이 살아가던 내가, 제주도에 와서, 그리고 주인장의 에너지가 담긴 공간들을 접하자 그러한 삶을 강렬하게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람들은 나더러 현재 일을 그만둬도 괜찮다고 얘기한 것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종용한 것도 아니었다.
욕망의 점화
루크 버기스가 욕망에 관해 다룬 책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에서는 우리의 욕망이 외부의 모방 시스템을 통해 형성되고 유지된다고 말한다. 각각의 모방 시스템 안에는 우리가 따르고자 하는 ‘모델’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 모델을 보며 알게모르게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말마다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던 김가정은, 자신의 친구 조여행이 여름휴가로 동남아시아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집에서 쉬는 대신에 가까운 곳이라도 좀 다녀봐야겠다면서. 연봉 올리기에는 그다지 관심 없던 이태평 역시 마찬가지다. 우연히 입사 동기의 연봉이 나보다 천만 원 이상 높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어떻게 하면 몸값을 올릴까?’를 고민하게 된다. 돈에는 별 관심이 없던 바로 그 이태평이!
책에 나오는 미슐랭 3스타 셰프 ‘세바스티앙 브라’는 어느 날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상당 부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과감히 미슐랭협회에 미슐랭 3스타(무려 ★★★다!)를 반납하고, 더 이상 미슐랭 명단에 자신을 등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 브라는 자신의 결정을 페이스북에 발표한 뒤, 수많은 전화를 받게 되는데, 그중에는 자신의 결정에 깊이 공감한 3스타 셰프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세바스티앙은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내 결정이 ‘와, 그 시스템을 감히 거부한 누군가가 있네? 어쩌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이제 나도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셰프들의 깊은 욕망을 가시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p.216)
제주도에서 내가 경험한 공간들 역시 현재 속한 시스템에서 자유로워지길 원하는 나의 깊은 욕망을 가시화시켰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도 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에 불을 지핀 것이 아닐까? 제주도에서 내가 느낀 것, 그리고 미슐랭 3스타를 자진 반납한 셰프 세바스티앙 브라의 사례로부터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하는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걸 원하게 된다. 만약 내 안에 그 욕망의 불씨가 있다면.
어떤 ‘불씨’를 품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만약에 직장에서 승진하거나 서울의 아파트를 구매함으로써 현재 속한 시스템에서 가능한 높은 지점에 도달하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제주도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오히려 반감이나 저항감이 들 수도 있는 일이다. 세바스티앙 브라에게 전화를 건 수많은 사람들 중, 미슐랭 별을 추가로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셰프들은 오히려 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점에 주목하자.
조직문화에 적용해 보기
만약에 이러한 관점을 조직을 변화시키는 데 적용해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이 하길 원하는 바로 그 행동, 나부터 그 행동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보게 하라. 나부터 하기 어려운가? 그렇다면 그걸 잘하는 사람들을 찾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줘라. 만약 가슴 속 한켠에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점화’에 반응할 것이다! 사람들로부터 바라는 변화 그 자체가 되는 것, 그것이 변화의 좋은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기
1. 당신의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그 관심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진정 그것은 어디었는가?
2. 다른 사람들로부터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부터 그것을 실천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자신이 있는가?
3. 혹은 그것을 이미 잘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자. 그 사람의 이야기 또는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