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조금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표준화되고 체계화된 군대라는 조직에서 인사병과 장교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4개월이나 인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현장에 배치되어 실무를 수년간 했습니다. 직무, 평가, 배치 등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는데 HR을 업으로 삼는데 많은 도움이 된 최초의 경험이었습니다.
그 뒤에 대기업에 들어가 인사를 하고, 대기업과 신생기업이 섞인 곳, 스타트업에서 크게 성장한 곳, 게임회사, 스타트업 등 다양한 회사에서 HR을 경험하였습니다. 회사의 경영방식에 따른 사업의 흥망성쇠를 경험해 본 것은 저에게는 큰 자산이 되었지요. 특히, 대기업에서는 안 되는데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는 되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기업이 플랫폼 사업을 하거나 게임을 만들면 중간에 접거나 포기하거나 이상한 서비스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재원도 훨씬 더 부족한 벤처기업, 스타트업 들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왜 그런지 분석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분석했던 원인은 목표지향 경영방식 때문이었습니다.
목표지향 경영방식은 다른 말로는 MBO(Management By Objectives)라고 부릅니다. 1950년대에 피터 드러커 교수가 주장한 경영관리방식으로 상사와 부하가 소통하여 함께 목표를 설정,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달성도를 피드백하여 성과평가/보상에 반영하는 관리방식입니다. 요즘에는 어느 조직이나 기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방식이지요. 성과달성률이 수치화되어 명확한 것이 강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연초에 세운 목표로 연말에 평가를 하다 보니 너무 단기적인 시야로만 판단을 하게 되는 단점도 있고, 중간에 껴드는 새로운 일들에 대해서는 안 해 버리거나, 아니면 평가에 반영하기 위해서 매년 9월, 10월에 목표를 조정해 주는 번거롭고 불필요한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저는 이 목표지향 경영방식의 치명적인 약점들을 많이 보았는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연초에 경영진에게 멋진 파워포인트 문서로 보고를 잘 합니다. 보고서의 퀄리티는 컨설턴트급이지요. 세계정복할 수 있다는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업계획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고객들이 똑똑한 자기들의 입맛대로 움직일 거라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보고를 하고 나서 서비스를 만든 뒤에 고객의 반응이 없으면 다시 보고해서 바꿀 생각은 안 하고, 연말이 되면 은근슬쩍 그 서비스를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고 조직개편이 되면 아무도 모르게 서비스를 접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은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겠다는 대략적인 계획을 잡은 뒤에 서비스를 만들고 오픈 한 뒤에 고객의 반응을 대응하면서 지속적으로 개선을 해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자일 방법론과도 잘 연결이 되지요. 계획서는 투박해도 방향성은 일관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날 고객의 니즈에 딱 부합되면서 크게 성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최근 성장한 신생기업들의 경영방식에 대하여 어떻게 명명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가치지향 경영 방식(Management By Values)이라고 이름을 정해 보았습니다. 본질적으로 세상에 제공할 가치에 기반해 큰 방향성만 관리하고 세부적인 이슈는 그 때 그 때 대응하는 경영방식입니다. 두 방식의 차이를 한번 비교해 보면 아래 표의 내용과 같습니다. 어느 경영방식이 더 맞다는 것은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 적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같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가치지향 경영방식을 보완해야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표]목표지향 경영방식과 가치지향 경영방식 비교
에릭 슈미트.조너선 로젠버그.앨런 이글이 지은 『구글은 어떻게 일하는가』를 읽어 보면 처음에 구글에 합류한 에릭 슈미트가 문화 충격을 받고 배운 것들을 잘 적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대략적인 우선순위를 매겼지만 이 보다 더 장기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필요하다는 인식도 없었고 그런 개념조차 없었는데, 문제가 생기면 모여서 해결하는 방식을 썼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수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멋진 계획서보다는 최고 수준의 기술자를 고용해 그들을 방해 하지 않는 것임을 창업주들은 알고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성공한 스타트업들에게서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10조에 팔린 왓츠앱 같은 메신저는 오직 메신저 본연의 기능에만 집중을 해서 가입자수를 크게 늘려 회사 매각해 성공했지요. 테슬라는 인류를 환경오염에서 구하겠다는 가치로 소형배터리를 연결해 500Km를 가는 모델S로 전기차 시대를 열었구요. 이코노믹리뷰 2016.4.15자 기사를 보면 성공한 드론 기업인 DJI에서는 내부적 계획서를 발표할 때 벤치마킹 같은 이전 사례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면서 다른 회사 같으면 리스크가 크다고 하지 말라고 할 것들을 DJI는 정반대로 판단해서 진행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 작은 변수들에 집착을 하게 되면 큰 방향성을 놓치게 되는데 가치지향 경영방식은 이것들을 잘 방지해 줍니다. 다만, 엉뚱하게 작용을 하면 결과는 안 나오고 회의만 하다가 결과를 못 내고 끝날 우려도 분명히 있습니다. 요즘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이라는 성과관리 방식이 반대로 대두되는 것은 신생기업의 방향성 중심의 관리방식의 한계를 극복해 보려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제조기업 인텔의 경험을 가진 존 도어가 구글에 알려 주었다고 하는 관리 방식인데 3개월마다 팀/개인 목표 3개, 핵심 Result(결과) 3개를 정해 성과평가를 하는 방식인데 기존 MBO(KPI) 방식을 주간업무보고 방식과 조합을 한 느낌입니다. 성과 평가와 직접적으로 연동되지 않도록 하여 가치지향 경영방식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어느 영역이나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조합되어 발전하는 정반합의 변증법은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목표지향 경영관리를 하고 있는 조직에서 억지로 OKR을 도입하려고 하기 보다는 반대로 더 근본적인 배경이 되는 가치지향 경영관리의 요소를 반영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1년단위의 단기적인 목표지향형 경영관리로는 장기간이 소요되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에 효과적으로 진출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비전/목표만 고민하지 말고, 더 본질적인 WHY(왜?, 가치)를 고민하는 사고 방식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좀 배워 균형을 잡는다는 방식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목표지향적인 경영방식에 꽉 짜여 있는 조직은 가치지향 경영방식으로 장기적인 관점을 보완하고, 반대로 너무 가치지향 경영방식으로 막연하게 회의만 하고 있는 조직은 목표지향적인 경영방식으로 중간 거점을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많은 경영진에게 미션/비전을 물으면 돈 벌면 되지 뜬구름 같은 소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Back to the Basic! 세상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지를 항상 생각하는 가치지향적인 경영방식은 어찌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경영의 본질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HR전문가라면 위에서 배운 두 방식의 장.단점을 잘 조합해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영진 설득하실 때 도움이 되시면 좋겠다는 마음에 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