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올해도 5개월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기다리던 여름휴가도 끝나고 앞으로는 분주하게 달릴 일만 남았다. 이 시점에서 인사담당자는 서서히 일년 농사라고 할 수 있는 인사평가와 빠른 기업들은 내년을 위해 사업계획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을 진행할 때 회사 내 다른 부서 담당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일을 진행하곤 한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여러가지 일로 부딪치게 된다. 특히, 업무처리 기준과 원칙을 누구보다 지켜야 하는 주관 부서인 인사팀으로는 가끔은 혼란스러울 수 있다. 기준과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때로는 현실에 맞지 않아서 융통성이 없다는 말을 듣곤 하기 때문이다. 환경의 변화, 제도의 변화로 어쩌면 격변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요즘, 인사가 가진 여러 제도와 원칙들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운 상황이 끝도 없이 나타난다. 직원 개개인이 현장에서 마주하면서 지금껏 아무 문제 없이 유지되던 기준과 원칙들은 다양한 예외와 융통성을 요구하고, 이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인사 업무를 하면서 상황에 맞게 유권해석을 하고, 유연한 제도 운영을 통해 직원들에게 자기효능감을 높여 주고, 성과를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어쩌면 인사팀의 당연한 업무이고 역할이라고 할 것이다. 명문화된 제도와 기준 및 원칙 만을 주장하면 ‘현장을 모르는 사람, 고지식한 인사, 여전히 문턱이 넘은 인사’ 등으로 낙인 찍히기 딱 좋은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반면, 인사가 매 상황마다 조금씩 다른 융통성을 발휘할 때 생기는 형평성과 조직 운영 상의 이슈도 적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또 각론이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부칙을 만들기란 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원칙과 이에 대한 융통성을 판단할 때 꼭 물었으면 하는 질문들을 정리해 보았다.
1. 기준(원칙)이 가지고 있는 취지와 본질에 부합하는 융통성인가?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기준과 원칙은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모인 조직에서 필요한 길라잡이 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판단과 행정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기준과 원칙은 그 취지와 수립 배경을 가지고 있고 이는 조직 운영의 지속성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 제도의 본질을 끝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때로는 까칠하다고 들을 수 있으나, 판단에 앞서 냉철하고 깊이 있게 제도 운영의 근본을 상기시켜 보아야 한다.
2. 긍정적 효과를 부르는가? 부정적 효과가 염려되는가?
융통성을 발휘해 예외를 허락한 경우라면 그 방향성과 파급력을 받드시 물어야 할 질문 중 하나이다. 사실 예외를 적용하기에 가장 고민이 되는 상황을 꼽으라면 이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외가 기준을 잘 지킨 사람들을 순진한 바보로 만들어, 예외를 적용 받은 사람이 더 이득을 보게 되는 경우라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쉬울 것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기준과 원칙을 잘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패자로 만들지 않는 의사결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모럴해저드 상황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은 기준의 범위가 달라진 것을 쉽게 파악하고, 합리적으로 접근해 더 많은 혜택이 있게 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3. 지금의 제도로 충분한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한가?
마지막으로 이러한 예외 적용이 선례가 되어, 이와 같은 요청이 계속해서 이어질 지 점검해야 한다. 융통성을 필요로 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가 많겠지만, 향후 이러한 사례가 계속해서 나타날 경우에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융통성을 적용한 논리적인 상황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을 경우, 표면적인 선례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유념해야 할 점은 환경과 사회적 기준이 바뀌어 앞으로도 다수에 대해 예외를 적용해야 할 경우, 과감히 그 기준과 원칙을 재점검하고, 시대와 사람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즉, 이 계기를 통해 지금의 원칙과 제도가 적절한 기준으로 수립, 운영되고 있는지 체크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기준(원칙)과 융통성에 대한 문제는 인사 담당자 뿐만 아니라, 많은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뜨거운 논쟁이 일어나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한다. 규정과 원칙이 직원들의 자율성과 동기부여를 저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도 상당 수 있다. 오죽하면, 지구 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의 CEO가 ‘규칙 없음(No Riles Rules)’라는 책을 내고,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보면 이에 동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인사 담당자나 리더들을 넘어 조직 구성원 모두가 본질에 집중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 기대한다. 융통성이 적용되는 방식과 방향이 조직과 제도의 지속 운영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지, 전 구성원이 그 예외나 일부 변경을 적용 받아 좀 더 긍정적 효과가 되었는지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건전하고 단단한 조직의 기본 가정(Basic Assumption), 맥락(Context)을 만들기 위한 노력 역시 고민해보는 기회를 가져보자. 결국, 조직 구성원 대다수가 믿고 따르는 기준과 원칙, 나아가 이를 지지하고 강화할 구성원들의 믿음이 조직 운영의 뼈대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