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대체 무엇이 두려웠을까 – 인문학 공부의 첫걸음, 언어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창세기 11:9

성서에 따르면, 오만해진 인간은 탑을 쌓았다. 스스로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에 오르기 위함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홍수로 그들을 쓸어버리는 대신 탑에 오른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소통을 단절시켰고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봉쇄했다. 신은 언어의 힘을 간파했던 것이다. 어쩌면 두려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교육하고 문명을 일구어나간다. 언어가 없다면 대화도 사유도 힘들어진다. 인간이 이뤄내는 온갖 창조적인 일들은 말과 글을 통해 이뤄졌다. 언어를 통해 상상력과 지식이 전파되고 문명의 교류가 가능해졌다. 우리가 맺고 있는 우정이나 사랑 또한 서로를 이해하는 말에 빚지고 있다. 언어가 없다면 오해와 무지로 얼룩진 삶이 되고 언어가 서로 달라지면 결국엔 흩어지고 말 것이다. 언어는 힘이다.

언어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도구다. 동물은 언어생활을 하지 않는다. 음성과 몸짓 신호를 주고받을 뿐이다. 만약 어떤 동물이 언어를 발견한다면 인간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줄 것이다. 글을 알고 말을 할 줄 아는 길고양이를 상상해 보라. “모든 쓰레기통이 다 똑같은 것은 아니야. 음식물쓰레기라고 적힌 통을 뒤져 봐. 먹거리가 꽤 많으니 잠깐의 악취만 견디면 돼.” 모기들끼리 다음과 같이 소통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앵앵거리는 소리 없이 날아다닐 줄 알아야 해. 그래야 더 오래 살 수가 있어. 이건 생존의 문제야. 부단히 연습하면 모든 모기들에게 가능한 일이야.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모기들도 새로운 비행법을 익히면 돼.” 다행히 아직까지는 인간만이 문자와 언어를 활용한다. 동물에게도 언어가 허락된다면, 지혜로워진 모기로 인해 여름이 좀 더 성가신 계절이 될 것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우리를 학습시킨 것이 다름 아닌 언어였다.

스페인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예찬』은 언어와 번역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책이다. 내게는 발터 벤야민의 <번역가의 과제>라는 책과 함께 ‘번역’의 본질을 이해하게 만든 텍스트다. 나는 『번역예찬』의 한 문장을 외고 있다.

“모든 언어는 비언어적 세계에 대한 일종의 번역이다.
Language is a translation of the nonverbal world.”

‘비언어적 세계’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것들, 이를 테면 생각, 느낌, 감각, 경험을 뜻한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표현의 힘겨움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로 언어는 본래 한계를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말하는 사람이 비언어적 세계와 언어를 신중하게 연결하지 않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의사 소통을 위해서는 언어 감각을 키워야 한다.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는 동시에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말이다. 적확은 정확과 다르다. 틀림없이 꼭 들어맞는 것이 ‘적확’이다. 적확한 언어 사용이란 비언어적 세계(자신의 생각과 느낌)를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도를 명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라 이해해도 좋겠다. 예를 들어보자. 언어의 한 번은 인문학 강연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 청중들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여러분, 제가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 드리겠습니다. 벨기에 명품 초콜릿 노이하우스입니다. 흔한 초콜릿은 아니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드셔 보세요. 드신 후에 옆에 계신 분과 시식 소감을 얘기해 보세요. 어떤 맛이었는지 표현해 보세요.”

초콜릿을 맛보는 순간 미각이 살아난다.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그 미각적 경험이 ‘비언어적 세계’다. 깊고 풍요로운 맛은 언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정말, 너무 등의 부사만 남발하기 십상이다. 요즘엔 “대박”이라는 말이 온갖 표현을 대체하고 있다. 부사와 대박이라는 말로는 초콜릿만의 고유한 맛을 표현하기 힘들다. “정말 맛있네요.” “대박입니다.” 이런 표현은 맛난 곰탕이나 끝내주는 스파게티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맛을 표현할 줄 아는 이들은 첫 맛과 끝 맛을 구별하곤 한다. 와인을 마시면서, 피니시(finish)가 어떠했는지 표현하는 식이다.

어떤 사건 또는 특정 인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은 초콜릿의 맛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자신의 감정, 생각, 감각에 가까운 언어를 찾는 노력은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일과 비슷하다. 오역은 필연적이다.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비언어적 세계)를 신중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자신이 말하려는 의도와 동떨어진 어휘를 선택할 때 오역이 일어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이중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말하는 이들은 번역을 잘 해야 하고, 듣는 이들은 오역을 피해야 한다. 귀에 들리는 단어에 깃든 말하는 이의 의도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언어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인문학이란 다름 아닌 사람(人)과 언어(文)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인문학’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공부하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실제로 문사철보다 언어가 앞선다! 인문 소양을 갖고 싶다면 문사철 공부보다 언어 감각의 고양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인문학 공부는 멀리 있지 않다. 생활 속에서 인문 소양을 함양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쓰는 단어들이 ‘비언어적 세계(경험, 감정, 사고)’를 적확하게 포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인문학 공부다. 한 문인의 말처럼 정확한 이해가 사랑이라면, 언어를 세심하게 다루는 노력은 사랑의 실천이다.

인문 공부의 일상적 실천 하나를 제안하고 싶다. 자신이 쓰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모를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명징하고 적확하게 말해지면 좋다. 그럴 때마다 서로 교감하는 영역이 확장될 테니까. 외로움이 이해받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라면 언어 감각이 외로움을 조금은 줄여줄 것이다. 친밀함이 자신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드러내는 일이라면, 언어 감각이 친밀함의 농도를 더할 것이다. 학문이 대상을 사유하는 고유한 방법론이라면, 개념에 대한 단단한 정의가 학문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언어 없이는 인식도, 관계도 존재하기 힘들다. 언어는 신이 두려워할 만한 도구다. 달리 말하자면, 언어는 인문학 뿐만 아니라 삶을 일궈가는 놀라운 도구다. 언어의 중요성을 붙들고 사유한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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