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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은 이야기다. Human이 들어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필히 생긴다. 그 이야기들이 모이면 다시 HR이 된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갓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나의 HumanStory를 전하고자 한다. 시작하는 이에게는 경험을, 함께하는 이에게는 공감을, 먼저가는 이에게는 응원이 될 이야기를.]

 

구조조정이다

급속한 확장이었다. 많은 투자금을 발판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공간을 확장했고, 장비도 사들였다. 그 어느 것 하나 아끼지 않았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부문, 전 직군에 채용이 진행되었다. 매주 입사하는 인력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며 회사의 비전과 청사진을 소개했다. 늘어나는 인력을 어떻게 배치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다. 인사담당자로서는 그저 즐거웠다. 한 편으로는 인건비가 걱정이 매주 현황을 보고했으나 경영진은 지속적인 채용을 지시했다.

그렇게 1년 만에 직원 수는 두 배가 되었고 인건비는 그 이상으로 늘었다. 하지만 매출은 그렇지 못했다. 투자금은 고갈되고 있었고 자금상황은 악화되었다. 비용과 지출만 우상향 그래프였고, 나머지는 모두 반대였다. 돈을 벌지 못하니 투자를 더 받아야 했다. 그동안 자금을 조달했던 가장 익숙하고 쉬운 방법이었으나, 상황은 변해있었다. 좋은 아이템을 믿었던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투자에 조건이 붙었다.

구조조정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목적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우리가 희생하면서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만 했다. 양적인 목표는 절반의 감축, 인력의 수를 다시 1년 전으로 되돌려야 했다.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새내기직원, 두 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외벌이 가장, 근처에 방을 구해가며 이제 막 입사를 한 경력사원, 심지어 잘 다니던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입사가 얼마 남지 않은 예정자까지, 모두를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다. 아니, 다시 돌아갈 자리는 이미 없었다. 그저 취업시장으로 떠 밀어야 했다.

우울했다. 신나게 채용을 했던 내가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열심히 한 만큼 후회가 되었다. ‘내가 아니었으면 다들 다른 회사에 잘 다니고 있었을 텐데’라는 부질 없는 생각을 했다. 확실한 건 회사의 밝은 미래를 안내했던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아침마다 직원들과 인사하기 바빴던 내가 이제 죄인처럼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곧 인사를 하면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구조조정은 이렇다.

경영의 큰 범주에서 ‘구조조정’은 여러 의미를 가진다. 인사 영역에서의 구조조정은 곧 인력감축을 말한다. 꽤 많은 수의 직원을 소위 ‘자른다’는 뜻이다. 그 일에서 인사는 메인 주인공이자 빌런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영웅이자, 잘리는 사람에게는 빌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법은 고용의 안정을 위하여 부당한 해고를 막는다. 회사가 망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러한 ‘구조조정’도 해고가 쉬운 것은 아니다. 적법한 사유와  절차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회사가 어려운 와중에도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충분히 했는지 여부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절차는 이렇다.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 규모를 줄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먼저 손 들고 나갈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으로 굳이 나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희망퇴직 인원이 충분하지 않다면, 회사 칼을 뽑아 들어야 한다. 그 무서운 살생부가 여기서 나온다. 회사는 지키고 싶은 사람과 내보내도 좋을 사람을 분류한다. 냉정하면서도 현실적인, 가혹하면서도 이성적이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때문에 희망퇴직에는 조건이 따라 붙는다.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 희생타가 되는 이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보상. 경영사정에 따라 두 세 달치에서부터 1년치 연봉에 이르기까지도 보상금이 정해진다. 이러한 메리트가 치열한 취업전쟁에 다시 참전할 용기를 주는 것이다. 다만, 그 조건을 정하는 것은 바로 노사협의회. 적게 주려는 자와 더 받으려는 자의 눈치게임이다.

 

협상은 이랬다.

회사에서는 총 다섯 명의 임원이 참석했다. 근로자대표 5인에 맞서는 인원 수 였다. 나는 간사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저 회의내용을 잘 받아적는 역할이었다. 발언권은 없었다. 사측도 노측도 아닌 그저 투명한 옵저버였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퇴사를 앞에 두고서야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 회사가 더 이상 평가나 월급의 결정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그럼에도 용기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부당한 대우와 폭언을 당하면서도 집에 가는 날까지 참고 견딘다. 관성, 가스라이팅, 회피 혹은 방어기제. 원인이 뭐든간 나는 응원한다. 스스로의 선택과 행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 상황을 당연히 여기고 마지막까지 더 부당하고 무례한 자들에게 있다.

협상장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회사가 자금난에 빠졌고, 함께하기로 한 동료들을 내보내야 하는 상황. 경영진으로서는 ‘참담한 마음으로 사죄’를 해야만, 아니 최소한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헤어지는 연인에게 변심의 마음은 상당히 저자세로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회사가 어려운 것을 직원들의 탓으로 여기고 있었다. 야근을 하지 않은 직원들, 패밀리데이라고 정말 일찍 가는 직원들을 탓하며 정신상태를 논했다. 회사가 어려운 것이 직원들의 근무태만으로 몰아갔다. 스스로에게 있는 책임을 떠넘기며 당위성을 얻고 협상의 우위를 얻고자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경영에 실패한 임원들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었다. 함께한 직원들을 무시하는 행태였다. 그러나 근로자대표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임원들의 그 말에 분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동조 되고 있었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고, 서로 큰 성과는 없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것도 아니었고 수월하게 협의가 된 것도 아니었다. 애매한 의사결정들만을 남긴 채 다음 회의를 기약했다. 냉정히 판단하건대, 사측도 노측도 경험이 없어 이러한 협상에 서툴렀던 것이었다.

화가 난 나는 나의 태도를 결정했다. 그저 모른 척 방관자가 될 수 없었다. 회의를 마친 후 노사위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회의가 가지는 법적인 성격, 대표들의 역할, 통상적인 회의의 분위기, 그리고 한 직원으로서의 나의 의견들을 전달했다. 혹시 ‘어용’이라고 여기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으나 다행히 진심은 잘 전달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투명한 옵저버가 아니게 되었다. 이후 이어진 협상은 내가 크게 관여하지도 관여할 수도 없었다. 다만, 협상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달라졌다. 대표들이 본인들의 목소리를 더 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협상결과는 회사 쪽에 유리했다. 대신에 경영진들은 직원들에게 진심을 담은 깊은 사과를 전달했다. 그리고 나는 퇴직을 하였다.

당시 나의 직속상사는 나에게 말했다. HR은 경영진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그들의 편에 서 주어야 하는 것이 HR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의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별로 거창하지는 않은) 정의를 따르고 싶었다.

 

딜레마에 빠져 사는 복합적 캐릭터

잘 된 시나리오의 특징 중 하나는 캐릭터의 복합성이다. 전래동화처럼 한 없이 착한 주인공과 끝 없이 악행을 하는 악역으로는 개연성이 떨어져 이제 재미는 없다. (물론 막장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아직 많다. 예를 들면, 우리 엄마)  현실에는 절대악이나 절대선이 아닌 복합적인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콩쥐가 되기도 하고 팥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인사담당자는 딜레마에 빠져 산다. 월급쟁이이자 동시에 회사의 대변인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하게 직원들이 회사 욕을 하면 내가 욕을 먹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심적으로 회사와 동기화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혼란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우리는 사측도 노측도 아닌 복합적 캐릭터이다. 직원인지 회사인지 어느 쪽으로 정의를 할 수가 없다. 굳이 따지자면 상황에 따라서 색이 바뀔 뿐이다. 그리고 그 선택 또한 각자의 몫이다. 나의 직속상사도, 나도 틀린 것이 아니다. 각자의 정의가 다를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정의에 따라 순간순간을 다른 캐릭터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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