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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은 비교적 근래에 대두된 이슈다. 미국처럼 다민족, 다인종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다양성 주제가 부각되기 어려웠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부주도의 계획 경제 하에서 집단적인 행동을 해야 했기에 다양성보다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맞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단기간 빠른 성장이 불가능한 시점에 다다른 지금,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더욱이 한국도 올해부터는 OECD기준 다인종·다문화 국가에 진입한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다양성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 2023년 12월 기준 한국의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은 4.89%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한 나라의 외국인 비율이 5%를 넘는 경우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됨

다양성이 이야기되는 양상

 

실로 근 3 년, HR에서는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가 트렌드로 언급되며 다양성의 가치가 부상했다. 다양성을 갖춘 조직이 더 창의적이고 성과가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나오자 조직 구성 측면으로는 인적 구성에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물리적으로 확보된 다양성을 잘 활용하기 위해 조직 문화 차원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표현되고 수용될 수 있는 장치들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획일화된 기준과 정답 신화에 길들여진 한국 사회에서 “다양성”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느낀다. 일례로, 남들과 다른 의견을 내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을 향해 “나댄다”라는 표현으로 눈치를 주기도 하며, 다문화라는 말은 다양한 문화 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한국에 거주하는 (특히 피부색이) 다른 인종을 지칭할 때가 많다.

또한, 기업의 다양성 정책들을 보면 소수자 채용이나 성별, 나이, 전공 등에 있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 따라서 내가 느끼는 다양성은 “소수자”에 집중된 다름과 다양성이고, 소수자를 이해해야 한다는 캠페인성 메시지가 강하다.

나 역시 집단주의 문화인 한국에서 자라 무의식적으로 주류 집단을 정답과 정상성의 기준으로 두고 다양성을 이해한다. 내가 주류인지 아닌지에 상관없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사회의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사회에서 다양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포용하는 작업은 굉장히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혹자는 포용이란 단어도 주류의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동등한 주체라는 의미로 “포함”이란 용어를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 순간 의식적으로 살아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다양성 관리는 비용일까?

 

우리 회사에는 CSR담당 조직과 ESG담당 조직이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환경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공감대가 커지면서 많은 기업들에서는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체를 운영 중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기업에서 조직까지 두면서 돈을 쓰는 기구를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가치의 준수가 기업의 의무로 인식되면서 그 업무 범위와 양도 늘어나 독립성을 가진 조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롭게 대두되는 사회적 가치인 “다양성”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일부 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DE&I 조직체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업은 영리 조직이다. 기업이 무언가를 한다면 결국 경영상 이롭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양성 관리 역시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논의되고 추진되는 것이다. 브랜딩 측면에서 사회적 가치를 적극 실천하는 것은 기업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으로 경영활동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인적 구성에서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일반적으로 조직의 창의와 혁신성이 올라간다는 연구들이 나와 있고, 다양한 시각에서 상품 출시 및 홍보 과정을 검열해 사회적 문제에 대한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더불어, 다양성이 보장되는 조직 문화 속에서 구성원들은 보다 조직에 소속감을 갖고 심리적 안전감을 느껴 성과가 잘 나온다고 한다.

한국 패치, 어쩌면 리더십에 답이

 

그러나 무작정 다양성 추진 위원회 같은 DE&I 조직을 신설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모든 조직이 다 같은 DNA를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조직의 고유한 문화와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해외 선진 기업의 문화를 벤치마킹해 국내 기업에 이식하려다가 실패한 사례들이 많지 않은가.

한국의 강한 문화 특성이 이식하려는 문화를 잡아먹어 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우리는 그것을 자조적으로 “한국패치(K패치) 되었다”라고 말한다. 외국계 기업의 한국 지점에 다니는 지인들로부터 외국계 회사를 다니지만 다수 한국 조직이 고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회식이나 야근 문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듣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을 논의하기 전, 우리 조직을 먼저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조직 내 유의미한 다양성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집단주의, 관계중심 문화이고 고맥락적으로 소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어쩌다 한국인, 허태균 교수著). 주류에 동화되려는 특성이 강한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지시적/가부장적 리더십이 통용되기 쉽고 획일화된 기준과 가치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러한 리더십과 조직문화에서는 개인주의와 다양성이 포용되기 어렵다.

제도적으로 다양성 추진 조직이 신설되는 것은 중요하지만, 리더십과 조직문화에 대한 내부 진단 없이 도입된다면 인적 구성 측면에서 소수자가 늘어나는 정도에 그치고 내면적 다양성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표면적 다양성이 늘어도 실질적으로 그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한다면 구성원들이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런 환경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못해 다양성의 장점이 발현되기 어렵다.

리더십 스타일부터 소통 방식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존중감을 느끼고 소속감과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DE&I라는 다양성 논의는 경영진의 적극적인 의지와 스폰서십이 필수적이고 리더의 변화와 노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경영 환경에서 리더들이 많은 변화를 요구받아 피로를 호소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 변화의 방향성이 기득권과 주류의 권력과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는 리더라고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다. 인정받는 리더가 권위를 얻는 시대다. 다양성 확대와 리더십의 역학관계를 생각하며 조직 내 리더십과 조직문화를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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