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차이 줄이는 사내 소통법

글: 준작가, 그림: 커피

 

 “나이가 드니까 아무거나 입으면 더 볼 품 없어지네.“

 “요즘 청바지는 줄여 입어야 하나, 접어 입어야 하나?“

 “나도 바지 기장을 짧게 하고 출근해도 될까?”

사십 대 직장인이 이삼십 대 동료들과 어울리려고 하는 고민이다.
남자 바지는 레귤러 핏 보다 슬림 핏, 롤업 보다 커팅, 키가 작더라도
발목을 노출하는 스타일링이 선호된 적이 있다.
바지 기장이 짧으면 바지 대비 상대적으로 다리가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돌고 도는 유행이지만, 관심 없던 유행에 민감해지는 건 일종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최근 영화 상영 중 자신의 휴대폰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영화관이 중국에 생겼다고 한다.
‘영화 보러 왔는데 왜 휴대폰을 봐야 하지?’
이해가 안 되는 분들은 이십 대 이상일 것이다.
두 시간이 넘는 영화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튜브를 즐겨보며 성장하는 십 대들은 긴 영상보다 짧은 영상에 익숙하다.
잠깐의 여유 시간이 생기는 순간순간 영상을 소비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들에게는 긴 영화 상영시간이 유튜브를 못하는 참기 힘든 시간이 된다.

사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은 의식주뿐 아니라 문화, 습관,
취향의 범위까지 폭넓게 ‘다름’을 의미한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세대 차이는 노년, 중년, 청년층에서
50대, 40대, 30대 10년 주기로 짧아진 것 또한 옛날 얘기이다.
이제 일 년만 지나더라도 작년 그때가 이미 그때가 아닌 세상이다.

세대 차이를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지 방법이 있을까.
세대 차이를 완벽히 극복하는 것은 동갑이라도 불가능하다.
누구는 어른스러운 사람이거나 누구는 아이처럼 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 차이를 극복하기보다 다스리는 관점에서 사내 소통의 방법을 찾아보았다.

 

 

“속으로 10초 참았다 얘기하기“

말을 왜 망설이는지 고민해 본 적 있는가.
보통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데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헷갈릴 때 답변을 망설이게 된다.
식당에서 계산서 금액이 실제보다 적을 때 솔직히 말할까 말까 주저한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할 때 망설임을 겪게 된다.
망설여진다는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자 동시에 확신이 부족하고 불안을 감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때 잠시 숨 고르기 하며 기다리면 상대의 반응, 상태, 화제 전환에 맞추어 말을 결정할 수 있다.

‘대화’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음’이다(다음 사전).
이야기를 듣는 시간 또한 그들과 대화에 참여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자.
그리고 자신의 말이 끊어지는 것을 겁내 하지 말자.
세대 차이의 벽은 가게 문 셔터처럼 한 번에 올라가지거나 내려가지 않는다.
조금씩 쌓이는 벽돌이 누적되어 높고 단단하게 굳어지는 법이다.
그러면 더 허물기가 힘들 수 있다.

우리에게는 누가 먼저 말했는가 보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마치 대화를 할 때 ‘나도 □□님처럼’, ‘아까 ○○님이 얘기한 것과 같이’라는 표현을 쓰는 자주 쓰는 것처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안에 이미 답이 있다.

 

 

“과거에 살기는 그만, 현재를 말하기”

경험이 달랐다고 과거 경험을 일일이 얘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살았던 시대가 다르다면 관심 없고 재미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살고 있는 현재를 얘기하는 게 좋다.
지금 서로의 현재 생각과 의견을 교류하며 한 발작씩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사원일 때가 아니라 지금 시대를 사는 사원일 때를 가정해보자.
즉, 사원으로 돌아가는 가정을 십 년 이십 년 전이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삼아 보자.
아침에 눈을 떴는데 내가 사원이 되었다.
그동안 겪은 경험과 지식은 그대로 남아 있는 채 직급만 바뀐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인정받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 방법을 안다면
그것을  얘기해주면 후배가 좋아할 것이다.
‘내가 사원 때는..’ 이거 아니다. ‘내가 지금 사원이라면!’ 이거다.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패밀리맨’이라는 올드 무비가 있다.
주인공 ‘잭 캠벨’은 투자전문 벤처기업 대표이자 성공한 솔로이다.
어느 날 잠에서 깨보니 시골의 타이어 샐러리맨이 되어 있다.
대신 아내와 자녀, 애완동물이 생겨 있다.
지식과 경험은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월스트리트 거물에 눈에 띄어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다시 성공의 길을 가느냐, 가족을 지키는 길에 서느냐’를 갈등한다.
이처럼 당신의 경험은 당신의 현재 위치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빛날 수 있다.
가치는 변치 않는 법이다.
과거에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경험을 과거로만 여기지 말고 현재 어떻게 적용할지를 고민해보자.
후배 입장에서는 자기편에 서서 고민하는 척만 해줘도 고마워할 것이다.

시대는 매일 매시 변하고 있다.
나를 돌아보면 여전히 과거를 살고 있는가.
현재를 말하고 있는가.
미래를 꿈꾸는가.
살아온 시대보다 살아갈 시대가 더 많은 사람이 누구일까.

 

 

“밥 좀 천천히, 분위기가 가장 맛있는 반찬이다”

대학 시절 용돈을 아껴 가며 김밥, 컵라면 등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간단히 십 분만에 끼니를 때운 경험이 있다.
회사에서 리더와 밥을 먹을 때 그때가 떠오른 적이 있다.
별 말없이 밥 먹는 행위에만 집중할 때였다.
같이 밥을 먹는 의미를 통 모르겠다.
혼자 고픈 배를 위해 먹는 컵라면과 다를 게 없었다.

다른 예로 대학시절 포차에서 기본 안주만으로 두세 시간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술 자체가 주는 즐거움보다 잔을 주고받고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때 나눈 얘깃거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추억은 우정의 관계를 끈끈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언젠가 리더와 이태리 레스토랑에서 식전 빵, 샐러드, 메인 식사, 커피까지
두 시간의 식사시간을 가진 적이 있다.
겨우 두 시간이었지만 리더와 사무실에서 당시 두 달 동안 대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나눈 경험이 있다.

세대 차이는 경험이 다름에서 오고 환경의 차이에서 온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잭과 로즈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같은 배에 탑승한다.
만약 둘의 우연한 만남이 한 번 더 성사되지 않았다면 서로 사랑에 빠졌을까.
모든 게 달랐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옳다’에서 ‘내가 다르다’로 바꾸고자 한다면 우물 밖의 세상을 봐야 한다.
상대방을 알고 싶다는 표현과 노력은 꼭 필요한 조건이다.
후배에게 차 한잔을 사주는 여유는 커피 값을 내주는 행위가 아니다.
잠시 앉아서 휴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줄 때 제대로 그 가치가 발휘된다.
때와 장소를 가려 마음을 터 놓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오늘 점심은 평소보다 천천히 밥을 먹으며 함께 분위기를 느껴 보는 건 어떨까.

 

 

“인사와 용서의 공통점은 먼저 하고 나면 속 편하다”

인사하는 게 쉽고 매우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막상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하면 한없이 불편하다.
고개만 숙인다거나 손을 흔들거나 포옹하고 볼을 맞댄다든지 국가별로 행동이 제각각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상대가 어르신인지 친구인지 선후배인지 따라 달리 인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가운데 먼저 인사하는 것은 어는 정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므로 상대에게 배려가 될 수 있다.
배려를 한 사람과 받은 사람 중 누가 더 마음이 편할까.

회식 자리에서 처음 만나 반갑게 술을 마시고 친해졌다고 생각했으나
몇 주 뒤 다시 만날 때 어색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낯선 느낌과 경계를 풀어주는 것으로 인사만큼 쉬운 답이 없다.
누구나 불편한 사이보다는 편한 사이를 선호한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면 이어 반가운 인사가 따라오는 게 공식이다.

주위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사과를 자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주 사소한 오해나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일이더라도
상대방이 기분 상해한다면 바로 사과를 하곤 했다.
주위 사람들은 처음에는 “뭘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나무랐으나
결국 그의 태도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안 좋은 감정이 쌓일 틈을 주지 않게 만들었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에게도 상대가 정말 기분 나빠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먼저 상대를 용서하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 결국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한 번에 용서받지 못해도 괜찮다.
한 발씩 다가갈 때 상대가 반걸음씩만 물러나도 최소한 반걸음은 가까워진다.
그렇게 천천히 다시 만나게 된다.
결국 그게 굳게 잠겼던 관계를 푸는 열쇠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에서 매일 만나는 동료들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한 경험이 있는가.
그럴 때면 ‘이렇게 닮아도 괜찮은 걸까.’라는 식으로
그게 자신에게 유리한 것인지 불리한 것인지 따져보게 된다.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아저씨와 아줌마는
‘쇼타’와 ‘린’이라는 두 아이를 주워 키운다.
속으로는 아이들로부터 ‘아빠’, ‘엄마’라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줌마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이 중요했던 것일까?

그들은 아이들이 자란 과거 환경, 혈연관계보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가족으로서의 행동과 도리에 충실한다.
예컨대 유치원생 린은 팔목에 친엄마로부터 학대를 받은 화상이 있었고
일하다 다리미로 인해 입은 아줌마의 상처와 비슷했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쳐다보며 위로를 주고받는다.
아저씨는 쇼타가 혼자 있을 때 늘 먼저 다가가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장난을 치며 그의 기분을 풀어 준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아빠’, ‘엄마’로 불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아이들 마음속 ‘아빠’, ‘엄마’ 자리를 따스하게 차지했다.
마치 한 가족처럼 말이다.

영화 속 낯선 아이들과 40년의 세대 차이는
아저씨와 아줌마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무언가 꼭 이유가 있지 않더라도, 납득되지 않더라도
당장 그 사유를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어떨까.
아마 상대방의 상황, 처지, 입장에서 조금 더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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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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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y
외부필진
Jiny
3 개월 전

좋은 인사이트 제공해주셨어 너무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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