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회사를 바꿀 수 있을까?

(8년 차 재경 담당자의 조직문화 입문기 2편입니다) >> 1편 읽으러 가기

 

스터디를 하면서 갖게 된 소위 잘나가는 기업문화에 대한 동경은 직장생활에 특별한 욕심이 없던 저의 마음을 자꾸만 들뜨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히 더 많은 보상, 더 편한 업무가 아니라 강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도 많이 변하긴 했습니다. 2019년부터 정장을 입지 않게 됐고,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팀장님 눈치 보느라 집에 못 가는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없어졌어요. 소주잔 앞에서 충성심을 시험받던 단체 회식도 이제 옛날 얘기가 되었고요.

그럼에도 갈 길은 멀게 만 느껴졌습니다. 실리콘밸리나 국내 스타트업의 성공사례들이 보여주는 기업문화는 그저 부드러운 분위기 정도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곳에서는 제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의 자유와 책임, 솔직한 피드백 같은 개념들이 이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업무에 있어 전통적인 관료주의와 위계가 여전히 견고한 지금의 직장에서 그런 문화를 실현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게다가 제가 지금까지 직장에서 경험했던 문화적인 변화는 대부분 회사 차원의 제도 개선이나 리더의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것들이었습니다. 회사가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데다, 변화를 위해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딱히 없다고 생각되니 많이 답답했어요. 역시, 이직이 답인 걸까요?

 

 

어딘가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직장의 ‘문화’를 고민한다는 것이 가까운 동료들에겐 너무 순진하고 이상적으로 비춰질 것 같아서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분이 떠올랐어요. 이 곳 인살롱의 필진이시기도 한 현대차그룹 경영연구원의 박정열 박사님이었습니다. 사내 교육과정에서 인연을 맺게 됐는데, 가끔 주고 받는 짧은 안부 인사 만으로도 매번 힘이 되는 영감을 주시는 분이었어요. 빈 창을 띄워 푸념 섞인 메일을 써내려 갔습니다.

“요즘 조직문화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더 나은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데, 일개 팀원인 제가 조직의 변화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겠어요.”

지금 보면 철없는 투정 같기도 한 저의 메일에 박사님은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전략)

‘위대한 조직으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위대한 조직을 만들 것인가’

이것은 섣불리 옳고 그름을 단언하기 어렵겠지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본인이 의미 있는 몸부림을 했었는가 일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말이죠…

그런 사람만이 스토리를 가질 수 있고, 스토리가 있을 때 영향력이란 향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영철학자 게리 하멜이 한 말은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울림을 선사합니다!

“예산도 권위도 없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달라. 그것이 리더임을 보이는 방법이다.”

(후략)

 

박사님의 메일을 여러 번 곱씹어보았습니다.

 

 

문화적인 성공을 이룬 회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인재 밀도(talent density)’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업무적인 전문성 뿐만 아니라, 회사가 제시하는 가치와 문화를 바르게 소화할 수 있는 성숙함까지 겸비한 비범한 인재들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자신들의 혁신적인 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Hire Hard, Manage Easy.

그래서 그들은 채용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그 과정을 통과한 구성원들을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아닌 어른으로 대우함으로써 직원들이 자신의 일과 조직에 자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높은 수준의 권한위임, 무제한 휴가, 예산 통제 폐지와 같은 것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회사의 결단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애초에 규정과 통제가 필요없는 인재를 뽑아라.

– 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 책 「규칙없음」

 

토스는 구성원을 어른으로 대한다. 신뢰와 위임의 문화 속에서 역량을 펼칠 분인지를 채용 과정에서 확인하고, 이후엔 걸맞는 신뢰와 자율을 준다.

– 토스팀 이승건 대표, 중앙일보 인터뷰

 

만일 당신의 팀이나 회사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면, 보다 나은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그 변화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 구글 전 CHRO 라즐로 복, 책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

 

변화를 선언한 많은 회사들이 생각만큼 빠르게 바뀌지 못하는 이유 역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원들을 전부 새로 뽑지 않는 이상, 기존 구성원들과 함께 지향하는 문화에 걸맞는 인재 밀도를 내재화 해가는 느린 과정이 불가피한 것이지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인재일까?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변화를 하루라도 앞당기고 있는 구성원일까?

위의 회사들 중 한 곳의 일원이 되는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나는 자율과 책임의 문화에 어울리는 인재일까? 조직의 관리와 통제에 익숙해진 내가 그런 곳에 잘 적응하고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꼬리를 무는 마음 속의 질문들에 ‘그렇다’는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박사님의 메일은 조직의 현상에만 주목하던 저의 시선을 제 자신에게로 옮겨주었습니다. 회사의 문화적인 변화에 있어 한 개인의 역할은 계란으로 바위 치듯 조직을 바꾸려 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지향하는 문화에 어울리는 인재로 만들어가는데 집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회사가 보다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모습으로 바뀌길 바라는 구성원이라면, 조직이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각종 통제와 비효율적인 절차들의 무용함을 자기 자리에서 끊임없이 증명하고 동료들에게 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죠. 조직이 느끼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한 줌이라도 덜어주는 성숙한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회사가 하루라도 빨리 원하는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직에 대한 개념도 새롭게 정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직장생활에 대한 실망이나 권태감, 주변 지인들의 이직 소식에서 오는 불안감 같은 것들에 등 떠밀려 이직을 고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 대신 제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가치와 문화를 정의하고, 그에 어울리는 인재가 되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조직 안팎의 좋은 기회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결국 다니고 있는 직장이 변하던, 회사를 옮기던 간에 동경하는 문화에 적합한 인재로 제가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이죠.

저는 직책이나 직무와 관계없이 모든 직장인들이 조직문화라는 주제에 대한 성장감을 추구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조직문화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근무 조건이 아니라, 일과 조직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태도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당장 내가 속한 조직의 어떠함과 관계없이, 시대적인 흐름이 요구하고 있는 변화를 자기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지 않는 더 큰 성취와 성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조직의 리더도, 회사에서 정한 HR 담당자도 아닌 평범한 재경 담당자인 제가 이렇게 조직문화에 진심을 다하는 이유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어떤 인재인가요?  각자의 일터에서 문화라는 존재와 알게 모르게 씨름하고 계신 모든 분들에게 제 글이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되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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