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장님에게 채팅? 조직과 권력거리

 

제가 일하고 있는 조직은 금요일마다 주간회의를 갖습니다. 본부장님, 실장님들, 각 팀장님들이 참석하는데요. 올해부터 제가 회의 스케쥴 안내와 자료 준비를 담당하게 됐는데, 얼마 전 회의를 준비하면서 있었던 일과 함께 조직문화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목요일이 되면 다음날 있을 회의를 준비합니다. 가장 먼저 하는 건 당연히 일정 확인이에요. 본부장님이 다른 스케쥴이 있으면 회의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기도 하니까요. 업무 시스템에 등록된 본부장님 일정은 비서와 실장/팀장님들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회의 준비 전에는 보통 비서를 통해서 본부장님 일정을 확인하곤 하지요.

최근에 본부장님이 다른 일정이 생긴 걸 뒤늦게 알고 회의를 갑작스레 취소하게 된 경우가 연달아 몇 번 있었습니다. 각 팀에서는 하지 않아도 될 회의자료를 준비하고, 해당 시간을 불필요하게 비워두는 일들이 생기게 되었어요.

주변에서는 본부장님 일정 때문에 취소되는 게 제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좀 찝찝했습니다. 소통이 조금만 더 촘촘하게 된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다시 목요일이 되었습니다. 시스템에 미처 등록이 안 된 본부장님 스케쥴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 날은 제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상황. 비서에게 물어봐달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메신저로 채팅을 걸었습니다. 비서가 아니라 본부장님께요.

“본부장님, 박광현 매니저입니다. 내일 10시에 본부 주간회의 진행하는 것으로 안내하려고 하는데, 혹시 다른 일정 있으실까요?”

지금 이게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 분들이 계시지요. 그런데 저는 회사 생활 7년 넘게 하면서 본부장님한테 채팅으로 말 걸어 본 게 처음이었어요. 나름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팀원이 팀장 이상급 상사에게 메신저로 말을 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조직의 장인 본부장님한테는 더더욱이요. 안된다고 하는 사람은 없는데 괜히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공감하는 분들 계시죠? 그 이유가 뭘까요?

 

1. 리더와의 권력거리(Power Distance)

권력거리는 조직문화 비교 연구자인 헤이르트 호프스테더가 만든 표현인데요. 구성원이 권력의 차이를 용인하고 그로 인한 불평등한 대우를 수용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같은 내용을 한국에서는 수직적/수평적 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해외에서는 권력거리가 멀다/가깝다 라는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한다고 해요.

조직의 권력거리가 어떠한지는 인공물을 통해서 쉽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임원 전용 주차장, 식당, 집무실 등이 따로 있거나, 업무 목적 이상으로 제도적인 혜택이나 배려를 받는 부분이 있는 회사라면 상하 간 권력거리가 다소 멀다고 볼 수 있겠지요. 원래 다 그런거 아니냐? 하실 수 있지만, 메타(구 페이스북)의 CEO 마크 주커버그는 별도의 공간 없이 일반 직원들과 함께 섞여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메타)

 

직원들은 이런 불평등을 임원이라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일종의 보상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용하지만, 계급화 되어있는 환경이 리더와 구성원 사이의 정서적인 거리감을 형성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아마도 한국 기업의 전형적인 모습이고, 제가 다니는 직장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저희 회사는 얼마 전부터 임원 전용 식당을 없애고 그 공간을 직원들을 위한 모임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리더와 구성원 간의 권력거리를 좁히기 위한 이런 시도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시간에 대한 기본 가정

전통적인 위계 조직에서는 관리자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집중됩니다. 모든 하위 조직의 보고가 몰리고, 여러 가지 회의까지 참석하느라 언제나 시간이 부족하지요. 이런 구조적인 이유로 조직 안에는 ‘관리자의 시간은 일반 직원의 시간보다 소중하다’는 기본 가정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구성원이 일하고 있는 임원을 붙들어 세워 시간을 뺏는 일이 실례인 것처럼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지요.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부하 직원이 아무리 바쁜 일을 하고 있더라도 직속 임원의 호출보다 우선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가정에 더해서, 기본적으로 직원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회사에서는 고용이 직원들의 ‘능력’이 아니라 ‘시간’을 사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따라서 회사로부터 관리 역할과 책임을 부여받은 관리자가 부하 직원의 시간을 빼앗는 일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이죠.

 

 

제가 이런 환경들을 거스르고 본부장님에게 메신저로 연락을 드릴 수 있었던 건 본부장님 덕이 큽니다. 본인이 권위적이지 않고, 그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언어적/비언어적 메시지를 구성원들에게 꾸준히 던져주신 결과이지요. 덕분에 제 마음속에 있던 저희 조직에 대한 기본 가정이 조금씩 변하게 되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리더의 일방적인 노력만으로는 어렵겠지요. 그 메시지를 받아내고 소화하는 구성원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조직이 정말 수평적이고 소통이 원활한 문화를 지향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환경들을 조직 차원에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정의하고 모두가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요~ 10시에 합시다.”

제가 보낸 메시지에 본부장님이 간단하게 답을 주셨습니다. 저는 혹시나 또 취소되려나 하는 찝찝한 마음을 덜고 회의를 준비할 수 있었어요.

회의 준비를 잘할 수 있었던 것보다 좋았던 건, 조직의 구조에서 비롯되어 한없이 견고해 보이는 문화적인 한계와 기본 가정도 서로의 정서적인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사실 개인적인 발전을 위해 조직문화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었거든요.

여전히 좀 조심스럽긴 합니다. 다음 회의 때도 메신저로 여쭤봐도 괜찮을까? 라는 고민을 벌써 하고 있어요. 그래도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해요. 제 작은 고민과 행동들이 조직의 변화를 위한 의미 있는 씨앗으로 심기길 바라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참고한 책>

– 김성준, 「조직문화 통찰」 (클라우드나인)

– 김성남, 「수평 조직의 구조」 (스리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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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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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필진
청춘
1 개월 전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있어 보여서 기쁩니다. 요기에서 자주 봐요. ㅎㅎ

leeht0701
외부필진
leeht0701
3 개월 전

권력간 거리에 대해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소개해주셨네요! 저도 평소에 많이 느끼던 부분이라, 다음 글의 주제로 삼아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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