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노무담당자는 어떤 노동조합을 꿈꿀까?
회사 말 잘듣고 인사노무담당자를 피곤하지 않게 하는 노동조합?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몇 가지 없을테지만 이건 단언할 수 있다. 저얼대 그런 노동조합을 인사노무담당자가 원하지 않을 거란걸. 인사노무담당자도 직원이고 근로자이자 노동자이다. 노동자를 위한 합리적인 근로조건 향상을 응원하지 않을 인사노무담당자란 없을 것이다. 굳이 합리적이란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협상이라는 특성상 원하는 목표 이상을 제기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 정책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의 모습을 바라보면 지난 십여년간 노동계 안팎에서 이야기 되던 노동조합의 위기가 이제는 피부로 와닿고 있다. 어쩌면 입장이 노동조합의 반대편 사이드에 있기 때문에 더 크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사노무담당자와 노동조합의 관계를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이야기만은 아니다. 노무를 전담으로 담당하는 담당자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이고 노동조합이 ‘강성’일수록 노무담당자에 대한 인정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 다시 빗대보면 악어는 악어새를 본인의 치과의사선생님으로서 예우해주지 않는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의 본질은 악어새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악어의 이빨에 끼인 먹이를 먹는 것에 불과하다. 그 시점이 악어가 배가 부른 채 일광욕을 하는 시기를 택한 것은 악어새의 지혜일 뿐이다. 한 머리의 악어가 몇 마리의 악어새를 잡아먹었을지 추측하게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기에 악어새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한다. 또한 인사노무담당자와 노동조합 가운데 어느 쪽이 악어새인지에 대해서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 강자와 약자가 누구인지는 그 양상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고싶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인 누구에게라도 묻는다면 노동조합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의 노동조합이 변화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지금은 좀 그렇지 않아?” 이런 느낌이랄까? 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지성인을 꿈꿨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노동조합은 어떤 모습이어야할까? 라는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해준 것은 공부할 적에 잠시 접했던 Richard Hyman이 제기한 ‘불변의 삼각구도’다. 삼각형의 각 꼭지점은 계급, 사회, 시장을 의미하며 각 꼭지점별로 노동조합의 정체성이 있다.
- 계급으로서 정체성은 노동자조직으로서 집단이해와 정체성이 있고 계급의 입장을 대변한다.
- 사회의 정체성은 노동조합 역시 사회적 틀 내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이해집단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 시장의 정체성은 노동조합이 피고용자집단으로서 일과 그 일에 따른 임금을 받는 것을 받아들이며 시장논리에 따른 균형을 요구한다.
Hyman은 현실에서 노동조합이 이 세 꼭지점 가운데 하나만을 추구하는 경우 안정적으로 지속하지 못하고, 두 꼭지점을 연결하는 면으로서 기능해야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조합은 이 세 가지 꼭지점 가운데 어느 점과 어느 점을 연결하고 있을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지금 느껴지기에는 계급에 대한 정의(definition)도!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정의(definition)도! 시장에 대한 정의(definition)도 조금은 치우치게 정의된 상태로 두 꼭지점을 연결하고 있는 것 같다.
Hyman의 삼각형의 꼭지점과 관련하여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 노동조합은 어느 계급을 대변해야할까?
- 지속가능한 사회로 기능하기 위해서 노동조합은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 시장은 교환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노동조합은 양팔 저울의 양쪽 추에 어떤 가치를 올려 두고 있을까?
이러한 주제를 쉽게 올리기도 어렵고 이야기하기도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낭만과 희생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활동할 수 없는 집단이자 이데올로기가 노동조합이기에 한아름 ‘존경’과 약간의 ‘아쉬움’이 가득하여 조금 끄적여본다.
저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은 노동계 친우와 함께 소주 한잔을 겻들여 한껏 떠들어 재껴 볼 수 있었지만, 각자의 답은 모두 다르긴 하다.
노무담당자라면 한번 즈음은 자신만의 노동조합 상을 그려보면 어떨까? 라는 핑계로 아쉬움을 글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