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반도체 제조 회사에서 20년간 IT 분야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신입사원 시절부터 비교적 자주 뵈었던 최고 직급은 주로 ‘팀장님’이었다. 그 팀장님들이 해야 했던 일들은 무엇이었을까? 그때를 떠올리며 진정한 팀장의 역할에 대해 얘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회사의 조직체계가 수백 명의 팀원으로 구성되는 대팀제였기 때문에 팀장이라는 호칭은 대개 임원급 이상의 직책에 쓰이는 말이었다. 이제 회사에서 1인 기업으로 독립을 하고 보니, 회사 밖에서는 의외로 팀장이라는 호칭이 좀 더 자연스럽게 쓰이는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구성원 둘 이상이 모여도 팀장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도 보았다. 그런 기준을 적용한다면, 필자도 회사를 다녔던 시절에는 몇 명의 팀원을 거느린 팀장의 역할을 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덕분에 회사를 나온 후 HR 관련 네트워크를 통해, 팀장이거나 팀장이었던 분들과 함께 팀장의 역할에 관련된 책을 쓰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여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한 질문을 하나 꺼내 보겠다. 팀장과 리더는 어떻게 다른가? 많은 분들은 그게 그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럼, 질문을 약간 바꿔서 하나 더 내보겠다. 팀장과 관리자는 어떻게 다른가? 팀장도 관리자인가? 앞에 얘기한 리더(Leader)라는 말도 영어에서 왔으니, 관리자라는 표현 대신 매니저(Manager)라는 표현으로 바꿔보자. 그럼 리더와 매니저는 같은가? 아마도 서로 다르다는 의견 쪽에 손을 많이 들어주실듯하다. 실제로 연구 결과나 많은 책들을 보면 리더십(Leadership)과 매니지먼트(Management)는 명확히 다르다고 분류한다.
리더는 장래 성취하고자 하는 매력적인 비전을 만들고, 그러한 비전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변화 전략을 개발한다. 이때 관리자는 구체적인 플랜을 수립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작업 스케줄을 만들며, 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할당한다. 리더십이 새로운 가능성과 장기적 성과를 추구한다면 매니지먼트는 재무적 관점에서 단기적 성과를 추구한다. 리더십이 비전을 커뮤니케이션하고, 이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공동의 문화, 핵심의 가치를 개발하는 동안 매니지먼트는 계획을 성휘하기 위한 구조를 조직한다. (리더십 패스파인더 / 이창준)
리더와 매니저의 차이를 어느 정도 가늠했으니, 아까의 근원적인 질문으로 넘어가겠다. 그렇다면 팀장은 리더인가, 매니저인가? 필자가 추측해 보건대, 이곳의 글을 찾아 읽으실 정도의 독자라면 리더십과 관련된 공부에 높은 관심을 갖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리더십의 관점으로 보자면 팀장은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 게 당연히 맞다. 다시 말하자면, 팀원들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과업에 대한 관리를 맡겨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 또한 리더의 몫이다. 더 나아가 모든 구성원들이 이러한 리더의 자세에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신입사원부터 셀프리더십을 교육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필자가 경험해 온 일터의 모습은 리더십만으로는 팀장의 역할이 불가능했다. 즉, 매니지먼트도 필수적으로 함께 해야 했다.
필자는 회사의 다른 엔지니어들과 달리 IT 개발 외에도 HR 업무를 병행한 조금 독특한 직무 이력을 갖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교육 담당 업무를 맡게 된 것을 시작으로, 점차 직무가 확대되어 부장 직급 무렵에는 팀장의 스태프 조직으로서 크고 작은 기획 단계의 과제관리 및 HR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때 팀장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보았던 ‘팀장님’의 역할은 리더보다 오히려 매니저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대기업이라는 조직의 특성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팀장이 최고 경영진의 회의에 참석을 한다면, 그 안에서 팀원의 역할을 맡는 셈이었으니 수시로 Top-Down 형태로 내려오는 과업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팀장의 매니저 역할에 대한 시각은 지금까지 만나본 다양한 회사의 지인들 얘기를 종합하면 다른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 팀장은 리더보다 매니저의 역할이 조금 더 우세했는데, 꼼꼼했던 그분의 개인적인 특성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팀의 역할인 안정적인 IT 시스템의 운영 측면에서 회사가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생각한다. 회사와 조직마다 맡고 있는 ‘업’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현재의 상황에 리더십이 더 필요한지 매니지먼트가 더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케이스별로 다를 수 있다. 다만, 일반적인 HR 관련 담당자들의 관심이 주로 리더십과 자기성찰에 있는 경우를 많이 보아 왔기에, 그에 대한 관심만큼 조직의 운영과 성과에 관계된 매니지먼트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제조업의 특성을 가진 생산 현장을 관리하는 팀장이라면 더욱 매니지먼트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이 글의 제목과 달리 싱거운 결론이 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팀장은 리더이자 매니저의 역할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각 역할의 비율을 조정할 필요는 있겠으나, 어느 한 쪽을 버리거나 전적으로 위임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대내외의 어려운 환경을 이끌어 가는 어려운 줄타기의 상황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팀장의 역할을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팀장과 팀원의 소통 또한 중요하다. 팀의 존재 이유가 결국 구성원 간의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므로, 팀장에게 있어 때로는 잘 해보라 넘겨주고 때로는 잘 하는지 지켜보는 중용의 지혜가 ‘인정받는 팀장’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미 이런 지혜를 지니신 팀장들이 많을 테지만.